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9일은 국치일(國恥日)이다. 1910년 8월 29일 일제의 강압에 의해 우리나라의 국권이 상실된 날이다.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의 내각총리 매국노 이완용과 조선통감 데라우치가 순종 황제를 겁박, 형식적인 서명을 거쳐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을 공포함으로써 나라를 빼앗긴 날이다. 일제의 국권 침탈에 분개해 자결한 지사만 금산 군수 홍범식과 매천 황현 등 60여명에 이르고, 이후 35년간 일제식민지의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아놀드 토인비(1889~1975)가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에서 “인류에게 가장 큰 비극은 지난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듯이 역사의 교훈을 깊이 새기지 않으면 똑같은 역사가 되풀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8월 15일 광복절(光復節)과 더불어 국치일을 잊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제는 한 나라의 국권상실보다 더 심각한 인류문명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다. 바로 기후위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전’에 대한 제대로 된 ‘응전’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이다.
‘낙원 나우루섬’의 빗나간 운명은 우리 지구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암울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호주와 하와이 사이 남서태평양 적도 아래 있는 나우루섬(Nauru Island)은 ‘지구의 미래를 경험한 작은 섬’이라 할 수 있다. 여의도 두배 반의 면적에 인구 1만 명 정도 되는 나우루섬은 알바트로스의 똥이 쌓여 만들어진 인광석이 발견되면서 자급자족하던 섬이 급속히 세계 자본에 흡수돼 자원고갈과 함께 섬 자체가 황폐화된 ‘현대판 우화’가 벌어지고 있는 곳이다. 나우루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코코야자나 산호초와 바다가 제공하는 생물자원만으로도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래서 1789년 서구의 한 포경선 선장이 이 섬을 보고 ‘유쾌한 섬’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섬에 서구 부랑자들이 흘러들어 오면서 주민들은 코코야자와 돼지를 철제도구, 알코올, 담배 등 서구 문물과 바꾸기 시작했고, 총을 소지하게 되면서 종족 간에 전쟁이 일어났다. 결국 독일이 1888년 나우루 통치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 섬은 1896년 인광석의 발견으로 운명이 바뀐다. 요소비료의 원료인 인광석의 발견으로 나우루섬은 유쾌한 섬에서 ‘부유한 섬’으로 변했다. 반면 인광석 채광과 함께 유입된 기독교 문화는 나우루의 전통적인 생활관습을 한 순간에 바꿔버렸다. 1·2차 대전, 일본의 점령, 유엔의 신탁통치 등을 거치며 섬은 황폐해지고 사람과 환경도 바뀌었다.
다행히 1968년 나우루인들은 독립해 나우루공화국을 세웠다. 섬의 자연을 보호하면서 지속가능한 미래로 갈 것인가, 아니면 남아 있는 30~40년 매장량의 인광석을 채굴하며 섬을 파괴할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섰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후자의 길을 택했다. 섬 한바퀴를 차로 도는데 30분이 안 걸리는 이곳에 집집마다 차를 소유할 정도로 부자가 됐고, 의료시설도 좋아졌지만 비만·당뇨환자가 속출했다. 독립 후 40년이 지난 나우루섬에는 더 이상 캐낼 인광석도 없다. 인광석을 팔아 생활용품을 수입하던 나우루공화국은 이제 주변의 원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섬이 돼버렸다.
이는 생물학자인 칼 N. 맥대니얼(Carl N. McDaniel)과 생태경제학자인 존 M.고디(John Gowdy)가 쓴 『낙원을 팝니다-지구의 미래를 경험한 작은 섬 나우루』(Paradise for Sale: A Parable of Nature, 이섬민 역, 2006)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나우루섬은 개발과 탐욕, 눈앞의 이익을 위해 미래를 팔아버린 이야기로 환경을 무시하고 구가하는 부와 번영의 실체가 파국이라는 사실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나우루섬은 ‘멀지 않은 인류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나우루섬 이야기는 스웨덴 출신 언어학자이자 환경저술가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 Hodge) 여사가 지은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Ancient Futures: Learning from Ladakh, 1996)를 읽으면서 느꼈던 것보다 더 충격적이다.
인도 북부에 위치한 라다크는 ‘작은 라다크’라 불리며 비록 자원은 빈약하지만 모든 것을 아껴 쓰고 재순환하며 자급자족을 해왔다. 삶의 속도가 느리고 서로를 배려해 스트레스라는 말을 모르고 살아온 사회였다. 그런데 서구 산업문화가 도입되면서 무분별한 개발을 통해 획일적이고 단일한 문화가 확산되고 전통문화의 파괴, 경쟁사회와 자기중심의 탐욕사회로 바뀌어갔다. 특히 1974년부터 인도 정부가 이 지역을 관광객에게 본격 개방하면서 서구식 난개발이 계속됐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작은 공동체가 속속 무너지고, 라다크 사람들은 어느새 자신들의 문화에 대해 열등감을 갖게 되고 스스로 ‘가난하다’고 느끼고, ‘돈’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 서구식 교육은 경쟁을 유도하고 빈부격차가 커지고, 소외감과 결핍, 분노와 원한, 폭력을 낳았다. ‘배려’를 강조하던 라다크 문화가 사라졌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소위 ‘개발 속임수’를 라다크 사람들에게 알리는 운동을 펼쳤다. 더 이상의 개발과 경쟁을 지양하고 더불어 사는 삶과 농업공동체 복원과 같은 지역공동체 운동을 통해 ‘오래된 미래’의 지혜를 되찾을 것을 제시하고 있다.
지구상에는 나우루섬 외에도 오늘날 환경·생태의 현실을 보여주거나 지표가 되는 ‘지구의 축소판’인 섬들이 있다. 갈라파고스섬, 이스터섬, 태평양 쓰레기섬 등이 그러하다.
갈라파고스섬(Galapagos Islands)은 에콰도르 본토에서 서쪽으로 1,000km 떨어져 있는데 인구 2만6천여 명에 관광업, 어업, 농업이 주업이다. 1535년 발견 이래 한동안 해적의 은신처로 이용되었으며, 19세기 초에는 고래잡이와 물범잡이의 근거지가 되었다. 1832년 에콰도르가 영유권을 선언했는데 이곳이 유명한 것은 생물학자 찰스 다윈의 자연도태설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 곳이기 때문이다. 갈라파고스 동물들은 고유종 비율이 높고 대륙에서는 멸종된 동물이 잔존생물로 남아 있다는 점 등에서 과학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에콰도르 정부는 1935년과 1959년 이 제도(諸島)의 일부 지역을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갈라파고스섬은 독자적인 진화와 고유생태계를 갖고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고 있으나 한편 외래생물 유입으로 언제든지 생태계 파괴 우려에 직면하고 있다. 또한 생물학을 넘어 사회학적 경제학적 고립으로 소멸할 우려가 높은 ‘갈라파고스화’의 역설이라는 딜레마도 있다.
이스터섬(Easter Island)은 응회암 석상들로 유명한 섬이다. 칠레 해안 서쪽 남태평양에 수중 화산폭발로 형성된 이 섬은 칠레에서 서쪽으로 3,600km 떨어져 있다. 최초 정착민은 400년경 마르키즈 제도에서 건너온 폴리네시아인인데 이곳에는 높이 3~12m, 무게가 50t 이상 되는 인간 형상을 한 ‘모아이’ 석상들이 있다. 1722년 네덜란드의 야코브 로헤벤이 처음 이 섬을 발견했으며, 1888년 칠레가 이 섬을 합병했다. 인구는 5000명 정도이다.
최근 고고학 연구자료는 석상 대부분이 중세시대인 1000~1600년에 세워졌다는 사실과 환경상태의 악화 및 주민들 간의 분쟁이 이스터 섬의 번영에 급격한 쇠퇴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납치되어갔던 몇몇 섬 주민들이 되돌아올 때 천연두·결핵을 섬으로 옮겨왔고, 이후에 이스터 섬은 심각한 인구 감소와 문화적 쇠퇴를 겪었으며 1860년대 후반 그리스도교가 들어오면서 잔존하고 있던 폴리네시아적인 전통은 점차 사라졌다는 것이다. 칠레 정부는 이스터 섬 전체를 중요한 역사적 유적지로 지정해놓고 있다(다음백과).
태평양 쓰레기섬(Great Pacific garbage patch)은 가히 인류가 만들어낸 ‘환경재앙의 신대륙’이라 할 것이다. 하와이섬 북동쪽으로 1,600km 떨어진 거대한 쓰레기섬은 규모는 대한민국의 약 16배 정도에, 무게는 8만t이라고 한다. 이처럼 쓰레기가 한곳으로 모여 섬에 가까운 모습이 된 것은 원형 순환 해류와 바람 때문인 것으로 보며, 1950년대부터 10년마다 10배씩 증가하여 오늘날 거대한 쓰레기 지대가 만들어졌다. 1997년, 미국의 해양 환경운동가인 찰스 무어(Charles J. Moore)가 이 쓰레기섬을 최초로 발견했다. 이러한 태평양 거대 쓰레기섬으로 수많은 해양생물들이 피해를 보고 있으며, 특히 먹이로 잘못 알고 먹었다가 죽게 되는 사례도 많고, 주변 지역에서 잡힌 어류를 조사한 결과 35%의 물고기 뱃속에 미세플라스틱이 나왔다.
세계 환경운동가들은 2017년 이 태평양 쓰레기섬을 UN에 국가로 인정해달라며 국기, 여권, 통화 등을 디자인하고 서명운동을 펴고 있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이 섬의 1호 국민이 됐고, 20만명의 국민이 있다고 한다. 국호는 ‘쓰레기섬(The Trash Isle)’이고, 화폐단위는 쓰레기 잔해를 의미하는 ‘데브리(Debris)’이며, 화폐에는 플라스틱으로 고통받는 바다생물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NPO단체인 오션 클린업(Ocean Clean UP)은 2018년 세계 최초로 U자 모양의 그물망 형태의 해양 플라스틱쓰레기 회수장치를 만들어 회수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https://en.wikipedia.org/wiki/Great_Pacific_garbage_patch).
이러한 섬들의 이야기는 우리시대의 ‘실락원’의 모습들이기도 하다. 영국 시인 밀턴이 1667년 완성한 대서사시 『실락원』(Paradise Lost). 구약성서 창세기를 소재로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유혹으로 죄를 짓고 낙원인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이야기말이다. 그런데 거기도 하나의 희망은 있다. 낙원에서 추방되기 전에 천사 미카엘은 아담에게 미래의 비전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아담 자녀들의 수많은 죄,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 바벨탑, 이집트로부터의 탈출, 그리스도 예수의 희망을 보여준다. 잃어버린 낙원을 되찾기 위해서 우리 인류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도 오늘날 우리 인류 스스로 망치고 있는 ‘낙원 지구’를 되찾기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의 시대가 바로 우리 시대임을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껴야 할 때이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라는 말이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인류에겐 ‘꽃자리’아닌가. 지구환경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낙원을 되찾는 『복락원(Paradise Regained)』으로 가는 길이다. 스웨덴의 청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의 예언자라고도 할 것이다.
『낙원을 팝니다』의 저자들은 책의 말미에 이렇게 우리들에게 묻는다. “나우루에게는 원조를 구하거나 사람들이 이주할 수 있는 주변국이라도 있다. 그런데 지구에게도 이웃이 있는가?”라고. 하나뿐인 지구를 우리 스스로 죽이고 있다. 다른 행성의 침략에 의해서가 아니다. ‘지금. 여기’ 기후위기라는 도전에 대한 전 지구적 ‘응전’이 절실하다.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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