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 김건희 사태와 한-일 관계 개선

조송원 기자 승인 2022.08.27 13:58 | 최종 수정 2022.08.30 10:47 의견 0
Rachouette, teacher in Seoul, SOUTH KOREA at en:Windows Live, CC BY-SA 3.0
독도 [Rachouette, teacher in Seoul, SOUTH KOREA at en:Windows Live / CC BY-SA 3.0]

시골에서는 흔한 일로, 한쪽은 집안의 감나무에 다른 한쪽은 아래채의 기둥에 쇠줄(강철 와이어)을 묶어 빨랫줄로 이용한다. 감나무가 고목이 아닌 이상, 계속 자란다. 몇 년마다 쇠줄을 풀어서 다시 매지 않으면 쇠줄은 나무속으로 파고든다. 아무리 뿌리가 튼튼하고 잎이 무성해도 쇠줄이 박힌 감나무는 바람에 부러질 수밖에 없다.

지난 22일 ‘국민대학교의 학문적 양심을 생각하는 교수들’이 성명을 내며, 구글 설문 조사 내용을 공개했다. 19일 교수회 투표 이전인 7일~10일 사이에 진행된 설문조사이다. 아래와 같은 의견도 있었다.

“김건희 씨 논문과 대학본부의 대응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중립적인 입장이다. 다만, 김검희 씨 논문과 관련하여 소모적인 논쟁을 할 시간과 에너지를 학교의 발전방향과 긍정적인 미래를 설계하는 데 써주기를 부탁한다.”

내일은 오늘의 연장일 뿐, 오늘과 별개인 내일이란 없다. 미래란 상상속의 시간일 뿐 인간의 실제 시간이 아니다. 한데 허구의 미래를 위해 실존인 오늘을 희생하란 말은 저의가 의심스러운 둔사遁辭일 뿐이다. 미래를 팔아먹는 사람치고 오늘을 떳떳하게 살고 있는 이는 드물다.

더욱이 세상사에는 ‘따뜻한 가슴’으로 풀어야 할 일이 있고, ‘차가운 머리’로 판단해야 할 일이 있다. 학위 논문 심사는 차갑게 판단한 일이지, 따뜻하게 흥정하는 일이 아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교수들이 ‘오늘의 잘못을 바로 잡자’는 노력을 ‘발전’과 ‘미래’를 위해서는 ‘소모적’이라고 폄훼한다. 이런 유의 교수들은 세 가지 중 하나이다.

첫째, 변便과 된장을 구분 못하는 얼치기다. 둘째, 무조건 유리한 쪽에 붙는 박쥐족속이다. 셋째, 불의로 개인적 이익을 챙기는 영악한 자이다. 얼치기는 차라리 낫다. 문제는 박쥐족속과 영악한 자들이다. 이들은 대단히 영리하고, 공공선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사적 이익에 아주 민감하게 처신한다.

불행하지만 이런 자들이 멀리 갈 것도 없이 일제강점기와 현대사의 주역이었다. 이들을 처단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울 호기가 있었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약칭 반민특위). 그러나 대단히 통탄스럽게도 되레 이들에 의해 반미특위는 와해되었다. 그 결과로 현대사는 굴절로 얼룩졌고, 아직도 박쥐족속과 영악한 자들이 정치·경제·문화·언론·법조·학계 등 모든 분야에서 군림하고 있다. 대한민국 몸통에 쇠줄이 감겨져 있는 것이다.

한-일 관계 개선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가해자는 일본이다. 일본이 한일관계에 쇠줄을 묶었다. 이 쇠줄을 풀어내야만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 묶은 자가 풀어야 한다. 한데 일본은 어떠한가.

올해부터 모든 일본 고등학생이 배워야 할 역사 교과서 12종 중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조금이라도 서술한 곳은 단 한 곳뿐이다. 내년부터 일본 고교 2학년 이상 학생이 사용하는 교과서에서 가해자를 명확히 한 ‘일본군 위안부’라는 표현은 사라진다. 일본 정부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일본은 과거에 자신들이 묶은 쇠줄을 풀어내는 데 조금도 관심이 없다. 한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은 채, ‘한-일 관계 회복’만 거듭 강조하고 있다.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배상 판결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이 현금화 작업을 멈추려면 미쓰비시중공업 등 피고 기업의 ‘사과’와 ‘배상 참여’ 등 요구 사항이 일정 정도 수용되어야 한다. 한데 이에는 침묵하다 보니, 거꾸로 일본에서는 모든 책임을 한국에 떠넘기고 있다.

산케이뉴스(産經新聞)의 2022.8.20.자 ‘윤 정권의 대일 정책, 행동 없는 개선은 있을 수 없다’는 제목의 주장은 문제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일본기업의 자산매각 명령이 확정되어 현금화 되면, 일한관계는 파탄한다. 윤 대통령은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현금화를 막을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윤 정권은 대법원의 판단에 선수를 치는 형태로, 외교적인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원고 측의 설득을 포함하여, 일본을 끌어들이지 않고 한국 내에서 문제를 완결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징용공을 강제 동원하여 가혹행위를 저지른 가해국이 피해국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문제를 해결하라고 주장한다. 도대체 대한민국은 ‘국익과 자국민 보호’를 위한 외교라는 것이 있는 국가인가!

[머니투데이 캡처]

문재인 정부에서 군 당국이 낮은 고도로 근접 비행하는 일본 해상초계기에 대해 현장 지휘관이 추적 레이더를 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지침을 만들었다. 이에 대해 이 신문은,

“윤 씨는 일미한의 안보협력 중시를 통하여 대통령이 되었다. 15일의 연설에서도 일본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윤 씨는 레이더 조사照射의 잘못을 인정하여 사죄하고, 문제의 지침을 즉시 파기하여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전 정권의 폭거라고 하여도, 이 문제를 유야무야하여서는 안 된다. 그러지 않고서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도 안보협력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조송원 작가

안에 쇠줄이 박힌 나무는 아무리 허우대가 멀쩡해도, 속으로는 곪아있다. 비바람에 취약하다. 나무가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쇠줄을 풀어내야 한다. 하나의 쇠줄은 당장의 어려움 때문에 방치한다면 또 다른 쇠줄에 감기게 된다.

징용공 문제에 정의를 희생하며 가해국의 잘못을 응징하지 않는다면, 일본은 또 어떤 요구를 하게 될까. 레이더 조사照射 문제를 또 초들어 나올 것이고, 급기야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더욱 강경한 태도를 취할 것이다.

제발,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는 새지 않길 바란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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