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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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3 16:18 | 최종 수정 2022.11.03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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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월
강은교
담 너머 한 사람이 웃고 있다.
지붕 끝에서 펄럭이던
필생畢生의 바람도 그치고
수레 밖에는
아직 시작되지 않는 싸움
동백 서너 송이가
먼저 시냇물을 건너간다.
너무 늦게 왔는가
그 사람 눈썹에는
마른 풀잎이 가득하고
일 년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은 여름
입은 옷이 무거워
지하의 저 길도 무너지려 한다.
마지막 수레도 보내고 나면
긴 뜰에는 빈집이 혼자
바람을 기다리고
나의 죽음을 기다리고
아,
사방 일천 리의 하늘을
나보다 큰 인류가 걸어가고 있다.
강은교 / 연세대학교 영문과 및 동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68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아직도 못 만져본 슬픔이 있다』, 『허무집』, 『풀잎』, 『빈자 일기』, 『소리집』, 『붉은 강』,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 『벽 속의 편지』, 『어느 별 위에서의 하루』, 『등불 하나가 걸어 오네』, 『시간은 주머니에 은빛 별 하나 넣고 다녔다』, 『초록 거미의 사랑』, 『네가 떠난 후 너를 얻었다』, 『바리연가집』 등이 있다. 한국 문학 작가상, 현대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박두진 문학상, 유심작품상, 구상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동아대학교 문창과 명예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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