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창 교수의 생태 이야기 (27) 희망의 무지개

김 해창 승인 2022.07.12 08:24 | 최종 수정 2022.07.14 08:58 의견 0
캐나다 한 평원에 뜬 무지개 [픽사베이]

요즘 같은 무더위에 간혹 소나기가 내리다 개인 여름날 아침 저녁엔 운이 좋으면 무지개를 볼 수도 있다. 최근에 아침 운동 삼아 자주 가는 송정 바닷가 인근 테니스장에서 무지개를 봤다. 지난해 여름 저녁 무렵 광안대교에 걸린 무지개를 황홀하게 바라본 기억이 있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은 뛰누나./ 나 어려서 그러하였고/ 어른 된 지금도 그러하거늘/ 나 늙어서도 그러할지어다./ 아니면 이제라도 나의 목숨 거둬 가소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원하건대 내 생애의 하루하루가/ 천생의 경건한 마음으로 이어질진저(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So is it now I am a man; So...Child is father of the Man;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무지개를 보거나 머리에 떠올리면 생각나는 시가 바로 19세기 영국 최고의 낭만파 계관시인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의 ‘무지개(원제: My heart leaps up)’이다. 외우기도 쉽지만 나이가 들면서 가슴에 더 와 닿는 시이다. 

구약성서에 ‘노아의 홍수’ 이후 하느님이 분노를 풀고 인간과 새롭게 맺는 약속의 징표로 보여준 ‘희망의 가교’가 무지개 아닌가. 지난 5월 10일 제 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식이 진행된 서울 하늘엔 무지개가, 문재인 전 대통령이 내려간 경남 양산 평산마을 사저 인근엔 햇무리가 관측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무지개는 태양이 소나기의 빗방울을 비출 때 태양과 반대방향에서 가장 흔하게 관찰되고, 햇무리는 햇빛이 대기 중 수증기에 굴절돼 태양 주변으로 둥글게 무지개처럼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백과사전을 보면 예전엔 동서양이 무지개에 대한 느낌이 달랐다. 서양에서 무지개는 행운의 상징이다. 아일랜드의 민간 전승에서 세 개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요정 레프리콘이 무지개가 끝나는 지점에 황금이 담긴 항아리를 숨겨놨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런데 동아시아에서는 옛날에 흉조(凶兆)로 받아들였다. 상나라부터 무지개를 재앙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무지개, 쌍무지개, 흰무지개, 채운(彩雲) 등의 관측기록을 더러 찾을 수 있다. 대체로 나쁜 징조로 받아들였는데 특히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는 ‘백홍관일(白虹貫日)’은 임진왜란과 같이 나라의 재앙을 알리는 경고로 인식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도시에서 비가 갠 뒤 하늘에 서는 무지개를 쉽게 보지 못하게 됐다. 어릴 적 무지개를 보고 상상했던 아름다운 꿈도 사라지고 있다. 무지개가 잘 설 수 없는 도시 환경, 특히 대기오염 때문이다. 무지개는 태양의 반대쪽 하늘에 막 그친 소나기의 빗방울이나 물보라, 안개와 같은 물방울들이 햇빛에 굴절 반사돼 반원 모양으로 빛의 스펙트럼을 내놓는 자연현상이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바라보면 동심원으로 보인다. ‘빨주노초(녹)파남보’ 일곱빛깔 무지개색은 물방울이 프리즘 역할을 해 색깔별로 꺾이는 정도가 달라서 나타난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좀 더 과학적으로 무지개를 알아보면 가장 밝고 흔히 관찰되는 무지개는 빛이 물방울 내에서 1번 내부반사된 후 밖으로 나와 만들어진 ‘1차 무지개’라 부르는 것이다. 이 무지개의 호상 각반경은 42° 정도이고 안쪽에서부터 바깥쪽으로 보라·남색·파랑·초록·노랑·주황·빨강을 나타낸다. 때로 2차 무지개가 관찰되는데, 이것은 1차 무지개보다는 색이 희미하고 색층이 역전되어 있다. 2차 무지개는 약 50° 정도의 호상 각반경을 가지므로 1차 무지개의 위쪽에 나타난다. 이 무지개는 빛이 물방울 내에서 2번 내부반사해 생긴 결과이다. 1, 2차 무지개가 다 보이는 것이 이른 바 ‘쌍무지개’가 뜬 것이다. 무지개의 색상은 물방울의 지름의 크기에 따라 좌우되며, 지름이 약 0.06㎜ 미만의 작은 물방울일 때는 흰색이 된다. 따라서 흰색 무지개가 가장 많은 것은 작은 빛방울 또는 안개 물방울에서 생긴 무지개라고 할 수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무지개가 잘 뜨는 조건은 아침 저녁에 내리거나 그치는 소나기 같은 경우다. 소나기는 국지적으로 내리는 데다 구름의 이동 속도가 상당히 빠르기에 무지개가 뜨는 조건을 잘 충족하는 편이다. 이런 비구름은 보통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아침에 나타나는 무지개는 서쪽 편에 비가 오기 전에 뜨고, 저녁에 나타나는 무지개는 동쪽 편에 비가 그친 뒤에 뜨는 차이점이 있다. 이 때문에 아침 무지개는 비 올 확률이 대단히 높다는 일종의 민간 일기예보 역할도 한다. 여름에 내리는 소나기는 저녁 때 내리는 빈도가 높기에 여름날 저녁 동쪽에 뜨는 무지개를 보기가 쉽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물방울이 대기오염으로 인해 깨끗하지 못하다 보니 무지개가 제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데 있다. 예전에 이와 관련해 전문가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부산대 대기환경과학과 하경자 교수는 “비가 그칠 때쯤 내가 서 있는 쪽에서 파란색 공기 분자에 수증기가 있을 때 ‘레일리산란’이라고 해서 빛의 굴절이 잘 돼 무지개가 선명하게 보이는데 비해 에어로졸 등으로 인해 공기 중에 부유물질의 분포가 높아진 대도시에는 ‘미이산란’이라고 해서 빛이 분산됨으로써 뿌옇게 보이기에 무지개를 제대로 보기 어렵게 된다”고 설명했다.

WHO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대기오염에 의한 사망자는 2004년 9,749명으로 추산됐으나 2008년에는 11,944명으로 추산됐다. 한국의 경우 사망자비율이 급증한 것으로 나왔다. 2004년에는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인구 10만명 당 21명을 기록해 비교대상 국가 중 다섯 번째로 높았지만, 2008년에는 24명으로 두 번째로 높았다(제주환경일보, 2013년 10월 20일). OECD는 ‘대기오염의 경제적 결과’라는 보고서에서 한국인들이 대기오염 때문에 2010년 당시 100만 명당 359명꼴로 사망하고, 2060년에 1,109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됐다. 2017년 현재 한국인의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18,563명(인구 약 5,171만명)으로 추산된다는 것이다(2017년 3월 31일, KBS뉴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1999년 자료를 보면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회적 피해가 연간 평균 45조 원이다. 2017년 기준으로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자수가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4185명)의 4.4배나 된다. 멋진 무지개를 보기 위해선 결국 대기오염을 줄여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무지개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도시 만들기야말로 신이 내린 희망을 찾는 일 아닐까 싶다. 

도시에서 무지개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들이 너무 건물 안에만 틀어박혀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건물 안에서 사무를 보고 아이들도 예전과 달리 비가 그칠 때쯤 밖에 나가 노는 일이 너무 없는 것 아닌가. 소나기가 잦은 요즘 비가 온 뒤 하늘을 자주 보자. 도시의 하늘에 희망의 무지개가 서게 하자. 

김해창 교수
김해창 교수

한편 상징으로서의 무지개를 보는 눈도 가졌으면 좋겠다. 성소수자들이 성적 다양성을 상징하는 차원에서 LGBTQ(Lesbian+Gay+Bisexual+Transgender+Questioning+Queer)를 무지개색 깃발로 나타내다보니 무지개는 어느덧 성소수자의 표식으로 이해되고 있다.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나타내는 ‘프라이드 플래그’는 남색이 빠진 6색 무지개(빨주노초파보)를 사용한다(위키백과). 

무지개는 여러 가지 색을 포함하지만, 그 모두가 태양의 백색광에서 갈라진 것이며, 각 색 사이에 명확한 경계를 긋지도 못한다. 이 성질로 인해 무지개색 깃발은 다양성 공존의 상징으로 이용되고 있다. 일곱빛깔 무지개는 그 자체로 개성과 조화를 나타낸다고 할 것이다. 다양성 속의 일치(Unity in Diversity). 어느 색이 다른 어느 색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색색이 어울려서 세상의 빛을 이루는 것 아닐까? 차이는 있을지언정 결코 차별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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