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산시민의 고리1호기 폐쇄 의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약 50일이 지나고 있다. 윤 정부는 ‘탈원전 백지화·원전 최강국 건설’을 내세우며 고리2호기를 비롯한 노후원전의 수명연장과 사용후핵연료의 원전 부지 내 중간저장시설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부산지역 시민환경단체는 지난 4월 하순부터 부산시청 앞에서 ‘고리2호기 수명연장 반대 릴레이 농성’을 벌이는가 하면 지난 6월 18일에는 전국 시민환경단체 활동가 300여명이 부산역 광장에 모여 ‘고리2호기 폐쇄!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 반대 6.18 전국탈핵행동’을 열고 광복동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윤 정부의 고리2호기 수명연장 추진은 문재인 정부 때의 ‘노후원전 폐로’ 약속을 뒤집은 것으로 부울경 주민에서는 헌법에 규정된 환경권의 하나인 정온권靜穩權, 즉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 권리를 일방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부산지역 시민단체는 지난 2015년 여야 할 것 없이 ‘고리1호기 폐쇄 부산범시민운동본부’를 결성해 박근혜 정부로부터 영구정지 결정을 이끌어낸 경험이 있다.
부산지역의 탈핵운동은 2011년 3월 후쿠시마원전사고를 계기로 폭발적인 힘을 갖게 됐다. 후쿠시마사고 발생 10여일 후인 2011년 3월 23일 고리핵발전소 앞바다에 ‘고리=제2의 후쿠시마?’라는 현수막을 단 고무보트가 해상시위를 벌였고, 다음날 ‘핵 없는 안전한 부산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약칭 반핵부산대책위]가 결성됐다. 반핵부산대책위는 ‘고리1호기 폐쇄 및 부산핵단지화 중단 부산지역 시군구의원 선언’을 이끌어내는 한편, 그해 4월 지구의 날을 맞아 ‘고리1호기 없는 부산 지구 생명 선언’ ‘고리1호기 폐쇄를 위한 문화제’ ‘핵없는 세상, 반핵영화제’ ‘고리원전 폐쇄 촉구 집회’ ‘반핵사진전’ 등을 전개했다.
부산시민들의 고리1호기 폐쇄에 대한 바람은 원전안전에 대한 부산시민의식조사에서도 잘 드러났다.(사)시민정책공방[차재권 동의대, 김해창 경성대 교수팀 조사]이 2014년 4월 부산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원전시민의식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고리원전에 대해 ‘위험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50%로 ‘안전하다’[16.4%]는 응답보다 훨씬 높았고, 고리원전에서 대형 참사 발생 가능성을 묻는 항목에 49.1%가 ‘높다’고 답했고, ‘낮다’는 응답은 18.5%에 그쳤다.
2. 고리1호기폐쇄 부산범시민운동의 결성과 전개
한수원의 고리1호기 재연장 추진을 막는 방법은 부산시민들의 단결된 힘밖에는 없다는 자각에서 일어난 것이 ‘고리1호기폐쇄 부산범시민운동’이다. 2015년 6월 한수원의 고리1호기 재연장 신청기한을 앞두고 그해 2월 부산지역의 진보․보수를 아우르는 약 120개 시민단체가 뭉쳐서 만든 것이 ‘고리1호기폐쇄부산범시민운동본부’[약칭 범시민운동본부]다. 범시민운동본부는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 정치계, 종교계, 학계, 언론계, 상공계 인사가 망라됐다. 초기 상임대표는 하선규 부산YWCA 회장이, 공동집행위원장은 최수영 부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김혜경 부산YWCA 사무총장, 김해창 탈핵에너지교수모임 공동집행위원장, 양미숙 부산참여자치연대 사무처장이 맡았다.
범시민운동본부 결성의 필요성은 2014년 가을부터 시민단체에서 흘러나왔다. 진보 보수를 결합한 범시민연대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고, 그러한 과정에서 1월 12일 부산YWCA, 부산환경운동연합이 주축이 돼 범시민운동본부를 결성키로 했다. 1월 20일에 진보․보수단체 각 1인을 공동대표[하선규, 서세욱]로 세워 범시민운동본부 결성 준비회의를 갖고 2월 2일 운동본부 결성 제안 회의, 2월 10일 범시민운동본부 대표자회의를 갖고 상임공동대표를 선출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바로 ‘고리1호기 폐쇄 100만인 서명운동’ 캠페인에 들어갔다.
이날 언론에 제공한 고리1호기폐쇄 범시민운동 배경 및 취지는 다음과 같다.
‘고리지역에는 가동중인 고리1~4호기와 신고리1․2호기를 비롯하여 99% 완공 상태인 3․4호기와 착공중인 신고리 5․6호기 등 총 10기의 원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수명연장 가동 중인 고리1호기의 안전에 대한 시민의 불안이 폐쇄여론으로 극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중략] 2015년 상반기에 한수원 및 원전당국이 고리1호기 2차 수명연장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부산시민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된 고리1호기는 이제 사회 각계가 망라된 범시민적 역량 결집을 통해 반드시 폐쇄시켜야 할 과제가 되었습니다. [하략].’
고리1호기폐쇄부산범시민운동은 운동본부를 중심으로 크게 대시민 홍보와 대국회, 대정부 투쟁으로 다양하게 전개됐다.
첫째, 범시민대회 개최 및 시민행진 그리고 홍보서명운동의 전개이다. 범시민운동본부는 2015년 3월 7일 부산역에서 약 1,700명의 시민이 참가한 가운데 ‘고리1호기폐쇄 부산시민대회’를 개최했다. 3월 7일에는 간나오토 전 일본 총리를 초청해 ‘후쿠시마는 말한다 고리1호기를 멈추라고’를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다. 3월 28일 고리1호기 폐쇄 100만인 서명운동 집중캠페인을 초읍 어린이대공원에서 벌였고, 부산YWCA는 전국YWCA와 함께 10만 서명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2014년 11월부터 고리1호기 주변은 물론 부산지역 곳곳을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 일반시민들의 ‘고리1호기 폐쇄를 위한 시민행진’이 30차례나 계속됐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과 녹색당 정의당 등 지역 야당 차원에서 1인 시위나 탈핵행사 등이 꾸준히 전개됐다.
둘째, 부산시장 및 부산지역 국회의원에게 고리1호기 폐쇄여론을 전달하고 국회를 압박했다. 고리1호기 폐쇄 부산지역 국회의원 정책질의를 3월 하순에 실시해 지역 국회의원 9명의 동참을 받아냈다. 응답을 하지 않은 6명의 의원에 대해서는 기자회견을 통해 유감을 표명했다. 범시민운동본부 공동대표가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를 방문, 면담을 통해 고리1호기 폐쇄에 힘을 실어줄 것을 요청했고, 문 대표는 시민단체 요구 사항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범시민운동본부 대표단은 5월 21일 부산시장 접견실에서 당시 서병수 부산시장에게 ‘부산시장․울산시장 고리1호기 폐쇄 촉구 공동 선언’ 및 청와대 수석비서관 면담 주선 등을 제안했고, 6월 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김동철 위원장을 국회 본관에서 면담해 고리1호기 폐쇄를 촉구했다.
셋째, 산업통상자원부에 대한 고리1호기 폐쇄 압박이다. 4월 22일 부울경 시민단체 대표자 등 200여명이 세종시 정부청사 산자부 앞에서 고리1호기가 7차 전력수급계획에 포함되지 않도록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지역여론을 전달하는 항의 방문 및 기자회견을 가졌다. 4월 29일에는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제7차 전력수급계획에서 고리1호기의 폐쇄를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하고 국회 산자위 방청을 하기도 했다. 6월 2일에는 서울 외교부 청사 4층 집무실에서 대표단이 산업통상자원부 문재도 2차관을 면담해 고리1호기 폐쇄를 거듭 촉구했다. 6월 8일에는 대표단 등 30여 명이 국회 정문 앞에서 ‘국회 고리1호기폐쇄 해결 강력 촉구 기자회견’을 가졌고, 6월 10일에는 부산시청 앞에서 최후의 농성에 들어갔다. 6월 12일 오전에는 서울 중구 롯데호텔 앞에서 열린 국가에너지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고리1호기 폐쇄안 수용 촉구 부산울산공동기자회견’을 가졌으며, 이날 오후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장인 산업부 장관으로부터 18일 이전에 한수원에 고리1호기 영구 정지를 권고하겠다는 공식 발표를 받아냈다. 범시민운동본부는 6월 13일 고리1호기 폐쇄안 환영 기자회견을 갖고 농성을 해제했으며, 24일 고리1호기 폐쇄 성과 시민보고대회를 갖고 해단식을 가졌다.
3. 고리1호기폐쇄 부산범시민운동의 성공요인
고리1호기폐쇄 부산범시민운동이 성공하게 된 요인은 무엇일까?
첫째, 설계수명연한 30년을 넘어 10년 연장한 노후원전 고리1호기를 더 이상 연장해선 안 된다는 데 대한 시민적 공감이 있었다는 점이다. 후쿠시마사고와 그 뒤 이명박․박근혜 정부, 원전당국의 부정비리 및 은폐사고 등으로 인한 불신과 2014년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이 원전사고 발생 시 대책에 대한 우려로 확산된 면도 크다. 또한 밀양송전탑 투쟁을 통해 원전 증설정책이 갖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됐고, 삼척지역에서 주민투표를 통해 원전 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방하게 된 것, 원전 주변 주민들의 갑상선암 소송이 1차 승소한 것 등이 고리1호기폐쇄운동을 이끌어내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큰 힘이 됐다.
둘째, 1990년대 중후반 위천공단 반대운동에 버금가는 범시민운동본부를 결성해 힘을 결집시켰다는 점이다. 종래 반핵부산대책위원회 등 진보 환경단체가 주장해오던 반핵․탈핵운동이 부산YWCA, 부산참여연대 등 일반 시민단체는 물론 자유총연맹, 새마을협의회 등 보수단체를 참여시켜 대 정부, 부산시에 대한 발언력을 높였다.
셋째, 시민단체와 아울러 부산시장 그리고 여야 정치인들이 모두 나서 다양한 노력을 했다는 점이다. 당시 서병수 부산시장이 일단 ‘고리1호기 폐쇄’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야당 정치인들이 적극 집회나 토론회를 열어 고리1호기 폐쇄, 나아가 탈핵문제를 공론화했다. 여당 정치인들도 국회 내에 위원회활동이나 산자부에 대한 권고 등을 통해 부산지역의 여론을 적극 전했다. 결국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여당 의원들이 ‘고리1호기 폐쇄’ 노력에 대한 시민들의 심판을 적극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넷째, 범시민운동본부의 활동도 대국회 설득, 산자부 압박, 부산시장 압박, 부산시의회 원전특위와의 공조, 집회 및 시위 조직 등이 체계적이었고, 부울경 지역은 물론 서울지역 시민단체와의 연계를 통해 압박 수위를 높인 것이 큰 힘이 됐다.
다섯째, 시민행진이나 서명운동 등 자발적인 시민참여를 통해 고리1호기 폐쇄의 당위성을 시민들에게 홍보했고, 전체 시민단체가 다양한 형태로 고리1호기폐쇄운동에 참여했으며, 지역언론도 고리1호기폐쇄에 대한 보도 및 특집을 적극적으로 지속적으로 펼쳤다.
고리1호기폐쇄부산범시민운동은 우리나라 탈핵의 역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고리1호기 수명재연장을 ‘부산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무시하는 폭거'라며 ‘향후 총선 및 대선에서 표로 심판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며 진보·보수할 것 없이 ‘고리1호기 폐쇄’에 뜻을 모아 중앙집권적 원전정책에 대한 반발심과 에너지지방분권의 큰 목소리를 낸 것이 정부의 방침을 바꾸게 한 가장 큰 요인이 됐다.
4. 고리2호기 수명연장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고리1호폐쇄범시민운동이 끝나고 그 뒤 촛불집회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에너지정책을 폈지만 국민들에게 그 필요성을 제대로 홍보하지 못했다. 설계수명을 다한 노후원전의 수명연장 금지를 원자력 관련법에 넣어야 했음에도 더불어민주당 내 일부 친원전 인사들로 인해 제대로 추진되지 않은 것이 윤 정부 이후 수명연장 추진의 빌미를 제공했다. 부울경 주민 입장에서는 지금이라도 국회 차원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앞장서 노후원전 수명연장 금지 입법화를 하도록 촉구할 필요가 있다. ‘친원전’이냐 ‘탈원전’이냐는 시대에 따라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럴수록 민주적 절차가 중시돼야 한다. 따라서 노후원전의 수명연장을 하려면 원전 반경 30km 이내 주민들의 동의를 얻는 주민투표를 거쳐야 할 것이다.
고리2호기 수명연장은 사실상 경제적 실익이 없다. 세계는 ‘탈원전 에너지전환’이 대세이며, 원전산업은 사양산업이다. 원전단가는 계속 상승하는 반면 태양광·풍력발전 단가는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전 세계 196개 폐로원전의 평균수명이 27.1년이니 40년 가동했으면 충분하지 않은가. ‘원전안전신화’는 깨진 지 오래다. 더 이상 지역희생을 기반으로 한 원전정책을 추진해선 안 된다. 윤 정부가 원전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다면 안전성이 우려되는 노후원전의 수명연장이 아니라 전력수요가 가장 많은 수도권에 장기적 전략을 갖고 국민을 설득해 EU기준의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일이다. 40년 이상 원전사고 리스크에 시달려온 원전입지 주민들에게 불안과 고통을 계속 안겨서는 안 된다. 원전경제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시 돼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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