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참마속’이라는 성어를 우리는 종종 듣는다. 다들 잘 알다시피, 제갈량이 ‘울면서’(泣) 자신이 아끼는 뛰어난 장수 ‘마속馬謖’의 ‘목을 쳤다’(斬)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마속은 제갈량의 “지키기만 하라”는 명을 무시하고, 무리한 작전을 펼치다 위나라와의 가정 전투에서 대패했다. 군율軍律을 어긴 것이다. 전투에서 군율은 곧 생명이다. 군율을 어기면 생명을 내놓아야 한다.
마속은 군율을 어겼다. 그래서 군율대로 처형했다. 2000년 전의 이 당연지사가 왜 지금까지 사람들의 뭇입에 오르내릴까? 읍참마속은 ‘법은 예외 없이 엄격히 집행해야 사람들이 법을 지키게 된다’는 예증으로 거론된다. 이는 법집행이 고무줄 잣대여서 누구에게는 적용되고, 누구에게는 적용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현대의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와 맥락을 같이하는 말이다. 과거의 ‘신분이나 권력’이 현대의 ‘돈’으로 바꿨을 뿐이다.
영국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서양의 2000년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헤겔은 플라톤을 “인류의 스승”이라 불렀다. 그러나 칼 포퍼(Karl Popper, 1902~1994)는 다르게 평가한다. 그는 마술적 사회나 부족사회, 혹은 집단적 사회를 ‘닫힌 사회’(closed society)라 부르고, 개개인이 개인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를 ‘열린사회’(open society)라 불렀다. 그리고 포퍼는 닫힌 사회의 이념을 대변한다고 하여, 플라톤을 ‘열린사회의 적’이라고 했다.
플라톤(Platon, B.C. 427~347 )의 아버지 쪽은 아테네 왕족이었고, 어머니 쪽은 유명한 입법자 솔론의 집안이었다. 귀족가문 출신인 플라톤은 도시국가의 모순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501인 아테네 법정은 ‘신성모독죄’로 기소된 소크라테스를 281:220으로 유죄를 선고했다. 스승의 죽음을 지켜본 28세의 청년 플라톤은 어리석은 대중을 증오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민주주의란 이성능력이 결여한 어중이떠중이가 제각기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방만히 누리며 설쳐대는 중우정치衆愚政治란 생각을 갖게 됐다. 이런 연유로 플라톤은 한 사람의 이성적인 철학자가 나머지 비이성적인 다수에 대하여 절대적 지배권을 행사하는 정체政體에서만 국가의 정의가 완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이데아론을 정치문제에 적용하여 『국가』 1권에서 ‘이상국가론’을 제시한다. 플라톤의 국가관은 그의 영혼론에서 출발한다. 플라톤에 의하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금, 은, 동이 섞인 영혼을 갖게 되며 그 차이에 따라 영혼의 성격도 구분된다. 금은 이성과, 은은 의지와, 동은 욕망과 연관된다.
국가도 이러한 영혼의 상태에 따라 세 계급으로 나누어져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정의가 실현된다. 이성에 해당하는 통치계급(철학자, 왕), 의지에 해당하는 수호계급(군인과 경찰) 그리고 욕망에 해당하는 생산계급(농민과 수공업자)이 각기 구분되어 스스로의 의무에 충실할 때 정의가 발생한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필자는 유물론철학자 강대석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강대석의 철학산책’/<사람일보>. 2020.6.23.)
“플라톤은 항상 변화하는 현실 속에는 붙잡을 만한 근거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체념하게 된다. 이러한 체념과 더불어 플라톤은 이상적인 철학과 이상적인 사회를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인간에게는 이상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상은 현실에 발을 붙이는 이상이어야 한다. 플라톤처럼 현실을 가변적이고 불완전한 어떤 것으로 비하하며,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할 때, 인간은 공허한 이론에 빠진다.”
공자가 활동했던 춘추전국시대(B.C. 770~221)에는 수백 년의 전란으로 신분계급질서가 문란해졌다. 공자는 이를 회복하고자 주례周禮의 부흥을 주장했고, 이를 위해 정명正名을 강조했다. 정명은 ‘명분名分을 바로 잡는다’는 뜻이다. ‘명名’이란 왕, 대인, 사민(사농공상), 군君, 신臣, 부父, 자子, 부夫, 부婦 등 신분의 명칭이다. ‘분分’이란 그 명칭에 따른 직분職分과 분수分數(직분에 대한 책임)을 말한다. 즉,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답고, 아내는 아내다워야 하며, 군주는 군주답고, 인人은 인답고, 민民은 민답고, 백성은 백성답고, 천민은 천민답고, 노예는 노예다운 것이 바로 정명이다. -기세춘/동양고전산책1-
조선의 양반 혹은 선비의 지배 사상인 유학(성리학)과 그 주요 경전인 『논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人과 민民, 그리고 예禮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꼭 필요하다. 기세춘 선생의 논의를 따라가 보자.
『논어』는 각자 분수를 지켜 인人은 인답고, 민民은 민답고, 백성百姓은 백성답도록 훈계한 공자의 말씀이다. 따라서 『논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과 민과 백성이란 명칭이 왜 각각 다른가를 알아야한다. 인은 ‘사람’에 대한 대표 명사이다. 그러나 ‘인’은 ‘타인’을 말할 경우도 있으며, ‘인계급人階級’을 말한 경우도 있다.
특히 선진先秦시대의 경전을 해석하는 경우에는 인·민·백성은 계급적 개념으로 구별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논어』에서는 대체로 인은 지배계급인 귀족을 지칭하며, 민은 피지배계급인 무산자를 지칭하고, 백성은 영지를 소유한 인과 민 가운데에서 성씨를 하사받은 유산계급을 지칭한다. 오늘날 ‘백성’은 천하만민을 지칭하지만 당시에는 토호세력을 말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논어』를 읽는 데 인과 민을 구별하지 않으면, 뜻이 통하지 않거나, 신분차별이 없는 근대민주시대의 글로 왜곡되어 버린다. 그런데도 우리 학자들은 대부분 인과 민을 똑같이 ‘백성’으로 번역함으로써 본래 뜻을 왜곡하고 있다.
공자가 말했다. “제후국을 다스리는 데는 정사를 공경히 하여 신뢰를 얻고,
절용하여 인(귀족계급)을 아끼고(節用而愛人),
김동길 : 쓰기를 절약하고서 백성을 사랑하며
도올 : 쓰임을 절도 있게 하며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민(무산자)을 부리는 것은 때를 가려야 한다.(使民以時) -논어/학이 5-
김동길 : 백성을 부림에 때로서 하느니라.
도올 : 백성을 부리는 데는 반드시 때를 맞추어야 한다.
위 글의 요점은 ‘애인愛人’과 ‘사민四民’을 대구로 비교한 데 있다. 즉 인人은 애愛하고, 민民은 사使한다는 뜻이다. 맹자의 말로 풀이하면, ‘애인’은 세력이 큰 대인들을 아껴 보호하고 그들에게 책잡히지 말라는 뜻이다. 그리고 ‘사민’(사농공상)은 ‘민’이란 부리는 존재이므로 자비를 베풀되 친애親愛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 학자들은 인과 민을 구별하지 않고 똑같이 백성으로 번역하고 있다. 다만 도올은 인과 민을 구분했으나, 반대로 귀족계급인 인을 ‘아랫것들’로 오역하고 있다. 그러나 아랫것들은 인이 아니라 민이며, 또한 아랫것들인 민은 사使의 대상일 뿐, 애愛의 대상이 아니다. 맹자가 말한 대로 민에게는 인자하게 대하되, 친애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기세춘 선생을 만나기 전에는 ‘인과 민과 백성’을 구별하지 않고, 현재의 뜻대로 현대적 해석을 한 『논어』를 읽어왔다. 하여 인간 자체에 차등을 두는, 신분질서에 철저한 비민주적인 공자의 사상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공자는 아랫것들에게 인정은 베풀되 결코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인간으로 본, 지극한 차별주의자다. 사민(사농공상)에게도 이렇게 대했는데, 여자나 하인들을 어떻게 생각했겠는가. 물론 당시의 시대상황을 고려하면 위대한 사상가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공자 사상의 공과功過를 따지고, 시의時宜에 맞게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할 것이다.
‘예禮’도 예의범절이나 에티켓 정도로 알았다. 제자 안연이 인仁에 대해서 묻자, 공자는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답했다. 자신의 사욕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예의범절이 공자사상의 최종 지향점일 수 있단 말인가?
‘예’란 관직과 인민들에게 세세한 명칭을 주고, 그 명칭에 부합되는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예는 ‘주례周禮’를 말한다. 주례를 알기 위해서는 주나라의 봉건제를 알아야 한다.
주의 봉건제는 오복五服 또는 구복九服 제도를 특색으로 하는 정치체제다. 이는 천자 또는 성인聖人으로 불리는 왕이 중앙을 이루고, 그의 친척들이 각각 국토를 분봉 받아 제후가 되어 중앙을 다섯 겹(五服) 혹은 아홉 겹(九服)으로 둘러싸 호위하는 통치제도를 말한다.
이때 통치구조는 제후들의 연합제 형식이며, 천하일가天下一家의 종법宗法 질서로 유지된다. 가문이 촌수에 따라 위계가 있듯이, 천하도 엄격한 신분차별과 위계를 요구하며, 그 종법질서의 헌장이 이른바 주례周禮다.
주례에 따르면, 지배계급으로 왕, 공경公卿, 제후, 경대부卿大夫 등 인人 계급이 있고, 피지배계급으로는 사민四民(士農工商)과 천민(노예·오랑캐) 등 민民 계급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배계급을 보좌하는 관료 조직은 하대부下大夫·상사上士·중사中士·하사下士 등이 있었다. 이들은 가문을 이루어 가신家臣을 거느린 대인大人이 되지 못한 서인庶人과 사민四民의 앞자리인 사민士民이 맡았던 것 같다.
정명이란 주례에서 정한 신분질서와 이에 따른 직분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다. 결국 복례와 정명은 근본이 같은 것이며, 모두 신분계급질서를 수호하려는 공자의 핵심 사상이다. <계속>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t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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