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창 교수의 생태 이야기 (36) 도시교통의 소프트전략 - 파크 앤드 라이드

김 해창 승인 2022.09.12 15:38 | 최종 수정 2022.09.15 09:40 의견 0
환승체계가 잘 돼 있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파크 앤드 라이드시스템. 고속철도와 고속버스, 시내버스, 전차가 효율적으로 연결돼 있다. [사진 = 김해창]
환승체계가 잘 돼 있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파크 앤드 라이드시스템. 고속철도와 고속버스, 시내버스, 전차가 효율적으로 연결돼 있다. [사진 = 김해창]

추석 연휴,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차량으로 서울-부산을 오가는 일은 피곤한 일이다. 한 때는 ‘민족대이동’이라고 했던 명절. 다행인지 불행인지 코로나 이후 이동량은 상대적으로 많이 줄었다. 그래도 명절은 평소 운전시간보다 몇 시간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요즘 명절 때는 시내 교통체증도 심하다. 

명절이 지나도 대도시는 출퇴근 러시아워엔 교통체증을 빚는다.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같기도 하다. 교통체증 해소를 위해 지자체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도로를 넓히고, 다리를 놓고, 심지어 대심도(大深度) 고속도로를 건설한다고 난리다.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노령인구가 급속히 늘어가는 마당에 아직도 우리나라 도시계획은 1990년대의 성장주의 정책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성장 중심의 도시정책이 아니라 축소지향의 도시정책을 펴야 할 때이다. 동계올림픽 이후 방치되는 스포츠시설문제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이러한 도시교통문제를 소프트전략으로 해결한 세계적인 도시가 있다. 바로 ‘독일의 환경수도’로 알려진 프라이부르크이다. 남부 최대의 삼림지대인 흑림(黑林) 인근에 위치한 인구 20여 만의 이 도시는 대학도시이자 관광휴양지로 독일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생태도시로 손꼽히고 있다. 이 도시를 찾는 사람들이 놀라는 것 가운데 하나가 편리한 대중교통체계이다. 30여 년 전에 구축된 이러한 교통체제는 ‘자전거와 자동차의 공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전차 노선의 확충, 시내버스 노선의 정비, 자전거 도로망의 확충, 보행자 지대의 설치, 도심지 자동차 노선의 축소 및 진입 제한, 도심지 주차요금의 인상 등 시스템을 정비해 시민들의 대중교통 및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도시의 교통혁명을 상징하는 것 중 하나가 ‘파크 앤드 라이드(park & ride)’이다. 지난 1984년 독일 최초로 도입된 이 제도는 ‘레기오 카르테’라고 하는 지역 환경권과 연계돼 프라이부르크를 중심으로 14개 운수업체 90여 노선 약 3000㎞에 걸쳐 30유로(약 4만 원) 하는 1개월짜리 지역환경카드를 구입하면 철도, 버스, 노면전차 등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우리로 치면 4만원짜리 교통카드 하나로 부울경 동남권의 각종 대중교통 수단을 한달 내내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제도인 셈이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중앙역의 모습. 고속철도에서 내리면 바로 시내버스와 연결되게 돼 있다. [사진 = 김해창]
독일 프라이부르크 중앙역의 모습. 고속철도에서 내리면 바로 시내버스와 연결되게 돼 있다. [사진 = 김해창]

파크 앤드 라이드는 시외 역 인근에 역세권 주차장을 조성해 시외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승용차를 주차해 놓고 전차나 버스로 갈아타도록 유도하는 교통시스템이다. 지역환경카드만 갖고 있으면 역세권 주차장 이용도 무료이다. 반면에 시내에 승용차를 가지고 가면 주차장도 거의 없지만 반 나절만에 한달치 지역환경카드 값이 날아가게 돼 있다. 승용차를 타고 시내에 들어갈 엄두를 낼 수 없다.

파크 앤드 라이드는 기업의 통근 패턴을 변화시켰다. 기업은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직원에겐 비싼 주차비를 받는 대신 파크 앤드 라이드에 참여하거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에겐 지역환경카드를 일괄 구입해 무료 제공하거나 싸게 판다. 프라이부르크시는 지난 1989년부터는 간선도로를 제외한 모든 주택가에 자동차 속도를 시속 30㎞로 제한하는 조례를 만들었다. 이 덕에 교통사고 특히 사망사고가 거의 사라지고 배기가스나 소음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우리 부산시가 2019년 채택했고 2021년부터 전국화된 ‘3050속도’ 정책이 바로 프라이부르크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프라이부르크 시내의 자전거 전용도로는 150㎞가 훨씬 넘는다.

도시계획, 특히 대중교통체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또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가 브라질의 꾸리찌바이다. 자이메 레르네르 전 꾸리찌바 시장은 1965년 도시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그해 꾸리찌바 도시계획연구소를 독립기관으로 설립해 리사이클이나 녹지공간의 확충, 모범적인 교통시스템 그리고 지역사회 구성원에게 골고루 미치는 사회복지프로그램 등을 수립했다. 꾸리찌바 도시정책의 최우선은 ‘사람 제일주의 전략’, ‘통합적인 도시계획’ ‘광범위한 분야의 지속가능성 살리기’ 등에 뒀다. 특히 1970년대의 교통관리, 수송 그리고 토지이용계획의 통합으로 도심 진입 자동차를 줄이고 도심에 여가공간 및 보행자공간을 늘였고 대중교통의 확충과 환경적으로 건강한 도시 만들기에 성공했다. 

꾸리찌바는 하루 평균 2백만 명이 이용하는 모델교통시스템을 구축했다. 타 지역보다 1인당 자동차 보유대수가 많고 1974년에 비해 인구가 2배나 늘어났지만 자동차 교통량은 30% 감소했다. 대기오염도 브라질에서 가장 낮고 자전거도로가 200㎞ 정도 되며 중심가는 보행자천국을 만들었다. 28개의 도심 공원이 있어 도시의 5분의 1이 녹지공간이다. 시민이 녹지공간을 충분히 확보하면 세금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꾸리찌바 공무원들은 시가 강력하고 지속적인 행정력, 디자인 능력을 갖고 계획부서가 이를 전략적 목표와 지속적으로 일치시키는 노력 그리고 환경·교통·에너지 등 도시계획의 통합, 그리고 무엇보다 창의적이고 비용이 적게 드는 아이디어의 창출이야말로 꾸리찌바의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임을 알고 있었다고 『꿈의 도시 꾸리찌바』(2006)의 저자 박용남 소장은 말한다. 꾸리찌바는 도시 내 공단  면적 중 약 40%를 녹지공간으로 활용했다. 공단 내 폐기물을 자기 토지에서 처리토록 의무화하여 산업 쓰레기 재활용 및 감량화를 유도하고 자전거 출퇴근을 유도해 공단을 공원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프라이부르크 중앙역의 대규모 자전거주차장. 철도를 이용한 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프라이부르크 중앙역의 대규모 자전거주차장. 철도를 이용한 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사진 = 김해창]

그런데 부산은 어떠한가. 부산시는 2005년 11월 지하철 3호선 개통에 이어, 2006년 시내버스 무료환승제, 2008년부터 마을버스를 포함한 대중교통의 환승제를 실시하고 있다. 2021년 12월에는 ‘부산 BRT 3단계’(서면 광무교~충무교차로 7.9km)가 개통됐다. 도심에 BRT(Bus Rapid Transit: 간선급행버스체제)를 설치해 대중교통 특히 버스 운행속도를 높이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나 지하철과 대형 버스노선이 중앙로를 따라 거의 같은 방향으로 달린다. 지하철과 버스, 마을버스, 열차, 택시 등과의 연계를 생각하면 노선을 통합 조정하는 문제가 심각한데도 시는 이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내놓고 있지 않다. BRT를 설치한다고 애써 심어놓은 도심 가로수를 뽑는 행정을 해서는 안 될 일다. 파크 앤 라이드는 교외에서 오는 승용차가 역세권에 주차를 하고 지하철이나 버스로 갈아타게 하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다. 도심진입세를 물리더라도 나홀로 자가용 승용차가 도심에 못 들어오게 해야 한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부산시의 낙동강 하구 문화재보호구역을 통과하는 대저대교 건설계획은 낙동강환경청의 환경영향평가 반려와 시민환경단체의 반발로 교착상태에 있다. 환경청은 조사위원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부산시의 기존 계획노선이 멸종위기종 큰고니의 먹이터 등 핵심서식지를 관통하며, 교량의 존재가 직·간접적으로 큰고니 먹이터 이용에 영향을 주고 큰고니의 비행을 방해해 서식지 파편화와 서식지 이용률 감소를 가져오는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해 4가지 우회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부산시는 경제성 운운하며 기존안 고수에 머물고 있다.

대저대교의 경우 전체 사업비(8.2km) 3,956억원 가운데 국비 1,609억원, 시비 2,347억원으로 시비가 3분의 2를 차지한다. 지방재정이 열악한데 향후 엄궁대교, 장락대교 등 3개 교량을 더 놓겠다고 하면 1조원대의 시비가 들어가 시민 부담만 가중된다. 낙동강횡단 교량은 이미 10개나 있고, 부전-마산간 복전철 건설이 추진중이고, 하단-녹산간 경전철 또한 건설 예정이다. 2020년 396만6천명으로 예측했던 부산 인구는 2019년 현재 337만3천명이며, 2025년 319만, 2035년 301만명으로 급감 추세에 있다. 2000년 대저대교 입안시 시내시외 교통량이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으나 부산광역시 홈페이지 ‘차량교통 연도별 비교’(2018년 10월 기준)를 봐도 낙동강과 도심을 연결하는 주요도로망인 대동요금소, 북부산요금소, 국도14번(김해교) 모두 2013년에 비하여 2017년에 오히려 감소했다. 

김해창 교수
김해창 교수

더욱이 건설 당시 환경시민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2009년말 개통된 을숙도대교(옛 명지대교)는 당초 일평균 예상 교통량이 93,600대라고 했으나 2020년 일평균 44,688대로 예상치의 47%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예상 교통량 부족으로 운영기업에 물어주는 시민 세금은 초기 10억, 20억원대에서 2019년에는 45억원 이상으로 증가했다. 대동화명대교와 외곽순환도로의 낙동강대교도 다르지 않다. 환경시민단체는 천문학적인 세금이 들어가는 대교 건설 대신 기존의 을숙도대교 등을 무료화해 설계 용량대로 교통량을 감당하게 하면 향후 예상되는 교통량 증가를 해결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추가 교량 건설이 아니라 진입로 개선, 시간대별 교통분산, 직주근접(職住近接), 대중교통시스템 구축 등 소프트전략의 발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에 대한 부산시장의 결단과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프라이부르크와 달리 부산은 하드웨어에만 집착하고, 시민과의 거버넌스가 보이지 않고, 시민의 양심에만 호소하는 행정을 펴고 있는 것 같다. ‘세계도시 부산’을 외치기 전에 30여 년 전 프라이부르크의 ‘발상의 전환’을 제대로 배울 필요가 있다.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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