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바다를 품고 산다. 내 이름에 바다(海)가 있고 푸름(蒼)이 있다. 내 마음은 3곳의 바다를 기억한다. 첫 번째는 고향인 통영 앞바다. 미륵산에서 거제도 쪽으로 바라다보면 보이는 역사의 바다 바로 ‘견내량(見乃梁)’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학익진(鶴翼陣) 전법으로 왜선 60여 척을 격침시킨 ‘애국의 바다’이다. 그 다음은 포항 남구, 옛 영일군 장기 앞바다로,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을 지낸 곳이다. 동네에서 5리 정도 떨어진 바다는 해수욕을 즐겨하던 자연놀이터였다. 그리고 부산 영도 중리 앞바다. 고등학교 때 ‘태평양 창파만경’을 가슴에 안고 큰 꿈을 키우던 ‘희망의 바다’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부산 남천동 바닷가에서 매일 바다를 보면서 살고 있다.
논어 〈옹야(雍也)〉편에 나오는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 즉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고 하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인자보다는 지자의 삶이 더 와 닿는 것 같다. 그 뒷구절인 ‘지자동(知者動), 인자정(仁者靜), 지자락(知者樂), 인자수(仁者壽)’은 ‘지혜로운 사람은 활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평정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을 즐길 줄 알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고 해 요산요수(樂水樂山)의 의미를 풀어내고 있다.
5월 31일은 ‘바다의 날’이다. 해양을 둘러싼 국제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적극 대처하고, 해양 개발의 중요성과 바다에 대한 국민의 인식 확산 등 해양사상을 고취하며, 종사자의 자긍심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다고 한다. ‘바다의 날’을 제정하는 데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1994년 11월 발효된 국제연합(UN)의 ‘해양법 협약’이다. 미국은 1994년에 매년 5월 22일을, 일본은 1995년에 매년 7월 20일을 ‘바다의 날’로 정했다. 우리나라는 1996년 5월 31일을 ‘바다의 날’로 제정했는데 신라시대 해상왕 장보고(張保皐)가 전남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한 828년 5월을 기념한 것이라고 한다. 세계 해양의 날(World Oceans Day)은 매년 6월 8일로 2008년 UN이 공식 채택하면서 세계 기념일이 되었다.
바다는 플랑크톤 같은 미생물에서부터 대형 어류나 고래 등과 같은 생물이 서식하는 자연의 보고다. 물순환이나 어업을 통해 인류를 포함한 육상생물을 먹여살리는 ‘어머니의 품’ 같은 곳이다. 지구의 바다는 농도 3% 전후의 소금 등이 녹아있는 바닷물로 이뤄져 있으며 지표의 70.8%를 차지한다. 바다의 면적은 약 3억6106만㎢로 육지면적 약 1억4889만㎢의 2.42배이고, 평균적인 깊이는 3729m이다.
바닷물은 푸른빛을 띤다. 바닷물은 태양으로부터 나온 가시광선 속에 붉은 장파장은 표층 2~3cm에서 흡수되지만, 푸른 단파장은 깊이 나아가 수심 50m까지도 1/5정도가 도달한다. 이 푸른빛이 물속에서 산란되어 물위로 닿아 바다가 푸르게 보이는 것이다.
바다는 각종 어패류 등 수산자원 및 조석, 파랑 등 에너지자원, 석유, 망간, 천연가스 등 광물자원, 마그네슘, 우라늄 등 해수용존자원 등 자원의 보고이다. 바다는 지구의 자연환경을 지배하는 주요 인자로 지구의 거대한 열저장 장소로 지구의 기후를 조절한다. 바다는 해상 운송 및 교통의 수단으로도 중요하며, 해상공원, 해수욕장 및 해상구조물 등 공간적 이용 가치도 매우 크다. 79억 인류의 3분의 2가 해양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인류는 바다를 인간 활동에 따른 부산물 처리장으로 오랫동안 활용해왔다. 특히 산업혁명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오염물질의 해양유입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육지 연안해역의 오염이 심각해지고, 바다의 자정능력에도 한계가 왔다. 이제는 인류가 해양환경을 깊이 생각해야 하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지혜와 힘 모아야 할 때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해양오염의 종류는 △유류오염 △부영양화 및 적조 △중금속오염 △잔류성 유기화합물질오염 △폐기물오염 △열오염 △방사능오염 등 다양하다. 유류오염은 해양오염 가운데서도 피해가 치명적이고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 2007년 삼성허베이호 기름유출사고로 태안 앞바다를 비롯한 서해 일대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는데 총손실액이 3억3000만 달러로 추정됐다. 부영양화 및 적조는 어획량이나 양식에 큰 피해를 준다. 중금속오염도 심각한데 자동차연료에 쓰이는 납(Pb)이 눈비로 인해 사용량의 70%가량이 바다로 흘러들고 카드뮴, 수은 등과 같은 독성물질도 결국은 바다에 모인다. 이런 중금속은 생물농축이 될 경우 중독성은 훨씬 높아진다. 잔류성 유기화합물질은 유기염소계 농약이나 연료 연소 및 쓰레기 폐기 등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져 바다로 유입된다. 폐기물오염의 대표적 사례는 하와이에서 1600㎞가량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위치한 쓰레기섬이다. 한반도 면적의 수십배에 이르는 이 쓰레기섬의 90%가 플라스틱류라고 한다. 열오염은 원자력발전소나 화력발전소 등에서 나오는 방대한 온배수가 바다로 배출되는 것이다. 이러한 온배수는 특정 해양생물에게는 치명적이며 바닷물에 녹아있는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으로 나오게 해 지구온난화를 부추킨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육상 또는 수중 핵실험을 통해 인공 방사성물질이 해양으로 유입된다. 1972년 런던협약으로 고준위 방사능폐기물 해양투기를 금지한 이래 1994부터는 저준위의 고형폐기물에까지 투기금지가 확대됐다. 한편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해양방출 결정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등 태평양 연안국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그러면 해양오염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제조자책임을 명확히 하여 오염발생원을 막아야 한다. 생산 중단이나 원료대체 및 생산공정 수정이 필요하다. 이것은 소비자의식과도 직결된다. 자원재사용 또는 재순환을 철저히 해야 한다. 또한 오염자부담제도를 정착시켜 오염피해 보상은 물론 오염현상 저감 및 원상복구비용을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해양오염방지법, 연안역 통합관리 등 법제 정비가 절실하다.
부산은 바다의 도시, 즉 해양도시이자 해항도시이다. 해양수도 부산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 답은 해양성과 창조성에 있다. 부산의 해양문화적 특성인 결절성(매개성, nodality), 혼종성(hybridity), 네트워크(network), 다문화성(multi-culture) 등을 잘 살리는 게 중요하다. 이와 함께 해양수도 부산이 되려면 시민들의 진취적인 해양의식을 고취시켜야 한다.
이 점에서 안용복 장군의 바다사랑을 배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690년대 조선 숙종 때 울릉도 독도가 조선땅임을 주장해 일본을 굴복시킨 분이다. 부산 좌천동 태생의 노비 출신으로 동래부의 전선 노꾼으로 일했고 왜관을 드나들며 일본어를 습득했다. 수영사직공원 내 수강사에 안용복 장군 사당이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용복 장군의 애국정신을 널리 알리는 일이다. 5월 31일 바다의 날은 장보고를 기려 만든 날이지만 부산지역으로 본다면 안용복 장군의 정신을 더욱 기리는 날로 삼았으면 한다. 그래서 요즘 인기 있는 이순신아카데미와 같이 부산지역에 안용복아카데미가 성황을 이뤘으면 한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안용복 장군을 기려 안용복홀, 안용복관, 안용복로, 안용복호, 안용복함 등 우리의 삶 속에 장군의 나라사랑·바다사랑 마음이 깊이 자리 잡기를 바란다.
사마천의『사기(史記)』에 ‘태산불사토양(泰山不辭土壤)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라는 말이 있다. 태산은 한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높을 수 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았기에 그렇게 넓고 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즉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도량이 넓은 사람이 되라는 경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무리 하해(河海)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바다에 함부로 온갖 쓰레기나 오염물질을 흘러버리는 일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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