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지킴이 안용복 장군의 기개와 정신을 되살리자!"

한국전통무예단체협·안용복장군기념사업회 16일 '안용복 장군 포럼' 개최
김해창 교수 '안용복 장군의 나라사랑 바다사랑 이야기' 특강

조송현 기자 승인 2022.06.17 11:34 | 최종 수정 2022.06.21 21:49 의견 0
'안용복 장군 포럼' 개최한 한국전통무예단체협의회와 안용복장군기념사업회 회원들 

6월 호국의 달을 맞아 울릉도·독도를 수호해온 안용복 장군을 주제로 한 포럼이 열려 부산 출신인 안용복 장군의 얼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제안됐다.

한국전통무예단체협의회(총재 오동석)와 (회장 안판조)는 지난 16일 오후 3시 부산 해운대 우동 한국전통무예단체협의회 사무실에서 ‘안용복 장군 포럼’을 가졌다. 이날 김해창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가 ‘안용복(安龍福) 장군의 나라사랑 바다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특강을 했다.

『창조도시 부산 소프트전략을 말한다』(인타임, 2021) 저자인 김 교수는 이날 주제 강연에서 “부산시가 동북아 해양수도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독도지킴이 안용복 장군의 기개와 정신 되살리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부산시가 안용복장군기념사업회를 적극 지원하고, 안용복장군기념관 조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날 △기념사업회가 중심이 돼 가칭 ‘안용복 장군 나라사랑 포럼’을 열어 범시민운동으로 확대해 시민 회원을 많이 확보할 것 △부산시가 기념사업회를 적극 지원할 것 △부산시가 안용복장군기념관 조성 및 동구 좌천동 안 장군 생가 복원에 적극 나설 것 △안 장군과 함께 도일(渡日)한 박어둔(朴於屯) 공 등 다른 지사들에 대한 연구, 선양사업을 적극 지원할 것 등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우선 박형준 부산시장을 비롯해 부산지역 공공기관장들이 안용복 장군의 제향식(4월 18일)에 적극 참석할 것과 안용복 장군 기념시설이 있는 수영구, 동구청이 나서 안 장군 기념 시설과 관련해 통일된 이미지를 설정하고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현재 부산 동구 증산로에 건립된 안용복기념부산포개항문화관에 ‘안용복 도일사 전시관’이 있으나 이들 시설의 명칭을 ‘안용복장군기념부산포개항문화관’, ‘안용복장군 도일사 전시관’으로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또한 안용복 장군의 기개와 나라사랑 정신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부산연구원이나 지역 대학이 보다 적극적으로 안용복 장군과 독도문제에 대한 연구에 나서고, 지자체가 이를 지원하는 체제 마련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민운동 차원에서는 ‘안용복나라사랑아카데미’ 또는 ‘안용복 해양아카데미’와 같이 부산다운 시민강좌나 포럼을 전개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는 ‘이순신아카데미’와 ‘장보고아카데미’가 활성화되고 있으나 ‘안용복아카데미’는 없다. 김 교수는 이와 함께 앞으로 ‘해군 잠수함 장보고함’도 나와야 하고, 부산지역의 관공서 공간에 ‘안용복홀’ ‘안용복관’, 도로명으로 ‘안용복로’를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해창 교수의 '안용복 장군의 나라사랑 바다사랑 이야기' 특강

안용복 장군은 17세기 말 울릉도 독도가 명백한 우리나라 영토임을 주장해 일본으로부터 확약을 받은 민족의 위인이다. 안용복은 조선 숙종(재위 1674~1720년) 때 동래 어민 출신의 좌수영 수군인 능로군(노꾼)이었지만, 왜인들에게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약받는 등 큰 업적을 세워 장군으로 추앙받았다. 안 장군은 1693년에 일본 본토에 가서 막부의 고위 관료 앞에서 당당하게 독도가 우리 땅임을 주장하여 일본이 인정하게 만들었다. 당시 대마도주가 죽도에 우리 어민들이 들어왔다며 울릉도를 슬쩍 죽도인 양 기만하려 하자 그는 조종의 강토를 한 치도 내줄 수 없다고 주장해 죽도는 무시한 채 울릉도에 대한 소유를 못 박았다. 안 장군은 조선과 일본을 상대로 이중플레이를 펼치며 울릉도를 편입하려 했던 대마도주의 행위를 고발해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을 확고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2차 도일 후 조선 조정은 안용복이 함부로 벼슬을 사칭하고 양국 간에 외교 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안용복을 체포해 사형에 처하려 하다 격론 끝에 유배형으로 감형됐다. 1658년에 태어난 것으로 계산하면 40세 때의 일이었다. 유배형에 처해진 뒤 그의 행적은 알 수 없다. 안용복은 비록 조선의 현실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처벌 대상이었으나 이미 기개 있는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었던 것이다. 안용복은 독도 문제가 다시 불거진 1960년대 와서 재조명됐다. 1967년 1월 박정희 대통령은 “국토를 수호한 공로는 사라지지 않을 것(國土守護, 其功不滅)”이라는 휘호를 안용복장군기념사업회에 기증했다.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안용복은 호패에 씌어진 거주지가 ‘부산(釜山) 좌자천(佐自川) 일리(一里) 십사통(十四統) 삼호(三戶)’로 지금의 부산시 동구 좌천동 일대이다. 또한 ‘동래부의 노꾼으로 왜관을 드나들어 일본어를 잘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김 교수는 정원길 안용복연구소장이 쓴 ‘안용복 장군과 아이젠하워 대통령 리더십의 공통점 ’ 내용을 소개했다. 안용복과 아이젠하워는 모두 군인 출신이며, 뛰어난 외교능력을 발휘했고, 솔선수범하는 민주적 리더 리더십을 보여줬으며, 뛰어난 상황판단 능력과 화술을 가졌고, 미래의 비전제시 능력이 탁월했다고 강조했다.

이날 주제 강연 후 회원들의 질문이나 소감이 이어졌다. 조나연 사단법인 국가원로회의 부산시 부의장은 “국가원로회의 차원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에게 안용복 장군을 추앙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을 적극 전해야 하겠다. 지역 언론도 안용복 장군에 대한 기획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베트남에서 무술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안상원 무술감독은 “월남전 참전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천하흥망에 필부일책, 즉 세상이 잘못 돌아가는 데에는 필부라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면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안용복 장군 기념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용만 한국전통무예단체협의회 사무총장은 “전 부산시립무용단 홍기태 수석안무가의 안무로 8월경 안용복 장군 추모 등불춤을 함께 선보일 계획이며 앞으로도 안용복 장군 일대기를 춤으로 표현하는 작품도 준비해 시민들에게 안용복 장군의 얼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적극 펼쳐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안판조 안용복장군기념사업회 회장은 “예전에 기념사업회가 부산시와 위원회까지 구성해 안용복 장군기념관을 만들려고 했는데 결국은 부산시의 무관심으로 대상 부지가 아파트단지로 바뀐 것은 너무 안타깝다”고 말하며 “앞으로 안용복장군포럼을 활성화해 보통사람의 위대한 리더십을 널리 알리는 데 지혜를 모아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참석자들은 포럼에 앞서 한국전통무예단체협의회 차원에서 안용복 장군 진혼제 축문을 낭독하기도 했다.

“동해를 지키시는 안용복 장군이시여! 장군께서 온몸으로 지켜왔던 동해바다 동쪽 끝에 있는 우리의 섬, 독도에서 대한민국 국운이 상승하여 다시는 어느 누구라도 우리 영토를 넘보는 일이 없도록 보살펴주시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하옵나이다.”

<pinepines@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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