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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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2 00:00 | 최종 수정 2020.04.19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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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학자 올리버 색스.
연역적 방법론을 창시한 르네 데카르트(1596~1650)는 대학에서 법학사 학위를 받은 뒤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으로 여행을 떠난다. 약관 20세였다. 음악과 수학을 배우며 방랑하던 그는 독일 울름 근교의 작은 마을 오두막에서 놀라운 영감을 받는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적, 철학적 통찰이라는 명제,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가 여기서 잉태된다. 연역과 논증의 출발점 즉, 철학의 '제1 원리'가 탄생한 것이다.
데카르트의 그 영감을 좇아보자. 그는 수학적 방법으로 증명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의심하거나 부정하기로 한다. 그렇다면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모든 것은 거짓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의심을 하기 위해서는 '나'라는 한 인간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만은 참임을 연역할 수 있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의심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의심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증명을 이끌어낸 것. 이것은 서구 사상사에서 가장 눈부신 연역이다. 인류는 진정한 '생각하는 인간(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으로 거듭난 것이다.
21세기 몸의 시대, 감성의 시대에 '생각'은 자칫 고루한 행위로 취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생각'을 너무 '두뇌의 이성적 작용'이라는 좁은 의미로만 해석한 결과다. 미셸 루트번스타인 부부가 쓴 '생각의 탄생'(에코의 서재)은 우리 인간의 '생각의 도구'가 얼마나 다양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느낌(직관)'으로 생각했으며, 피카소와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으로 생각했다. 그런가 하면 잭슨 폴록은 몸으로 느끼며 액션 페인팅을 창조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찌푸린 이마뿐 아니라 다리의 근육, 오므린 발가락도 생각 중임을 나타낸다.
영화 '사랑의 기적(Awakening)'의 원작자이자 미국의 저명한 신경학자인 올리버 색스(81)가 말기암 선고를 받고 뉴욕타임즈에 투고한 자전적 에세이 '내 인생(My Own Life)'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세상과 이별을 담담하게 준비하는 그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순간 '감사'를 느끼고 있다고 썼다. 특히 "아름다운 지구에서 '생각하는 동물'로 산 것은 큰 특혜이자 모험이었다"고 밝히는 대목은 깊은 울림을 준다.
죽음이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이라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 맨 위에 자신의 '생각의 역사'를 적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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