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평생직장’이란 용어는 낯설다. 마찬가지로 적어도 한 세대 안에 ‘평생직업’이란 말도 사라질 것이다. 이미 학습한 지식의 유효기간이 짧아진다는 뜻이다. 하여 일자리 지키기뿐 아니라, 사람대접 받으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학습을 해야 한다. 인공지능(AI) 때문이다.
2016년 3월, 이세돌 대 알파고의 대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덜 알려졌지만 더 충격적인 일은 2017년 12월 7일에 일어났다. 구글의 알파제로 프로그램이 스톡피시 8 프로그램을 꺾은 순간이다. 스톡피시 8은 2016년 세계 컴퓨터 체스 챔피언이었다. 수백 년 동안 체스에서 쌓아온 인간의 경험은 물론 수십 년 간 누적된 컴퓨터의 경험에 접속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초당 7000만 수를 계산할 수 있다.
반면 알파제로는 불과 초당 8만 수의 계산을 수행할 뿐이다. 인간 창조자는 알파제로에게 어떤 체스 기술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 대신 알파제로는 최신 기계학습원리를 자가학습 체스에 적용해, 자신을 상대로 한 시합을 반복했다. 그럼에도 신참 알파제로는 스톡피시를 상대로 모두 100회의 시합을 벌여 28승 72무를 기록했다. 패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알파제로는 인간으로부터 배운 것이 없었기 때문에, 시합에서 승리했을 때 알파제로가 구사한 수와 전술의 상당수가 인간의 눈에는 파격적이었다. 완전히 천재적이진 않아도 충분히 독창적이라고 할 만했다.
알파제로가 백지 상태에서 체스를 학습하고, 스톡피시를 상대로 한 시합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을 개발하는 데 걸린 시간은 얼마일까? 불과 네 시간이다. 수 세기 동안 체스는 인간 지능의 더없는 자랑거리로 여겨졌다. 하지만 알파제로는 완전 무지 상태에서 네 시간 만에 창의적 완숙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지도하며 준 도움은 전혀 없었다.
이제는 체스 프로그램의 다수가 단순한 수의 계산뿐 아니라, ‘창의성’에서도 인간 선수를 능가한다. 적어도 체스에서는 창의성은 이미 인간보다 컴퓨터의 트레이드마트가 되었다. 지금 인간-AI 체스 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앞으로 경찰, 의료, 은행 업무에서 활동할 인간-AI 팀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AI혁명으로 인간은 수많은 일자리에서 밀려날 것이다. 밀려난 사람들은 재교육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새 일자리도 AI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므로 재교육은 일회성이 끝나는 게 아니다. 취업, 재교육, 전직, 그리고 또 재교육, 취업이라는 격변의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일자리 문제를 떠나, 평균적인 인간이 이 격변의 인생을 견뎌낼 수 있을까?
AI혁명이 미래에는 달라질 직업들에 대해 어떤 유의 충격을 줄지 아무도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관련된 상황에 어떻게 전개될지 구체적으로 추정하기란 극도로 어렵다. 그 이유는 특히 정치적 결정과 문화적 전통이 순전히 기술적인 돌파 못지않게 상황 전개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율주행 차량이 인간 운전자보다 더 안전하고 저렴한 것으로 판명난 후에라도 정치권과 소비자들이 수년 동안, 아마 수십 년까지도 변화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AI혁명으로 인간과 AI가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AI가 인간의 더 나은 삶에 봉사하는 유토피아를 상상해 볼 수도 있다. 아니면, AI가 대부분의 인간 일자리를 빼앗고, 인간은 잉여인간에도 못 미치는 ‘무용無用 인간’으로 밀려나는 디스토피아 또한 가능한 그림이다.
이 기로에서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게 있다. 유토피아에선 인간 종 전체가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개개인이 향유한다. 그러나 디스토피아에선 대부분은 인간은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하는 반면, AI 혁명의 이점을 독점한 소수의 특권계급인 ‘초인간’만이 그들만의 안락한 삶을 향유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알고리즘으로 증강된 소수의 슈퍼휴먼(초인간) 엘리트와 무력하고 하위 계층으로 전락한 다수의 호모 사피엔스(인간)로 나눠진 계급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의 하인은 천시 받았으나 꼭 필요한 존재였다. 생산을 담당했기 때문에 이들의 노동력이 없으면 양반도 먹고 살 수가 없었다.
AI혁명이 이끄는 미래는 다르다. 인간의 노동력 따위는 필요 없다. AI가 훨씬 더 양질의 값싼 노동력을 하루 8시간이 아니라 24시간 제공한다. 노동조합을 결성해 파업을 하며 무엇을 요구하는 성가신 일 따위도 하지 않는다. 민주사회의 시장경제에서는 사회적 약자도 1표의 정치권력과 소비자 주권을 가지고 있어 무시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AI로 무장한 소수의 슈퍼휴먼 엘리트들은 정치권력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으며, 정치권력 그 자체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작할 수도 있다. AI혁명으로 이루어진 경제에서는 하위 계층은 소비자로서도 무능력자이다. 하여 이들은 경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쓸모없는 인간’, 곧 무용인간일 뿐이다.
슈퍼휴먼에게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성’이 남아있다손 치더라도, 지배욕구와 연민 중 어느 쪽이 강할까? 현재 시장경제의 강자들도 그들이 베푸는 연민은 지배욕구의 훌륭한 포장술일 뿐이다. 속칭 금수저를 물고 나온 이들은, 자신의 혜택은 순전히 ‘운빨’에 의한 것임이 명백함에도, 흑수저들을 자신과는 다른 인간 종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금수저들이 흑수저들보다 미래 사회에서 슈퍼휴먼이 될 가능성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슈퍼휴먼들은 자신들에게 전혀 위협도 되지 않고 경제적으로 쓸모가 없는 하위계층을 끽해야 지배의 대상으로만 취급할 것이다. 슈퍼휴먼들에게 연민이란 치수도 맞지 않고 철도 지나서 보관의 귀찮음만 유발하는 헌옷가지에 불과할 것이다.
유토피아냐 디스토피아냐, 그 선택은 우리의 ‘문화적 전통’에 의한 ‘정치적 결정’에 달렸다. 문화적 전통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란, 세계관과 인간관을 형성하게 하는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과 감정이다. 이 사상과 감정은 그 사회에 면면히 이어져온 지배 혹은 주류 사상의 쉼 없는 학습과 세뇌에 의해 ‘문화 DNA'를 형성한다.
이 문화 DNA를 해독하게 되면, 현재의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 사회적 불합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앎은 ‘새롭게 시작함’의 출발점이다. 전통과 문화는 불변의 철칙이 아니다.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해, 더 나은 문화를 만들고 새로운 전통을 세울 수 있다.
기후위기와 기술적 파괴(AI, 빅데이터 알고리즘, 생명공학 등에 의한)란 혁명의 시대에 동서양의 지적 전통의 원류를 새삼 살펴보는 작업은 결코 고리타분한 일이 아니다. 특히 우리의 문화 DNA에 깊숙이 각인된 공자나 노·장자나 묵자의 사상에 대한 이해는 이 격변의 시대에 더욱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문화 DNA가 유토피아냐 디스토피아냐, 하는 우리의 미래 방향을 결정하겠기 때문이다. <계속>
*이 글은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 크게 힘입었음을 밝힙니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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