김해창 교수의 생태 이야기 (11) 대선우울증? - 동물도 우울증에 걸린다

김 해창 승인 2022.03.13 16:47 | 최종 수정 2022.04.17 21:29 의견 0

 20대 대선이 끝났다. 살얼음판 승부로 개표 막바지까지 초조하고 긴장됐다. 결과에 대해서는 후보 지지자간에 희비가 엇갈린다. 절반이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다면 절반은 패배의 쓴맛을 보았다.

‘분열과 갈등, 비호감’의 이번 대선이 어쨌든 새로운 대통령을 만들어냈다. 대선 이후 상당수의 국민이 선거 후유증으로 ‘대선우울증’을 겪고 있다. 아무튼 대선으로 인해 일시적이나마 이러한 ‘대선우울증’을 어떻게 걷어내고 화합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는가가 새로운 당선자의 시급한 과제이기도 할 것이다. 청와대를 영어로 블루하우스(Blue House)라고 하는데 블루는 ‘푸르다’는 뜻지만 감정적으로 ‘우울하다’는 뜻도 있다. 정치상황에 따라 ‘블루하우스’가 경우에 따라서는 ‘우울한 집’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나 할까. 

또한 우리 사회에는 유명인이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벤처신화의 주인공’으로 넥슨 창업주인 김정주 NXC 이사의 부고 뉴스가 충격을 주었는데 그간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다고 했다. 우울증은 생각의 내용, 사고 과정, 동기, 의욕, 관심, 행동, 수면, 신체 활동 등 전반적인 정신 기능이 지속적으로 저하되어 일상생활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태를 말한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주요 우울증의 진단 기준(DSM-IV)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①2주 이상, 거의 매일 지속되는 우울한 기분 ②일상 대부분의 일에서 관심 및 흥미 감소 ③식욕 감소 또는 증가 ④불면 또는 과다 수면 ⑤정신운동 지연 또는 정신운동 초조 ⑥피곤 또는 에너지의 감소 ⑦무가치감, 부적절한 죄책감 ⑧집중력 저하, 우유부단 ⑨반복적인 자살 생각. 이 가운데 1, 2번 중 하나 이상을 포함해 5개 이상에 해당된다면 우울증을 의심해보고 의사 상담을 받기를 권한다. 물론 우울증은 상담과 약물투여를 병행해 치료를 하면 90% 이상 완치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우울증은 동물들에게도 있다고 한다. 『세기말의 동물이야기』(제롬 스프라쥘라, 1996)를 보면 다른 환경에서 온 짐승들을 우리에 가두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미 동물들의 우울증의 역사는 시작됐다고 한다. 과거의 동물원의 경우 동물을 다닥다닥 붙은 철장 우리에 집어넣었기에 이들 가운데는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동물원 밖의 야생동물도 우울증을 겪는다고 보고 있어 외부 환경탓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우울증에 걸린 동물들은 생기가 없고 털 또는 깃털이 심하게 빠지거나 식욕부진 혹은 반대로 식욕항진에 빠지기 쉬운데 특히 지능 발달이 높은 오랑우탄이나 고릴라 등이 증세가 심하다고 한다.

지난 1970년대 말 프랑스 동물원에는 30살 된 네로라는 고릴라가 우울증에 걸린 사실이 확인됐다. 네로는 먹지도 않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했으며 가장 정신이 또렷한 시간에는 손가락을 물어뜯으면서 자해했고 동물원 관계자들이 신경안정제까지 처방했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네로는 자살할 우려가 있어 동물원 관계자를 늘 긴장시켰는데 나중에 회생불능으로 안락사를 시킬 때까지 10여 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침팬지는 표정으로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동물이라고 한다. 사진출처=내셔널지오그래픽
침팬지는 표정으로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동물이라고 한다. [사진 = 내셔널지오그래픽]

「내셔널 지오그래픽」(2012월 10월 6일)에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인 사샤 잉그베르(Sasha Ingber)의 칼럼 ‘동물은 우울해지는 걸까?(Do animals get depressed?)’가 소개됐다. 그녀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신경과학 올리비에 버튼(Olivier Berton) 교수와의 대담에서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는 뇌 속 감정을 관장하는 회로구조가 공통돼 우울증에 빠진 동물을 연구하면 인간에게도 응용할 수 있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핵심은 침팬지나 원숭이 같은 영장류는 인간과 감정 표현 방식이 비슷해 표정이나 시선에서 슬픔을 느끼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실의 영장류와 설치류는 대부분 사육 대상이라는 점이 문제이고 자연계에서는 행동장애 동물은 생존율이 떨어져 비교연구가 어렵다는 것이다. 반려동물의 우울증에 대해 인간과 같은 방식의 치료가 효과적인 지는 아직 연구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개나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은 또 하나의 가족으로 우울증 환자의 치료에 도움을 주지만 반면에 이들 반려동물도 우울증을 겪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2019년 12월 동물정신과 전공 수의사 9명이 뜻을 모아 NGO인 ‘사람동물공생센터’에 개·고양이를 대상으로 한 ‘스트레스 진료과’를 처음으로 개설했다. 개·고양이도 스트레스가 발단이 되어 신체 건강을 해치거나 이상행동을 보이는데 고양이를 좁은 틀 안에 가둬 기르고 개를 산책시키지 않거나 체벌을 하는 등 부적절한 관계나 환경이 스트레스의 주된 원인이다. 이 센터에서는 주인과 상담 후 환경수정, 행동수정, 약물요법을 실시한다고 한다(http://tomo-iki.jp/stress).

김해창 교수
김해창 교수

『원숭이와 초밥요리사』(프란스 드발, 2005)라는 책에는 ‘구조견의 우울’을 다룬 이야기가 있다. 미국의 구조견 훈련의 선구자인 캐롤라인 헤바드 씨가 지난 1985년 멕시코 지진 때 구조견인 독일산 셰퍼드 앨리가 아무리 수색을 해도 생존자는 거의 없고 시신만 나오는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를 자세히 전하고 있다. 앨리는 잔해더미에서 생명의 징후를 감지하면 온몸으로 흥분과 기쁨을 드러냈지만, 시신만 나올 때는 축 처져 있었고 며칠이 지나자 눈동자에 슬픔을 머금은 채 그녀가 지시를 해도 침대 밑에 숨어 꼼짝도 하지 않고 먹이도 입에 대지 않았으며 다른 구조견들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멕시코인 수의사가 생존자 역을 맡아 잔해더미에 숨은 뒤 그를 ‘구조’하게 하자 구조견들은 그의 냄새를 맡고는 무척 좋아하며 짖었고, 그 뒤 평상시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구조견의 행동이 반복 훈련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감정이 들어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우울증은 감정을 제대로 주고받을 때 극복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제 정치가 더 이상 국민을 우울하게 만드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좋든 싫든 20대 대선의 결과를 훌훌 털어버리고 국민 일상의 삶이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참된 소통과 화합의 정치를 기대해본다.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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