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9-여는 시】 가을 부근 - 정일근

시민시대1 승인 2022.09.01 11:09 | 최종 수정 2022.09.02 10:03 의견 0

가을 부근
                           정 일 근 시인

 

 

 

여름내 열어놓은 뒤란 창문을 닫으려니
열린 창틀에 거미 한 마리 집을 지어 살고 있었습니다
거미에게는 옥수수가 익어가고 호박잎이 무성한
뒤뜰 곁이 명당이었나 봅니다
아직 한낮의 햇살에 더위가 묻어나는 요즘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일이나, 새 집을 마련하는 일도
사람이나 거미나 힘든 때라는 생각이 들어
거미를 쫓아내고 창문을 닫으려다 그냥 돌아서고 맙니다
가을 바람이 불어오면 여름을 보낸 사람의 마음이 깊어지듯
미물에게도 가을은 예감으로 찾아와
저도 맞는 거처를 찾아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정일근

◇ 정 일 근 시인

▷경남 진해 출생
▷1984년 실천문학 신인상과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바다가 보이는 교실》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방》 《소금성자》 등
▷경남대 교수를 거쳐 현재 석좌교수, 청년작가아카데미 원장.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