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이 물바다가 됐다. 강북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 3명을 포함해 9명이 이번 수도권 폭우에 희생됐다. 이 와중에 물에 잠긴 차량 위에 올라 휴대폰을 보고 있는 ‘서초동 현자’, 수영모까지 쓰고 자유형 헤엄을 하고 있는 ‘신림동 펠프스’, 그리고 배수관의 쓰레기를 온몸으로 치운 ‘강남역 슈퍼맨’도 언론에 등장했다.
일강수량 기준으로 이번 서울의 강수량 기록(354.7㎜)은 1920년대 기존 최대치를 뛰어넘는 사상 최대치, 즉 하루에 내린 비로는 115년 만에 가장 많은 양이라고 한다. 언론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이니 수방 대심도터널 미비 등 호들갑스럽게 수해원인이나 수방대책 필요성을 제기하지만 홍수나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는 요순 임금 때부터 국가가 대응해온 ‘일상적 것’이다. 재해예방과 대응, 복구에 대한 국가 매뉴얼이나 전반적인 대응태세가 안일했던 것이 문제일 뿐이다.
이번 서울 물난리가 국내외 언론에 부각된 것은 영화 ‘기생충’이 현실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로이터는 이번 폭우를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같다”면서 “홍수가 한국에서의 사회적 차이를 보여줬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신림동 반지하 일가족의 침수 사례를 언급하며 “아시아 4위 경제 국가에서의 사회적 격차 증가에 관한 이야기이자 2020년 오스카상을 받은 한국 영화 ‘기생충’에 묘사된 반지하 침수와 불편한 유사성을 보유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이 가족의 죽음을 심각하게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서울신문, 2022년 8월 11일).
죽음이란 말을 생각하니 나 또한 수해로 죽다 살아난 경험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72년 9월 14일 당시 경북 영일군 장기마을(현 포항시 남구)에 대홍수가 들이닥쳐 한 마을에 9명이 숨졌다. 당시 극장을 하던 우리 집은 바로 개천 둑길 아래 집이 있고 그 앞에 극장이 있었다. 사흘간 405㎜라는 엄청난 비가 와서 마을사람들이 산 위 교회로 피신해 이틀을 보내야 했다. 중요한 살림도구를 극장 이층 영사실에 올려놓고 아버지는 가방 한두 개, 어머니는 대야에 라디오와 옷가지를 챙겨 앞서가고, 나는 외삼촌과 뒤따라갔지만 중간에 물이 목에까지 차올라 마지막 50m는 수영을 해 겨우 빠져 나왔다. 다행이 초등 4학년 때쯤 동네 형들로부터 못에서 배운 ‘개구리헤엄’ 덕에 살았다. 극장 옆 목욕탕을 하시던 아는 형 어머니는 대피중 동네 개울다리 안으로 몸이 빨려들며 실종됐다. 만화도 같이 보고 자전거도 같이 타고 놀던 옆집 동무 정근이는 할머니집에 갔다 산사태로 죽었다. 그 뒤 장날에 실성한 듯 동네를 휘젓고 다니시던 친구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우리는 살다보면 크고 작은 사고 위기에 노출돼 있다. 행정안전부의 ‘국민재난안전포털’에 들어가 보면 온갖 재난에 대해 알 수 있다. 태풍, 홍수, 호우, 강풍, 풍랑, 해일, 대설, 낙뢰, 가뭄, 지진, 황사, 조류 발생, 화산활동, 해수면상승, 산사태, 침수와 같은 자연재난과 화재, 산불, 건축물붕괴, 폭발, 교통사고, 전기화재, 산불, 건축물붕괴, 폭발, 교통사고, 전기·가스사고, 철도·지하철, 유·도선사고, 수난(水難)사고, 원전사고, 공동구재난, 대규모수질오염, 감염병·가축질병, 댐붕괴, 정전·전력부족, 금융전산 장애, 해양오염사고, 화학물질사고, 항공기사고, 화생방사고, 인공우주물체추락, 미세먼지 등 등. 국민재난안전포털에는 △자연재난행동요령 △사회재난행동요령 △생활안전행동요령 △비상대비행동요령 △안전수칙 △비상대비용품 △우리집안전점검 △재난대비안전점검 등 다양한 재난의 대처요령도 나와 있다. 포털은 또 비상용 생필품으로 조리와 보관이 간편한 쌀, 라면, 밀가루, 통조림 등(30일분), 식기(코펠), 버너 및 부탄가스(15개 이상), 담요, 내의, 라디오(건전지), 휴대용 전등, 양초, 성냥, 상비약품, 핀셋, 가위, 붕대, 탈지면, 반창고, 삼각건 등을 챙겨 놓을 것을 소개하고 있다.
『재난관리론』(이재은 외, 2006)에 나오는 위기와 재난의 종류는 정말 다양하다. △정치체계와 관련된 것으로는 전쟁, 무력시위, 쿠데타, 테러 및 파괴활동, 비행기 납치 등이, △경제기술체계로는 위험물질 유출, 해양·수질·대기오염, 오존층 파괴, 방사능 오염, 산성비, 일반 및 핵폐기물 매립, 구조물 붕괴, 폭발 등이 있다. △사회문화체계로는 인종·민족·지역 간 폭력적 갈등, 전염병·괴질의 출현, 폭력적 파업, 폭동 등이, △자연체계로는 홍수, 태풍, 지진, 가뭄, 폭염, 냉해, 한해, 우박, 해일, 화산폭발 등 다양하다. 이러한 것이 또한 복합재난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도시생존전문가인 우승엽은『재난시대 생존법』(2014)에서 “재난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다가온다. 당신은 스스로 생존하고 가족을 보호할 준비가 되었는가?” 라고 묻는다. 그는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재난을 평소에 생각하고 대비하는 ‘재난대피자(prepper)’가 돼야 한다며 한국사회의 내일을 위협하는 4대 위험으로 ‘전쟁위협, 자연재해, 경제에너지위기, 피로화된 시스템의 붕괴’를 든다.
전쟁위협으로는 △북한의 제한적 도발, 국지전 혹은 전면전 △중일(中日) 동남아국가 등 주변국의 전쟁 무력충돌 가능성 △미중(美中) 간 세계패권 다툼 △내전 및 폭동 가능성 등을, 자연재해로는 △지진 및 쓰나미 △방사능사고 우려 △기상이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온상승과 식량·식수부족 △신종 전염병의 창궐 등을 든다. 경제위기로는 △석유고갈과 산유국 수출 중단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세계경제 붕괴 우려 △주요 기간시설의 민영화 및 의료 민영화 등을, 피로화된 시스템의 붕괴로는 △노후원전, 지하철, 공장 등 각종 산업기간시설 사고 △세월호 참사와 같은 낡은 운송수단과 형식적인 점검시스템 △전국적인 대정전 사태 △식량의 자급자족 포기 및 자급률 급락 △묻지마 범죄와 테러 △사이버테러와 인터넷망의 붕괴 △정치이념·지역색·종교 학벌· 비정규직·빈부격차·외국노동자와의 갈등 등 숨어있던 갈등의 표출 등을 든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가 가장 큰 책무인 정부는 ‘위기관리의 일상화’가 기본이다. 그런데 작금의 서울 물난리 대처 행태를 보면 마치 세월호 때 콘트롤타워의 부재와 같은 상황이 떠올라 씁쓸하다. 결국 각자도생(各自圖生)이란 말인가? 국가가 재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후쿠시마원전사고와 세월호사고 등 과거 재난을 되돌아보면서 미래 위기에 대한 인식과 위기관리의 적정성에 대한 개개인의 성찰이 중요하다.
재난을 당했을 때 개인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와 관련해 개인 심리를 설명하는 것으로 ‘불안환기(不安喚起)모델’이라는 게 있다. 사람은 불안을 느끼게 될 때, 다음과 같은 3가지 패턴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첫째, 자주해결(自主解決), 즉 스스로 정보를 입수해 위해(危害) 여부와 회피방법을 판단한다. 둘째, 타자의존(他者依存), 즉 신뢰할 수 있는 타인에게 판단을 맡긴다. 셋째, 사고정지(思考停止), 즉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안전하다고 믿거나 막무가내로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중 가장 바람직한 것은 자주해결이다. 타자의존이나 사고정지는 자칫 공동체의 해결 노력을 방해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재난대응교육을 통해 자주해결을 유도함으로써 재해 시 유연한 판단을 가능하게 할 필요가 있다(堀井秀之·奈良由美子, ‘安心·安全と地域マネジメント’, 2014).
『재난이 닥쳤을 때 필요한 단 한권의 책-미국 최고 전문가가 알려주는 재난생존 매뉴얼』(2011)의 저자인 미 야바파이대학 코디 런딘(Cody Lundin) 교수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이 따라야만 생존계획을 제대로 세우고 지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생존계획의 핵심으로 △인간이 단기적, 장기적 위급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신체적, 심리적으로 필요한 것을 파악하고 인식하는 일 △재난에 대비해 가정에서 구비해 놓아야 할 것들 챙기기 △가족의 자급자족과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 편안함을 위해 임시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평소에 이해하도록 노력하라고 조언한다. 특히 도시에서는 2~4주 동안 외부의 도움 없이도 생활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전기차단기를 내리고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연습을 한번쯤 해보라고 권한다.
국가나 지자체의 재해대책도 중요하지만 가정·직장에서의 ‘재해예방’ 노력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가정이나 직장 단위에서의 재해예방과 관련해 ‘에리히-베커 모델’이란 게 있다. 이 모델은 재해의 리스크 관리를 위하여 ‘시장보험(market insurance), 자가보험(self-insurance), 자기방위(self-protection)’라는 3가지 수단을 잘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시장보험은 시장에서 판매되는 화재보험과 같이 재해보험을 구입하는 것이다.자가보험은 스스로 재난에 대비해 비상물품을 구입·비축하는 행위를 말한다. 자기방위란 건물의 내진보강과 같이 스스로 시설이나 장비를 개선하는 행위로 리스크를 줄이는 행위를 말한다. 재해는 확률적이며, 사회가 경험하지 않았거나 잊고 있는 재해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재해예방에 대한 공공투자는 그 자체가 경제이자 복지이며, 국가의 최우선 정책일 수밖에 없다.
우승엽은 가정이나 직장에서도 ‘휴대용 생존팩 EDC(Every Day Carry)’, ‘차량용 72시간 생존팩(Car EDC)’, ‘일터용 72시간 생존팩(Office EDC)’ 등을 준비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생존팩(EDC)은 구미나 일본의 경우 일상화되어 있고, 관련 사이트도 많고,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것들도 많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보편화되고 있지 않다. 정부 차원에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생존팩(배낭) 생산을 비롯한 ‘생존비즈니스’ 지원·육성대책이 필요하다. 재난관련 생존배낭 보급은 지자체 차원에서도 지역경제 살리기와 연계해 주민들에게 저렴하게 보급하는 방안을 마련했으면 한다.
앞으로 우리는 코로나19는 물론 이례적인 홍수, 폭염 등 기후위기로 총체적 재난상태에 직면할 것이다. 국가차원에서 종합적인 재난대응교육과 실행이 이뤄져야 마땅하다. 미국의 사회학자 C. 라이트 밀스(C. Wright Mills)는 1959년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책에서 자신이 경험하지 않더라도 간접적인 방법으로 사회구조를 상상(통찰)함으로써, 문제의 원인을 알아내고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어떤 사회문제를 자기 자신과 관련된 문제로 인식하고 성찰해 상황을 분석함으로써 스스로 문제해결에 참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자연재난, 인위재난, 사회재난의 형태로 나타나는 이들 위기·재난의 특징은 그 돌발적 성격으로 인해 사회 제반 가치와 규범·문화·관계들을 변화시키며 개인, 가정, 기업, 국가 전반에 이르는 총체적 난국을 가져온다. 무엇보다 재난은 반복적으로 발생하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재난을 보는 국가지도자의 인식과 대응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마하트마 간디는 ‘미래는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개인, 가정의 생존법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지역공동체의 안전, 나아가 기후위기와 같은 전 지구적 문제까지 의식을 확장하고, 집단지혜를 모아 실천하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미래를 만드는 일이다.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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