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의 문제의식

코페르니쿠스의 문제의식

조송현 승인 2017.02.13 00:00 | 최종 수정 2018.08.06 18:25 의견 0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초상. 출처: 위키피디아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초상. 출처: 위키피디아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는 너무나 잘 알려졌듯이, 태양 중심의 우주 체계(태양중심설, 태양중심 지동설, 지동설)를 수립한 과학사에 빛나는 인물입니다. 그는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로부터 이어진 지구 중심의 천문학(천동설)에서 태양 중심의 천문학으로 혁명을 이루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이로써 인류의 우주관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독일 철학자 에마뉴엘 칸트가 자신의 인식론을 종래에 비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한 이후 이 말은 혁명적 변화를 비유적으로 일컬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폴란드 비스툴라 강변 토른에서 유복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10세 때 아버지를 잃고 아저씨 루카스 바첼로데에 의해 양육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아저씨는 1489년에 에름란트의 주교가 된 사람입니다. 코페르니쿠스는 크라코우 대학에서 신학 수학 천문학을 배운 뒤 1496년 르네상스가 꽃피던 이탈리아에 유학을 갔습니다. 볼로냐에서 법률을, 로마에서 수학 천문학, 파비아에서 의학을 배워 교회법 박사가 되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1506년 아저씨의 사망으로 귀국하여 발트 해안의 프라우엔부르크 사원의 성직자가 되었고, 30년 동안 의학 정치 교회 재정 등 다방면에 걸쳐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된 관심은 언제나 새로운 우주 체계 연구에 있었습니다. 그는 사원 근처의 탑을 천문대로 삼고 해시계 삼각의 관측의 등에 의지해 천체 관측에 몰두하였습니다.

법률과 의학을 전공한 성직자 ... 새로운 우주 체계 연구에 몰두

코페르니쿠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체계를 개혁하려 하였고,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 중심설을 연구한 끝에 지동설의 체계를 세웠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는 원 궤도를 고집하는 등 고대 그리스 이념에 충실한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중세의 계층 질서에 의한 우주관을 타파하고 근대적인 우주관, 자연관으로의 길을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는 비텐부르크의 수학자로 후일 그의 제자가 된 게오르그 레티쿠스에 의해 그 일부가 1540년 간행되었고, 사망 직전인 1543년 5월 레티쿠스에 의해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란 제목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이 저서는 많은 천문학자와 종교가들의 비난을 받았으나 갈릴레이 뉴턴 등의 연구에 의해 완전히 실증되었고, 천문학의 새로운 기원을 이룩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세계관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활동했던 15세기와 16세기 초에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체계(천동설)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2세기 사람인 프톨레마이오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을 비롯한 그리스의 천문학과 철학에 기초해 우주 체계를 집대성한 사람입니다. 그가 펴낸 책은 ‘가장 위대한 것’이라는 뜻의 『알마게스트』입니다. 이 책은 12세기 서구 유럽에 의해 당시 이슬람 세력권에 있던 스페인 톨레도가 함락되면서 다시 유럽으로 유입되었지요.

프톨레마이오스 우주 체계의 기본 철학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입니다. 즉, 비천한 지구와 고귀한 천상의 세계를 설정한 것과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입니다. 그리고 천계와 우주는 완벽한 원 운동을 해야 한다는 절대가정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여기에다 천체의 가시적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주전원(epicycle)과 이심(eccentric point), 동시심(equant)이란 개념을 도입해 천체 모형을 완성했습니다. 그러나 이 체계는 여러 개념들이 무원칙하게 사용돼 지나치게 복잡했습니다. 우주를 총체적이고 일관되게 설명하기에는 이론적 토대가 약하다는 비판을 받았지요.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의 주석서 『요약 Epitome』에 영감

특히 당시 지구 중심설에 논리적인 결함이 있다는 지적이 대두되었습니다. 별들의 일주 운동이 천구의 회전 때문이라면 천구의 거대한 크기를 감안할 때 천구의 표면에 있는 많은 별들은 엄청난 속도로 움직인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수많은 별들이 왜 그토록 엄청난 속도로 움직여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법한 일이죠. 조그만 지구가 자전한다고 가정하면 수많은 별들이 그렇게 빨리 돌 필요가 없거든요. 항성들의 일주 운동은 거대한 천구의 항성들이 실제로 지구를 한 바퀴 돌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항성들은 가만히 있고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착시현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대두된 것입니다.

대성당 참사원으로 근무하면서 천문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23세의 청년 코페르니쿠스는 1496년 출판된 『요약 Epitome』이란 책에서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포이어바흐의 제자인 레기오몬타누스가 스승의 유언을 받아 펴낸 이 책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를 번역하고 논평을 곁들인 내용입니다. 논평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의 핵심적인 문제, 즉 하늘에 떠 있는 달의 외관상 크기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 밝힌 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가 너무 복잡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신플라톤주의는 고대 그리스 사상과 기독교 창세기가 융합된 사상인데, 복잡한 것보다 간단명료한 설명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문제의식 :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는 왜 복잡한가, 왜 현상과 맞지 않는가

코페르니쿠스로 하여금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체계보다 더 나은 체계를 개발하도록 부추긴 핵심적인 두 가지 요인이 있었습니다. 첫째,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는 태양과 달, 그리고 행성들을 총체적이고 일관된 체계(오늘날 태양계)로 궤도 운동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태양과 달, 그리고 행성들을 모두 각자의 궤도 운동 체계를 갖는다는 것은 ‘통일된 원리’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어긋났던 것입니다.

둘째,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 따르면 달의 지름이 4배까지 변하므로 외견상 크기(면적)는 16배의 차이가 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같은 차이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현실과 맞지 않고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는 체계는 옳은 이론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코페르니쿠스는 달에 관련된 현상을 통해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 문제가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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