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CNN(2022년 7월 19일)에 따르면 영국 기상청은 공식 블로그에 ‘2022년 여름 : 북반구 폭염의 역사적 계절’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유럽 폭염의 원인으로 ‘고기압·기후변화·가뭄’을 들었다. 전날 런던 북측 링컨셔주의 코닝스비 지역 최고 기온은 40.3℃까지 치솟았다. 영국에서 공식 기온이 40℃를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1659년 기상관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363년 만에 처음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산하 공동연구센터가 최근 발간한 유럽 가뭄 보고서에 따르면 EU 영토의 46%가 가뭄 주의, 11%가 가뭄 경보 수준에 노출된 것으로 분석됐다.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는 이탈리아는 이달 초 북부 포(Po)강 일대 5개 지역에 가뭄 비상사태를 선포하기도 했다(뉴시스, 2022년 7월 20일).
국내 상황도 심각하다. 봄부터 이어진 남부지방의 극심한 가뭄은 장마가 지나가는 동안에도 해소되지 못했다. 올해 장마는 7월 27일 전후로 끝날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1년간 누적 강수량은 평년 대비 28.7%에 불과한 수준이다. 가뭄이 가장 심한 전남의 경우 올해 누적 강수량은 399㎜로 평년 대비 53%에 그쳤다. 경북 지역의 올해 강수량은 지난 7월 18일 기준으로 268.7㎜를 기록했는데 평년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경남 양산 역시 최근 2개월간 내린 비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절반도 미치지 못했고 부산도 지난 6개월간 누적 강수량이 평년에 미치지 못했다. 반면 경기와 강원 지역 등 중부 지역은 이번 장마를 거치며 강수량이 평년을 웃돌았다. 낙동강수계 운문댐은 5단계로 나뉘는 가뭄 대응 단계 가운데 가장 높은 심각 단계, 섬진강수계의 주암댐과 수어댐은 바로 아래 단계인 경계 단계로 올라섰다(연합뉴스, 2022년 7월 22일).
요즘 여름 장마철이기도 하지만 거의 마른 장마 수준이다. 우리나라 남부지역의 가뭄이 생각보다 심각하다. 비가 내려도 대지의 갈증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낙동강 수질은 날로 악화되고 있고 농부의 가슴도 타고 있다. 그러나 수도꼭지만 틀면 언제나 마실 물이 나오는 도시인에게 물 가뭄은 쉽게 와 닿지 않는다. 빗물은 정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대지의 생명을 일깨우는 빗물.
빗물을 생각하다보니 십여 년 전 시민단체와 함께 둘러본 일본의 작은 빗물자료관이 떠오른다. 도쿄 스미다墨田구의 빗물자료관(雨水資料館)은 빗물이용조례를 제정한 스미다구가 지난 2001년 폐교를 수리해 만든 환경교육관이다. 이곳에선 각국의 빗물 문화와 물 부족 실태, 물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놓았다.
우선 빗물자료관 입구에 들어서자 비와 관련된 각국의 공예품이 전시돼 있었다. 죽부인 같이 생긴 긴 나무통을 좌우로 흔들어 보니 빗소리가 들렸다. 페루의 것은 선인장의 가시를 빼고 작은 돌과 옥수수 알을 넣어 빗소리가 나게 했고, 필리핀의 것은 대나무에 못을 박고 그 안에 돌과 곡식을 넣은 것으로 살살 흔들면 다양한 빗소리가 들렸다. ‘수금굴(水琴窟)’은 일본 초가집 모습에 구멍이 하나 있는데 귀를 갖다 대면 그 안의 세라믹에서 마치 동굴에 ‘똑~똑~’ 하며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러한 것은 비를 즐기는 문화를 반영한 것이다.
자료관 한 구석엔 세계의 연간 평균 강수량을 긴 줄로 구슬을 연결해 놓은 설치물이 있었는데 강수량 10㎜가 작은 구슬 하나였다. 우리나라는 연평균 강수량이 1300~1400㎜쯤 되니 제법 구슬도 크고 갯수도 많았는데, 페루는 10㎜ 작은 구슬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페루는 산악지형에 안개가 생길 때 그물 천막을 쳐 안개가 부딪혀 만들어 내는 물방울을 모아 옥수수를 키운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보츠와나는 1년에 비가 4일 정도만 내린다고 한다. 이 나라 국기의 푸른색은 비를 나타내고, 이 나라의 화폐 단위 ‘플라(Pula)’는 빗방울을 의미한다.
당시 이 빗물자료관의 관장인 무라세 마코토(村瀬誠) 박사(1949년생)는 방문객들을 자료관 마당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호박 모양의 대형 물탱크가 있고 그 밑에 물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무라세 박사는 물이 가득 담긴 항아리를 옆 사람에게 전달하게 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주로 쓰는 그 물항아리엔 보통 10ℓ의 물이 들어가는데 그곳 아이들이 하루에 4~5시간을 걸어서 길어와 온 식구가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일본이나 우리나라 대도시의 수세식 화장실에서 우리가 한번 내리는 물의 양이 이와 맞먹는다고 했다.
무라세 박사는 스미다구 구청 직원이었는데 빗물 이용과 관련해 박사학위를 받아 ‘빗물박사’로도 유명하다. 1994년 스미다구에서 ‘빗물 이용 도쿄 국제회의’를 개최해 실행위원회 사무국장을 맡기도 했고, 2002년 일본 물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09년 퇴직 후에도 도쿄 대형빌딩인 스카이트리 등 도시의 빗물 이용 프로젝트와 방글라데시에 빗물탱크 설치 등 빗물 시스템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가 2001년 서울대 안에 빗물연구센터를 설립하고 사단법인 빗물모으기운동본부, 사단법인 빗물모아지구사랑 등을 만들어 ‘빗물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다. 한 교수는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2011)이라는 저서와 『빗물을 모아쓰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일본 빗방울연구회)라는 번역서 등을 출판하기도 했다. 한 교수의 이러한 활동은 무라세 박사와의 교류에 힘입은 것이다.
한 교수는 책을 통해 빗물에 대한 세간의 오해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이를 교정하기 위한 주장들을 폈다. 그는 “빗물은 처음 얼마간을 제외하면 가장 깨끗한 물이며, 물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빗물에 대한 현명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의 노력으로 2002년 경기 의왕시 갈뫼중학교에 50t 규모의 빗물저장시설 2기를 주차장 지하에 매설하는 공사를 완공하고 그 뒤 스타시티 3천t 규모의 빗물저장시설을 설치하기도 했다. 한 교수는 “앞으로 아열대기후로 바뀌면서 도시 홍수 발생 가능성이 점점 높은데 이를 예방하는 데 효과적인 것이 빗물옥상정원을 만드는 일”이라며 “빗물관리는 강수의 집중과 부족, 하천과 제방 중심의 기존 관리에서 전체 유역에서 빗물을 관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주간인물, 2017년 11월 27일).
대구경북연구원 정성훈 박사는 「대경 CEO 브리핑」 제561호를 통해 ‘물 부족한 대구, 시민참여형 빗물 재이용 운동으로 풀어가자’라는 주제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정 박사는 이를 위한 방법으로 시민단체와 민간업체 등에게 공공청사 옥상정원이나 빗물 재이용 시설을 활용한 수익형 시민교육·문화·탐방프로그램 도입을 검토하고, 기존 지붕 면적 1000㎡ 미만인 건축물이나 건축면적이 5000㎡ 미만인 공동주택에 최대 1000만 원 지원이라는 소규모 시설에 국한된 지원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물 자원 절약시설사업을 민간 대행업체에서 선투자해서 설치하고 물 절약에 따른 절감비용으로 투자액을 회수해가는 민간투자 전문업(WASCO) 도입과 더불어 빗물 재이용 관련 빅데이터를 일반에 공개해 시민들이 빗물 재이용 모니터링 역할을 하도록 권장해야 한다고 했다. 이 밖에도 빗물 재이용 조례를 만들어 시민들이 빗물 재이용 시설 설치 때 인센티브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경북일보, 2018년 12월 17일).
캐나다 캔사스항공사의 기내식으로 이코노미석에는 먹는 샘물을 주지만, 비즈니스석에는 맑은 빗물을 제공한다고 한다. 빗물은 하늘이 내린 물(天水)이라는 것이다. 요즘엔 ‘비’ 하면 가수 비가 더 떠오르는 시대가 됐지만 빗물의 소중함만큼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슴까지 흠뻑 적셔줄 한여름의 시원한 소나기가 그립다. 이 소나기를 어떻게 모을 것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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