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창 교수의 생태 이야기 (4) 종이 하나 속의 우주

김 해창 승인 2022.01.23 09:37 | 최종 수정 2022.01.24 11:30 의견 0
'종이 하나 속의 우주'를 생각하게 하는 공원 숲의 아침 햇살. 20여년 전 필자가 자주갔던 일본 도쿄 고가네이공원의 모습으로 당시 일본 사진가(이름을 모르겠음)가 사진엽서 선물로 준 것임.
'종이 하나 속의 우주'를 생각하게 하는 공원 숲의 아침 햇살. 20여 년 전 필자가 자주갔던 일본 도쿄 고가네이공원의 모습으로 당시 일본의 한 사진가로부터 선물받은 사진엽서.

달라이 라마 14세와 함께 세계 4대 생불로 추앙받던 평화운동가 틱낫한(Thích Nhất Hạnh, 1926-2022) 스님이 지난 22일 베트남의 한 사원에서 향년 95세로 열반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베트남 출신 선승인 틱낫한 스님은 시인이자 명상가이며 『화(anger)』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 등 국내에도 알려진 베스트셀러 저자로 130여 권의 저작을 남겼다. 베트남에서 반전운동에 앞장서다 남베트남 정부에 의해 추방당해 40여 년 간 주로 프랑스에 거주하며 플럼 빌리지(Plum Village)를 설립해 ‘참여불교’ 운동을 전 세계에 알렸다. 평화와 비폭력을 지향하는 틱낫한 스님의 활동에 감동받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7년 스님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도 했다는 일화가 있다.

우리 집에도 틱낫한 스님의 책 몇 권이 서가에 꽂혀 있다. 특히 16년 전 미국 출장을 갔다 현지 서점에서 스님의 『인터빙(Interbeing)』이란 책을 사온 적도 있다. ‘인터빙’이란 불교 용어로 ‘연기(緣起)’라고 하고, 보통 ‘상호존재’라고도 번역을 하는데 나는 ‘공존’으로 이해한다. 스님은 생태근본주의자로 ‘알아차림(mindfullness)’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화가 났을 땐 알아차림으로 호흡에 집중하고 화를 부드럽게 껴안으라는 것이다. 스님은 이러한 알아차림으로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이 연결된 것임을 이해하고 ‘순간 속의 현존(現存)’을 강조한다.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조약돌 명상, 걷기 명상, 지구 어루만지기 명상, 식사 시간의 명상 등 일상 속의 알아차림 명상을 통해 ‘마음정원 가꾸기’를 권했다. 그리고 ‘사랑의 말하기, 자비로운 경청, 감사의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알려줬다. 

우리가 피곤에 지쳤을 때 숲이나 공원에 들어가 있으면 평온함이 밀려온다. 화사한 아침 햇살이 비칠 때 행복함을 느낀다. 일상에서 자연이 소중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우리와 자연이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은 쉽게 잊어버린다. 구름이 비가 되고 비가 냇물이 되고 우리의 마실 물이 되고 수증기로 변해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는 사실을.

틱낫한 스님의 글 ‘공존’이 떠오른다. 종이 한 장 속에 햇빛이 담겨 있고 그 속에 우리가 있다는 글이다. 가끔 한 번씩 읽어보지만 읽을 때마다 마음이 새로워진다. 나 우리 모두가 자연 속에 하나임을 느끼게 하는 명상의 시이기도 하다.

 

만일 당신이 시인이라면
당신은 이 한 장의 종이 안에서
구름이 흐르고 있음을 분명히 보게 될 것입니다.

구름이 없이는 비가 없으며
비가 없이는 나무가 자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무가 없이는 우리는 종이를 만들 수 없습니다.

종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구름이 필수적입니다.

만일 구름이 이곳에 없으면 이 종이도 여기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름과 종이가 서로 공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략)

만일 우리가 이 종이 안을 더욱 깊게 들여다 보면
그 안에서 햇빛을 보게 됩니다.

햇빛이 그 안에 없다면 숲은 성장할 수 없습니다.

사실은 아무것도 자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햇빛이 이 종이 안에 있음을 우리는 봅니다.

종이와 햇빛은 서로 공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하여 바라보면 우리는 그 나무를 베어 그것이 종이가 되도록
제재소로 운반해 간 나무꾼을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밀가루를 봅니다.

그 나무꾼이 빵을 매일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빵을 만드는 밀가루를 이 종이 안에서 봅니다.

그리고 그 나무꾼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 안에 있음을 봅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바라볼 때 이 모두가 없이는
이 한 장의 종이가 존재할 수 없음을 보게 됩니다.

더욱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들이 그 안에 있음을 봅니다.

그렇게 보는 것이 어렵지 않으니
우리가 그 종이를 보고 있을 때 그 종이는 우리 지각의 일부인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과 내 마음이 이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이 종이와 함께 있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중략)

마음, 나무꾼, 햇빛 등
종이 아닌 요소가 없이는 종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얇은 종이 안에서
그것은 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김해창 교수
김해창 교수

존재한다는 것은 ‘공존’한다는 것이다. 하루에 한 번쯤은 태양을 바라보자. 태양의 빛에 우리의 마음을 맞춰 보자.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좋고, 햇빛이 나면 햇빛이 나는 대로 감사하는 기쁜 그런 하루를 살자. 순간을 알아차리는 삶을 살아보자. 틱낫한 스님의 명복을 빕니다.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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