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 (60)‘내로남불’의 뿌리 ④대법관 후보자와 800원

조송원 기자 승인 2022.09.07 10:45 | 최종 수정 2022.09.09 20:39 의견 0

대법관은 ‘사법부의 꽃’으로 불린다. ‘모든 권력에서 완전히 독립해 한 시대의 사법정신을 완성하는 직책’이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의 판결은 틀려도 맞다’는 말이 있다. 대법관은 한국 사회의 최종적 심판자이다. 대법관으로 이루어진 대법원의 판결이 한국 사회의 정의와 진실을 확정짓는다.

대법관은 개인과 가문의 영광인 자리다. 그러나 대법관이란 직책은 사적 영광을 한참 넘어선다.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분묘 수호와 제사를 모시기 위해 성년 남자들만이 종원이 돼야 한다’는 관습법에 의해 여성은 종중의 회원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2005년 7월 21일, 대법원은 “성년 여성도 당연히 종중의 회원으로 편입된다”고 판결했다. 유림儒林 단체는 “이번 판결로 종중이나 종친회 자체가 없어질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소용없다. 이제는 여성들을 제외한 남성들만의 결의만으로 이뤄진 모든 종중의 법률행위는 법적 정당성을 잃는다. 그리고 종중 땅 매각 대금 등 재산분배도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이 대법원의 판결로 출가한 여성을 집안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출가외인’이란 개념이 사실상 없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법관이 내린 판결은 그가 한국 사회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윤석열 정부 첫 대법관 후보로 임명제청된 오석준(60. 사법연수원 19기) 제주지방법원장은 과거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청문회에서 쟁점이 된 대표적인 두 가지만 짚어보자.

오석준 대법관 후보 인사청문회 [Fact TV 캡처]

오 후보자는 2011년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 재판장 재직 시절 800원을 횡령한 버스기사를 해임한 고속버스 회사의 처분을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반면 2013년 수사 중인 사건 변호사로부터 술값 등 85만 원어치 접대를 받은 검사가 낸 면직 취소소송에서 “파면은 가혹하다”며 징계를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17년간 버스기사로 일한 ㄱ씨는 2010년 버스요금 잔돈으로 4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두 번 뽑아 마셨다. 결과적으로 800원을 횡령한 게 되었고, 해고되었다. 당시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횡령금액이 소액인 점 등을 들어 부당해고로 판정했다. 그러나 행정소송 재판장이었던 오 후보자는 “노사합의서에 ‘운전원의 수입금 착복은 금액을 불문하고 해임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반면 검사 면직 취소소송의 판결문에는 “향응의 가액이 85만 원 정도에 불과하고, 위법·부당한 행위를 했는지 자료가 없다”며 징계가 과도했다고 했다. 참고로 <검사 선서>의 뒷부분만 소개한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오 후보자의 과거 판결에 대해, 판사 출신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검사 면직을 구제한 사건 등을 보면 왜 이렇게 향응을 받았는지 살피고, 면직으로 인한 불이익도 (판결문에) 설시(說示.해당사안을 직접적으로 설명함)했다. 그런데 버스기사 사건은 그런 흔적이 없다. 사람 차별하는 대법관이 만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탄희 의원의 지적에 대해 오 후보자는 “그런 우려가 있다는 점에 대해 공감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인사청문회 인사말에서 “대법관에 임명된다면 사법부의 독립과 국민의 기본적 인권 보장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고 국민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판결을 위해 성심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성심을 다한다는 말을 국민이 얼마나 수긍할까? ‘검사 선서’를 지키는 검사 수만큼이나 될까?

오 후보자는 재산으로 34억8621만 원을 신고했다. 본인과 배우자와 장남의 재산을 모두 합한 금액이다. 본인 명의의 서초구 아파트(17억 원), 배우지 명의의 단독주택(9억5512만 원)과 오피스텔(1억8878만 원)이 있다. 예금은 본인 4억9720만 원, 배우자 9518만 원, 장남 1637만 원이 있다. 배우자는 딸에게 빌려준 1억6200만 원의 채권도 있다.

예금으로 5억 원을 가진 사람에게 800원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커피 두 잔 값인 800원 착복으로 다섯 식구의 생계가 막막해지는 사람들을 평소 어떻게 생각했을까? 오 후보자는 “나름대로 사정을 참작하려 했으나 살피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 말은 어느 정도 진심일 것이다. 어쩜 노동만으로 겨우겨우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서 ‘살펴볼 사람’ 축에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힘없고 빽없는 사람’은 다르다. 이익과 위협이다. ‘법이 만인이 아니라 만 사람에게만 평등한 사회’에서 판관에게 ‘이익’을 주면, 있는 죄도 없어진다. 인간의 가장 큰 본능 중의 하나가 안전의 욕구이다. ‘힘없고 빽없는 사람’은 아무 위협이 되지 않는다. 하여 ‘살펴봐야 할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을 종종 듣고, 또 주장의 근거로도 사용한다. 상대방의 처지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이해하는 것, 흠 잡을 데 없는 말이다. 전거典據는 『맹자』다.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한데 왜 맹자는 역지사지를 강조했을까?

『논어』는 첫머리를 ‘군자’로 시작하여 마지막도 군자로 끝내고, 중간에 70여 차례나 군자를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공자의 학문은 군왕의 좋은 신하가 되기 위한 ‘군자학’이다. 유가들 스스로 유학을 ‘자기를 수양하여 남을 다스리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학學’ 또는 군자학이라 말한다. 공자가 말한 군자는 대부大夫 이상의 관장官長을 존칭한 것이다. 교양인이나 고매한 선비가 아니라, 고급 관료를 의미한다.

조송원 작가

맹자가 말하는 역지사지는, 지배층이 피지배층의 처지를, 사회적 강자가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헤아리는 뜻이다. 그러나 강자가 약자의 처지를 헤아리지 않는 일이 다반사였기에 굳이 역지사지를 강조했을 것이다. 남을 다스리기(治人)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수양해야 한다(修己). 그러나 사람은 본말을 전도시키는 데 거의 천재적이다. 시험에 ‘인간성’이나 ‘수기’를 측정하는 과목도 없다. 역사에는 개인 수양은 뒷전이고, 약자를 착취하는 데만 골몰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아무리 좋은 사상에도 말류지폐(末流之弊)나 왜곡이 있다. 본래의 가르침이 현실에서 왜곡하여 적용되는 이유가 뭘까? 불가침의 ‘절대 진리’를 상정하기 때문이다. 이 절대 진리를 담보했다고 참칭하는 소수들이 사상의 시장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이에 대한 근거를 동양고전에서 찾아볼까 한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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