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의 삶과 당신의 삶을 바꿀 용의가 있습니까?”
잡스는 ‘세상을 바꾼 천재형 인간’이었고, 재산도 수천억 원을 넘어 조 단위였다. 애플의 최고경영자(CEO)로서 디지털 시대의 리더였다. 부와 명예, 그리고 사회적 지위까지 모두 차지한 인물이었다. 어떤 욕망도 충족할 수 있을 듯한, 이 시대의 총아였다.
잡스는 50세 때인 2005년 스탠포드대학교에서 졸업연설을 했다. 여기서 그 유명한 말, ‘stay hungry, stay foolish’란 말이 나온다. 언제나 굶주려 있고, 언제나 바보 같으라고? 성공(성취)에 대한 갈망을 지속하고, 소음 같은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란 속뜻이다. 의역하면, ‘끊임없이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쯤 되겠다.
미래에만 관심하는 20대 졸업생들에게 들려줄 법한 명언이다. 그러나 40대 50대들에겐 너무 숨차게 몰아치는 말로 들리지 않을까? 그러나 50대인 잡스는 실제로 끊임없이 갈망하고, 주위의 말에 귀 닫고 자기신념대로 치열하게 앞으로 직진했다. 그의 삶에는 현재와 쉼(休)과 누림(享有)은 아예 빠져있는 듯하다. 성취과정과 성취가 삶의 추동력이고 행복이라면 틀린 건 아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너무 숨 가쁜 인생 아닌가.
‘안주하지 않고’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 잡스는 2003년 48세 때 췌장암 선고를 받았다.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완벽을 추구하는 그에게 병 치료도 예외가 아니었다. 종양 제거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잡스의 췌장암은 진행 속도가 느려 완치율이 높은 희귀성 종양으로 조기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는 9개월 동안이나 채식 위주의 식단을 고집하며, 침술과 다양한 약초요법을 병행하는 등 민간요법과 대체의학에 의지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고 했던가. 번뜩이는 천재를 발휘하는 위인의 깊은 곳에는 지극한 우치愚癡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사람들은 겉면의 화려함에만 눈부셔 할 뿐이다. 주변의 애원도 잡스는 듣지 않았다. 전립선암을 이겨낸 인텔의 창업자 앤드로 그로브는 잡스에게 “미쳤다”고 말했다. 잡스의 전기 집필자 월터 아이작슨은 “그의 경이로운 능력 이면에는 자신이 상대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걸러내는 습성이 있었다”고 말한다. 아내 로렌 파월은 “그는 자신이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은 무시하는 능력이 있다. 그것이 자아도취에 빠지는 방식”이라고 토로했다.
약 1년 후인 2004년 7월 종양이 다른 장기로 전이됐을 수도 있다는 진단이 나오자 잡스는 결국 수술을 받아들였다. 췌장을 절제하면 단백질을 충분히 확보하기가 어려워진다. 의사는 우유나 다양한 고기, 생선 등을 섭취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잡스는 무시했고, 극단적인 식이요법만 고집했다. 그는 자신이 “완치됐다”며 암과의 사투를 비밀에 부쳤다.
2008년 초 암은 재발했다. 암이 전이된 간을 절제하고 이식 수술을 받았다. 병실에 누워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그는 “마스크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화를 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 망신을 주고, 사소한 일에 불같이 화를 내는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2009년 회사로 복귀했다. 그러나 첫날부터 마케팅 기획서를 찢으며 성과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아이작슨은 “잡스는 선 수행을 해왔지만 내적 평온은 기르지 못했다”며, “이런 성격은 카리스마와 영감이 넘치게 만들어주었지만, 이따금 ‘또라이’로 만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2011년 세 번째로 암이 재발하자 8월에 최고경영자 직을 넘겼다. 그리고 두 달 후 10월 5일, 56세의 일기로 영면했다.
한 번 더 진지하게 접근해 본다. “내 삶을 잡스의 삶과 바꾸고 싶은가?” 부정적이다. ‘결국 부는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하나의 익숙한 사실일 뿐이다’, ‘이제야 깨달았다. 생을 유지할 적당한 부를 쌓았다면, 그 이후 우리는 부와 무관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끝없는 부를 추구하는 것은 결국 나 같은 비틀린 개인만을 남긴다’ 등등, 잡스의 hindsight, 곧 뒤늦은 깨달음 때문이 아니다. 56년이란 비교적 짧은 생애 때문도 아니다.
‘사소한 일에도 터뜨리는 화’에 주목한다. 화를 냄은 불만의 표지標識이다. 평온한 마음 상태가 아니라는 방증이다.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이라는 뜻이다. 개인의 삶은 ‘나와 세상과의 대립’에서 출발하여, ‘나와 내 욕망과의 관계 설정’으로 완성된다. 세상과는 적절히 타협해야 한다. 욕망은 본시 왕성하고 뜬금없고 만족을 모른다. 개인 발전의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멈춤을 모르기에 사람을 쉴 수 없게 만든다. 적절한 제어가 필요하다. 세상과의 대립에서 ‘나’를 중심에 둔다거나, 욕망하는 대로 성취에 주력하면, 마음의 평온은 얻을 수 없다.
범인凡人이 언간생심인 비범한 잡스의 삶을 살펴보는 이유가 있다. 행복에 관한 한, 위인이 범인보다 비교우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스티브 잡스는 위인이다’란 명제에 토를 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누군가가 주장한다면, 고개를 갸웃할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위대한 업적, 거대한 부, 그리고 천재적인 두뇌, 이것들과 행복과는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상관관계도 높다고 볼 수 없다.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사람이 바둑을 잘 두는 것이고,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 사고를 안 내는 게 아니라 사고를 안 내는 사람이 운전을 잘하는 것이다. 장구한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진시황이든 록펠러든 뉴튼이든 클레오파트라든 황진이든 백골이 되었고, 이제는 그 백골의 흔적도 사라졌다. 한바탕 꿈이며 조로朝露인 인생살이에서, 위인이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위인이 아닐까?
단, 조건이 있다. ‘앎’과 시대상황이다. 다음 글에서는 미뤄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세계관’과 이 조건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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