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47)는 2013년 유방 절제술을 받았다.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유전자 검사 결과, 졸리도 BRCAI 유전자의 위험한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최신 통계에 의하면, 이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여성들은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퍼센트이다. 수술 당시 졸리는 암에 걸리지 않은 상태였지만, 예방 차원에서 양쪽 유방 절제술을 받은 것이다.
2022년 4월 25일(현지시간) 민간 우주인 4명이 스페이스X의 유인 캡슐을 타고 16시간 비행한 끝에 플로리다주 연안의 대서양으로 무사히 귀환했다. 민간인으로만 구성된 국제우주정거장(ISS) 왕복 여행이 처음으로 성공한 것이다. 우주를 여행한 민간인들은 미 항공우주국 우주비행사 출신의 마이클 로페스 알레그리아(63), 기업가 래리 코너(72), 이스라엘 공군 조종사 출신 기업인 에이탄 스티브(64), 캐나다 금융인 마크 패시(52)다.
바야흐로 유전자 검사를 통한 선제적 수술과 우주여행 시대가 열린 것일까? 어림없는 난센스다. 졸리는 유전자 검사 비용만으로 3,000달러(요즘 환율로 약 4천만 원)를 지불했다. 유방 절제술, 복원수술, 관련 치료비용은 이보다 더 엄청날 것이다. 우주 비행을 한 민간인은 1인당 약 5500만 달러(약 686억 원)를 냈다.
지구촌에서 10억 명은 하루에 1달러 이하를 벌고, 또 다른 15억 명은 하루 1~2달러를 번다. 이들에게 유전자 검사는 다른 세상의 일이다. 강남의 웬만한 아파트 몇 십 채를 팔아야 겨우 16시간 우주여행을 할 수 있을 뿐이다. 2016년 가장 부유한 62명이 가장 가난한 36억 명의 부를 가지고 있다. 세계 인구가 약 72억 명이므로, 이는 62명의 억만장자들이 인류의 하위 절반이 가진 부를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현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전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한 가치와 권한을 가진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치적으로는 억만장자든 빈자든 1인1표이다. 그러나 경제에 관해서는 좀 다르다. 아무래도 평등보다는 자유로 기운다. 하여 경제적 격차가 불가피하다. 문제는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되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되는’ 현 경제시스템에 의해, 부자와 빈자의 생물학적 차이까지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 등의 혁명적 발전은 인간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그 결과로 최신 기술로 업그레이드된 소규모 특권집단의 엘리트 초인간과 업그레이드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대다수의 열등한 인간으로 나뉜 세상이 도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알기 쉽게 의학의 발전을 예로 들어보자. 20세기의 수많은 의학 치료들은 부자들이 먼저 시작했지만 결국 인류 전체가 혜택을 보았다. 그리고 그런 치료들은 사회적 격차를 넓히기보다는 좁히는 데 일조했다. 예를 들어 백신과 항생제의 경우, 처음에는 서구 국가의 상위 계급에만 혜택이 돌아갔지만, 지금은 세계 모든 사람들이 혜택을 누린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21세기에도 그대로 반복될 거라는 기대는 희망적 사고에 그칠지도 모른다.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 의학은 중대한 개념적 혁명을 겪고 있는 중이다. 20세기에 의학의 목표는 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1세기의 의학 목표는 건강한 사람의 성능을 높이는(업그레이드) 쪽으로 가고 있다.
의학이 단순히 질병 치료를 넘어서서, 건강한 사람들을 업그레이드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뛰어난 기억력, 출중한 지능, 최고의 성적 능력을 원한다. 미래에는 의학이 일부 부자들에게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봉사할 것이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업그레이드된 인간은 경제적 능력이 없는 일반인과는 확연히 생물학적 우위를 점할 것이다.
둘째, 20세기 의학의 혜택이 대중들에게 돌아간 것은 20세기가 대중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20세기 군대는 수백만 명의 건강한 군인들을 필요로 했고, 20세기 경제는 수백만 명의 건강한 노동자를 필요로 했다. 따라서 국가는 모든 국민의 건강과 활력을 보장하기 위해 공공보건 서비스를 마련했다. 지금까지 인류가 이룬 가장 위대한 의학적 성취는 대중 위생시설의 보급, 예방접종 운동, 유행병 극복이다.
그러나 대중의 시대가 끝나고, 더불어 대중의학의 시대도 끝날 것이다. 인간 병사와 노동자가 인공지능(AI)에 밀려나면, 적어도 일부 엘리트 집단들은 쓸모없는 가난뱅이 대중에게 더 나은, 아니, 표준적인 건강조차 제공할 필요를 못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차라리 표준을 능가하는 소수의 초인간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일이라는 결론에 이를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 삶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굳건한 토대 위에 이루어진다. 이 토대는 인간은 태어날 때는 누구나 똑같다, 천부인권을 가지고 있다, 다른 말로는 생물학적 차이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잘난 사람’이 ‘못난 사람’을 착취할 권한은 적어도 법적으로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 공학과 생명과학의 획기적 발전으로 소수의 부자들은 다수의 보통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업그레이드 된 인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그들은 신체적·정서적 능력, 지능 등에서 ‘태어난 그대로의 사람’과는 격을 달리할 것이다. 곧, 생물학적 차이도 확연해진다는 말이다. 이의 함의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기본 전제가 무너진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후천적 생물학적 차이가 현실화되고 있다. 인간사회에서 평등보다는 ‘지배와 예속’이 훨씬 더 본질적인지도 모른다. 인류 역사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의 가치를 향유한 기간은 고작 100년도 되지 않는다. 순전히 허위인 생물학적 차이를 근거로, 곧 혈통으로 인간을 차별해 왔다. 동서양을 막론한다.
중세 서양 귀족들은 자신들의 정맥에 우월한 푸른 피가 흐른다고 주장했다. 인도의 브라만 계급도 자신들이 원래부터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했다고 주장했다. 곧, 자신들이 생물학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맹자의 노심자(勞心者)와 노력자(勞力者)도 마찬가지이다.
“천하를 다스리는 일을 농사짓는 일과 함께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세상에는 대인大人이 할 일이 있고, 소인小人이 할 일이 있는 법이다. 또 한 사람의 몸으로 모든 장인匠人들의 기술을 다 갖추어 모든 물건들을 손수 만들어 사용하게 한다면, 이는 천하를 지쳐빠지게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로부터 ‘어떤 사람은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勞心), 어떤 사람은 몸을 수고롭게 한다(勞力). 마음으로 수고하는 사람(勞心者)은 남을 다스리고, 몸으로 수고하는 사람(勞力者)은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고 하였다.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다스리는 사람을 먹여 살리고, 다스리는 사람은 다스림을 받는 사람에게 얻어먹는 것이 세상에 두루 통하는 이치이다.” -맹자/등문공 상- <계속>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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