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낙태죄와 큐어넌QAnon 음모론

조송원 기자 승인 2022.07.02 10:11 | 최종 수정 2022.07.03 10:09 의견 0

#1. 10대 소녀가 강간을 당했다. 국가는 그 소녀에게 강간범의 아이를 낳으라고 강제한다. 임신한 아내가 위독하다. 국가는 아내에게 목숨을 걸고서라도 아이를 낳으라고 강제한다. 소녀는 그 강간범의 씨앗을 제거했다. 임신한 아내는 출산 중 사망의 위험 때문에 아이를 지웠다. 둘 다 중범죄자가 된다.

#2. 음모론(Conspiracy Theory)이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이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을 때, 배후에 거대한 권력조직이나 비밀스런 단체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이뿐 아니라 ‘대중들이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은 진상이 아니며, 배후에는 어떤 집단(주로 정치적)이나 권력자들이 조종하고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 또한 음모론으로 간주된다.

현재 미국에서 QAnon(큐어넌) 음모론이 횡행하고 있다. 그 내용을 <위키백과>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QAnon은 인터넷 커뮤니티 4chan의 /pol/게시판에서 유래한 미국의 극우 음모론의 일종이다. 딥 스테이트(deep state)라고 칭하는 비밀 조직이 미국과 세계 경제, 정치, 통치권을 장악하고 국가 전복을 노리고 있다는 음모론과, 이들이 사탄을 숭배하고 식인食人을 하며, 국제 규모의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한다는 소위 피자게이트(Pizzagate) 음모론과,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가 이들의 국가 전복 음모를 막아내려고 하고 있다는 이야기 등이 혼합되어 있다.

플로리다주 브로워드군의 SWAT 대원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2018년 11월 30일). 왼쪽의 대원 매슈 패튼이 QAnon 추종자가 사용하고 있는 'Q'라는 로고의 빨간색과 검은색의 휘장을 붙이고 있다. 패튼은 결국 제대처분을 받았다. [위키피디아]

2020년 미국 대선 이후 트럼프가 재선에서 떨어진 것에 대해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배경을 제공하며, 극우파에서 인기를 얻고 빠르게 퍼져나가 주목을 받았다.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에 영향을 주었으며, FBI에 테러 위협으로 지정되어 있다.

1973년 연방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 판결에서 미국 수정헌법 제14조가 규정한 ‘사생활의 권리’를 근거로 임신중지권을 인정했다. 현재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명한 3명을 포함, 보수계가 다수를 장악하고 있다. 이 연방대법원이 지난달 24일 “헌법의 어떤 조항에도 ‘임신중지권’이라는 표현이 들어있지 않다”는 논리로 임신중지권 판례를 폐기했다. 결과적으로 임신중지권 허용 여부는 각 주州의 입법사항이 됐다.

전체 50개 주 가운데 민주당이 지배하는 주에서는 이번 연방대법원의 결정에 여성들이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공화당이 지배하는 주에서는 주 의회의 입법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찌됐건 낙태는 중죄가 될 것이다.

공화당은 자유를 중시한다. 개인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한데 개인의 신체의 자유보다 더 소중한 자유가 어디 있는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무슨 자유 운운인가? 이 결정에는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

<뉴욕 타임스>는 ‘임신중지권’ 판례 폐기와 관련해, 20세기 후반기에 대법원이 내놓은 잇따른 진보적 판결을 무효화하려는 보수의 기획이 작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판결이 끝이 아니라 동성혼이나 사후피임약 등 피임 도구에 대한 판례가 다음 목표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현재 미국의 사회 갈등, 대체로 진보-보수 간의 3대 쟁점은 임신중지와 총기 그리고 정·교 분리 문제이다. 보수가 다수를 장악한 연방대법원의 최근 잇단 판결로 인해 보수가 승리하고 있다. 곧, 임신중지권이 폐기되고, 공공장소 권총 휴대에 허가제를 운영하는 뉴욕 주 법률에 위헌을 선언하고, 메인 주 종교 학교에는 수업료를 보조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6월 21~24일 불과 나흘 만에 일어난 일이다.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관련이 깊다. 트럼프 이전에는 대법관에 초당파적으로 지지받을 수 있는 온건파를 지명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를 통해 사회에 큰 혼란을 끼칠 수밖에 없는 너무 ‘튀는’ 판결을 예방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는 달랐다. 불행하게도 그에게는 4년 임기 동안 종신직인 대법관을 3명이나 지명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모두 보수색이 매우 강한 50대를 지명했다. 대표적 인물이 고교생 시절 성폭행 시도 논란에도 임명된 브렛 캐버노 대법관이다. 3명 모두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의 인준을 통과했다.

대체로 공화당 지지 세력은 기독교 복음주의자들, 록펠러 공화당원들(온건 자유주의자들), 그리고 트럼프주의 국수주의자들이다. 트럼프가 보수성이 매우 강한 대법관을 지명한 것은 특히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에 영합한 탓이다. 그들의 지지표를 의식한 정치행위인 것이다. 나라야 분열되든 말든 여성이 죽어나가든 말든, 편집광적으로 권력에 집착하는 노욕의 발로인 것이다.

현재 민주-공화의 상원의석은 50-50이다. 오는 11월 선거에서 민주당이 60석을 확보해야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뒤집을 수 있다. ‘임신중지권’ 판례 폐기는 인기가 없다.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임신중지권 판례 존치가 58%, 폐기가 32%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는 자신이 악수를 두지 않았나, 하고 근심하고 있다고는 한다.

그러나 쉽지 않을 것이다. 인플레이션 상승 때문만은 아니다. 공공종교연구소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을 신뢰한다는 사람은 겨우 11%이다. 반면에 ‘QAnon 음모론’을 믿는 사람은 23%에 달한다. ‘탈진실’(post-truth) 시대다. 산모가 죽어 가는데도 임신 중절을 반대하는 영어 단어가 pro-life다.

보수의 기획을 통해 20세기 후반의 진보적 판결이 뒤집혀 50년 전으로 퇴보한다면, 미국은 어떤 나라가 될까? 여성은 자신의 몸에 대해 자기결정권도 갖지 못하게 되고, 총기 소유가 더욱 자유로워 총기 난사 사고가 빈발할 것이며, 기독교 근본주의자와 백인우월주의자가 독판을 칠 것이다.

누가 ‘아름다운 나라’ 미국美國이라 하는가? 그냥 ‘아메리카’일 뿐이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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