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지방선거가 끝났다. 제20대 대선에 이은 제8회 지방선거에서 야당은 쓰라린 패배를 맛보았다. 야당이 다시 국민의 신임을 얻고 정권을 되찾기 위해선 혁신과 개혁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 중 하나가 세대교체이다. 소위 ‘386세대’의 용퇴가 필요하다고 한다.
386세대란 용어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이 깊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노무현은 서울 지역의 보장된 재선 공천을 마다하고, 지역주의와 맞붙기 위해 부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노 후보가 낙선하자 지지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대한민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조직했는데 그 중심 세력이 바로 당시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생’을 의미하는 ‘386세대’였다. 이들이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어냈고, 그 뒤 2004년 총선에서 ‘전대협’ 간부 출신들이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대거 당선됨으로써 ‘386세대 정치인’이란 용어가 회자됐다. 386세대는 나이가 듦에 따라 ‘486, 586’이 된 후에도 정치사회 영역에서 여전히 386세대로 지칭되며 주목을 받아왔다(「1987년 그 뒤 20년 : 386세대 500명 설문 조사」(한겨레신문, 2007년 1월 3일).
김정훈·심나리 등은 『386 세대유감』(2019)에서 ‘386세대에게 헬조선의 미필적 고의를 묻다’는 부제를 달면서 386세대를 이렇게 보고 있다. ‘20대에 민주화운동을 이끌었고, 그 후광으로 30대에 정계에 진출했으며, IMF의 파고 덕분에 윗세대가 사라진 직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굳히고, 40대에 고임금과 부동산으로 빠르게 중산층으로 진입하고, 자신들만의 끈끈한 네트워크로 오랫동안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세대’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386세대가 지난 대선과 이번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정치적으로 몰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지난 3, 4월 386세대 정치인으로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달 김부겸 전 총리도 퇴임과 함께 정계은퇴를 선언했고,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했던 민주당 출신 386세대 정치인 상당수가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김영춘 전 장관의 정치은퇴 선언에 언론은 386세대, 지금 586세대의 첫 번째 정치은퇴 사례라며 화젯거리로 띄웠다.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35년 넘게 정치 활동을 하면서 장관, 3선 국회의원을 지낸 386세대의 대표 정치인인 김 전 장관은 KBS 좌담(2022년 5월 27일)에서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정치를 그만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대선 후보가 저보다 정치적으로 아주 후배이고, 이 시점에서 더 이상 가슴이 뛰지를 않았다. 거대담론의 시대가 저물고 생활정치의 시대가 왔다면 내가 적합한 사람인가 자문자답해봤다. 저의 정계은퇴는 철저하게 개인의 문제지 세대의 문제는 아니며 386세대 전체가 용퇴를 해야 한다는 식의 관점에는 반대한다”.
그는 지금은 주로 고향 부산에 머물면서 부경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고 앞으로 ‘부울경 메가시티포럼’ 일을 좀 더 열심히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386세대의 몰락은 이들의 자녀세대인 ‘MZ세대’의 지지를 받지 못한 데 상당한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MZ세대는 1980~1994년생을 일컫는 ‘밀레니얼(M)세대’와 1995~2010년생을 뜻하는 ‘Z세대’를 합쳐 일컫는 말로서 2019년 현재 국내 인구의 약 34%(1700만명)를 차지한다고 한다. MZ세대는 특히 소비·경제활동 측면에서 이전 세대와 뚜렷하게 구분된다. 이들 세대는 유년기에 IMF 외환위기, 성장기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하에 부모세대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안정된 직장을 선호하지만, 정규직 취업의 진입장벽에 부딪히며,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낮다. 사상 최초로 부모세대보다 가난해지는 세대가 될 것으로 예상되며, 월급만으로는 살 집을 마련할 수 없게 되면서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에 관심이 많다. 구매력이 부족함에도 명품과 한정판 구매에 적극적이고, 중고물품거래 플랫폼을 통해 쓰던 물건의 거래를 꺼리지 않는다(위키백과).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트렌드에 민감하며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MZ세대에게 386세대는 ‘기득권’이자 ‘꼰대’가 돼버린 것이다.
그런데 환경선진국으로 알려진 독일을 보면 오늘날의 독일사회를 이끌어 온 사람들 또한 우리나라로 치면 386세대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1960년대 태어나 70년대 초등학교 때부터 환경교육을 받고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로 굳이 우리식으로 이름을 붙이자면 ‘환경386세대’라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의 386세대가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면 독일의 386세대는 환경운동에 앞장선 세대라고나 할까.
1970년 서독 연방정부는 초등학교에 대기·수질오염이나 쓰레기문제, 동식물의 보호 등 환경에 대한 사실을 중시하는 환경교육 실시를 포함한 ‘교육보호70’을 공시했고, 1971년에는 연방환경계획을 공표했다. 연방환경계획의 핵심은 공해의 예방원칙, 오염 원인자 부담 원칙의 실시, 환경보호의 실효성을 위한 연방과 기초 및 연구교육기관 그리고 시민이 부담해야 할 공동책무와 협력, 국제협력의 요청과 협력 원칙 등 4가지였다. 이러한 독일의 철저한 환경교육이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이다. 흑림(黑林)을 비롯한 귀중한 산림이 산성비로 말라죽기 시작하고, 함부르크 동부의 쓰레기소각장에서 다이옥신 발생 문제 등이 심각해지자 어릴 적부터 환경교육을 받아온 독일 386세대가 정부에 환경대책 강화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분트(BUND) 등 환경단체와 녹색당을 통해 환경정책의 근본적인 개선을 도모해왔다.
이러한 환경386세대의 대표적인 사례로 2002년 ‘독일의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시의 시장으로 당선돼 16년간 재임한 디터 잘로몬 씨를 들 수 있다. 잘로몬 시장은 독일녹색당 프라이부르크시 지부장 출신이다. 프라이부르크시의 여성 환경부시장인 슈투트 게르투릭 씨도 당시 40대의 환경386세대였다. 독일의 환경운동은 이러한 환경386세대의 힘으로 정치·경제·사회 전 분야로 확산됐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블로그(https://blogs.ildaro.com/4134)에 쓴 녹색정치 연구자 손어진의 ‘기후위기 시대의 정치! 독일 녹색당 이야기’를 보면 이들 환경386세대의 힘을 느낄 수 있다(2021년 7월 27일). 2020년 창당 40주년을 맞은 독일 녹색당(Bündnis 90/Die Grünen)은 1970년대 독일 정부가 적극적으로 핵발전사업을 펼쳤을 때 이를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들을 중심으로, 1980년 서독에서 창당했다. 정부의 핵 정책을 비판하고, 독일 사회에 핵발전과 핵폐기물의 위험을 제기해 왔다. 1998년 녹색당은 사민당과 적록(赤綠)연립정부를 구성해 “모든 핵발전소를 2022년까지 폐쇄한다”는 탈핵법을 제정했다. 2009년에 기민당과 자민당 연립정부가 원전 수명 연장으로 돌아섰을 때, 독일 전역에서 반핵시위가 일어났고, 2011년 후쿠시마원전사고 이후 독일인들의 여론이 메르켈 정부에게 강력하게 탈핵정책을 요구한 데에는 녹색당의 기여가 컸다. 메르켈 총리를 ‘기후 총리’로 만든 것이 녹색당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 녹색당은 청년층의 지지 받는 정당으로 40대 초반의 여성 총리후보를 배출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의 선거에서 녹색당은 연이은 상승세를 보였다. 2018년 바이에른 주 선거에서 녹색당은 17.6%로 역대 최고 득표율을 기록하며 사민당을 재치고 제2당이 되었고, 2019년 브레멘과 브란덴부르크 주 선거에서는 각각 17.4%와 10.8%를 기록하며 최초로 연립정부에 참여했다. 2021년 3월에 열린 바덴뷔텐부르크 주 선거에서는 최고 득표율인 32.6%를 기록하며 또 한번 녹색당 주 총리를 배출했다. 2019년 5월 유럽선거에서 녹색당은 20.5%의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그 중 30대 이하 지지율이 33%로 독일 30대 이하 청년들 세 명 중 한 명이 녹색당에 표를 주었다.
『88만원 세대』(2007) 저자인 우석훈 박사는 2019년 “한때 어느 세대보다 진보적이었던 386세대가 이제 혁신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해법은 정치, 경제 등 각 분야에서 제도적으로 청년의 과소 대표성을 개선해 세대의 다양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조선일보, 2019년 8월 22일).
『386 세대유감』은 386세대에 대한 바람을 이렇게 드러내고 있다.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세상은 30여 년 전 386세대가 눈물 흘리며 바랐던 그 세상과 다르지 않다. 그들이 바랐던 혁명이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현재 진행형이라면, 세대 독점의 해소는 비록 늦었지만 혁명의 완결로 가는 길일 수 있다. 이제는 혁명의 열정을 뽐내는 주체가 아니라 염치와 배려의 미덕을 풍기는 혁명의 지원군으로서 말이다.’
대한민국 민주화의 주역이었던 386세대, 386시대가 저물고 있다. 이제는 자녀세대인 MZ세대의 말을 경청하고, 지원해주는 것이 386세대의 마지막 남은 시대적 사명이 아닐까 싶다. 그간의 정치적 이념적 잣대에서 과감히 벗어나 미래세대를 위해 자신의 남은 열정과 역량을 지역사회에서 마음껏 발휘하는 ‘지역 데뷔’를 했으면 좋겠다. 독일에서 보았듯이 환경교육은 적어도 한 세대를 내다보고 해야 한다. MZ세대 또한 386세대를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줬으면 한다. 386세대와 MZ세대가 서로 소통하며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환경마인드를 키우고 함께 실천해 가는 일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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