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의 체계(heliocentrism, 태양 중심설, 태양 중심 지동설·약칭 지동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그것보다 단순하면서도 한층 우아했습니다. 이 체계는 수성과 금성을 지구의 안쪽 궤도에, 지구 바깥에 화성 목성 토성을 차례로 배치함으로써 각 행성들의 공전 주기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즉 태양에서 가까운 행성일수록 공전주기가 짧고 멀수록 공전주기가 긴데, 이는 관측 사실을 우아하게 설명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모형은 근대적으로 표현하자면 우아함에서 프톨레마이오스의 모형보다 뛰어났습니다. 우아함은 종종 진리로 안내해주지만, 그렇다고 진리를 보증하지는 않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는 예전의 체계에 비해 부분적으로 옳았지만 실체적 진실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후에 밝혀졌습니다. 그의 체계는 프톨레마이오스의 그것보다 훨씬 간단했지만, 훗날 케플러에 의해 세워진 체계보다는 복잡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천체의 외관상의 운동을 34개의 원으로 설명했지만 케플러는 불과 7개의 타원으로 설명했습니다. 케플러가 말한 것처럼 코페르니쿠스는 그의 손안에 있던 보배를 모르고 있었던 셈입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원 몇 개를 짜 맞추면 타원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천체의 궤도를 그리는 데에 이 도형을 쓰지 않았습니다. ‘원 궤도 운동’이라는 그리스의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지요.
원 궤도 가정한 코페르니쿠스 체계, 우아했지만 실용성은 개선 안돼
코페르니쿠스가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그 체계가 동시심(equant, 기하학적인 중심이 아니라 실제 궤도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가정된 중심)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는 관측 사실과 달라서가 아니라 심미적인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변함없는 속도로 하나의 중심을 따라 돌고 있는 우주 모형을 원했던 것입니다.
사실 태양을 우주의 중심에 놓는 것은 커다란 도약이었습니다. 그러나 애초 심미적(곧 우아함)인 가설에서 출발한 그의 우주 체계는 그 자체로는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여전히 달은 지구의 둘레를 돌아야 했고, 행성들이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동안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지동설의 배경이나 그것을 이론적으로 지탱해준 것은 역학이나 운동이론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 사상의 부흥을 원했던 코페르니쿠스 자신의 미의식이었습니다. 이는 『천체의 회전에 대하여』에서 이미 그리스 시대에 지구가 움직인다고 주장한 선각자들이 있었음을 역설하는 부분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있는 ‘중심불’의 주변을 돈다고 생각한 피타고라스학파의 필로라오스, 혹은 지구의 자전을 주장한 에크판토스(Ekphantos)와 히케타스, 지구의 공전설을 주장한 아리스타르코스의 이름을 실례로 듭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생각한 우주 체계를 흔히 지동설이라고 표현하는데, 실제로 그의 의도를 생각해 보면 ‘태양 중심설’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주장 속에는 신플라톤주의에서 보이는 태양숭배 사상의 영향이 진하게 배었기 때문입니다.
코페르니쿠스 지동설의 사상적 배경 ... 고대 그리스 사상에 기반한 미의식과 신플라톤주의
신플라톤주의는 15세기 말 무렵부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널리 퍼진 신비사상의 하나입니다. 플라톤주의의 특징은 한 마디로 “우주의 진리를 수학에서 구한다.” 입니다. 즉 우주를 창조한 신의 의도를 수학(기하학)에 근거해 이해하려는 시도인 것입니다. 이처럼 신비주의적 색채가 농후한 플라톤주의에 ‘태양숭배’의 외양을 덮어쓴 것이 신플라톤주의입니다. 이 사상이 가진 최대의 특징은 태양숭배입니다. 빛나는 태양을 우주의 중심에 서 있는 특별한 존재로 숭배하고 신의 화신으로 상징화했던 것입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젊은 시절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에서 4년을 보냈는데 거기에서 신플라톤학파 도미니크 교수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다고 합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유학 시절 신플라톤주의에 매우 심취되어 폴란드로 돌아온 것입니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 체계가 일반인들에게 환영받은 것은 아닙니다. 이 체계는 천체 궤도 수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보다 적어 천문표 계산은 훨씬 쉬워졌지만, 정확도 면에서는 나아진 게 별로 없었습니다. 양쪽이 다 약 1%의 오차를 보였던 것입니다.
코페르니쿠스 체계가 환영받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별의 시차운동을 설명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만약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면, 수정천구에 붙어 있는 별들의 시운동(겉보기 운동)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별들의 움직임은 관측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근거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며 코페르니쿠스를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시차운동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별들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 효과를 관측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관측 기술이 정밀하지 못했으니까요. 코페르니쿠스는 당연히 그렇게 설명했으나 당시 반대자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지구에서 별까지의 거리가 지구에서 태양계 행성까지의 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멀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요.
지동설 수용 난점 ... 시차운동, 바람, 원심력 효과가 왜 나타나지 않는가?
당시 사람들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코페르니쿠스 모형을 수용하기 어려웠던 점은 시차운동 말고도 더 있습니다. 지구가 움직인다면 ‘바람 효과’가 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죠. 또 지구가 태양 궤도를 돈다면 거대한 원심력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람 효과나 원심력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지구가 움직인다는 주장을 믿으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중력 개념을 몰랐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코페르니쿠스는 중력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반대자들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의 해명은 오늘날 과학지식으로 보면 매우 우스꽝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왜 ‘바람 효과’가 일어나지 않느냐에 대해 코페르니쿠스는 “공기는 지구와 같은 성질을 띠고 있으므로, 공기는 지구와 함께 회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그는 ‘공기는 지구에 접촉하고 계속 돌고 있으므로 바람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지구가 돈다면 원심력이 생기지 않느냐’는 반론에 대해 코페르니쿠스는 “원심력은 지구나 천체의 경우와 같은 자연운동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며 비자연적, 즉 강제적 운동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험을 외면한 코페르니쿠스 ... 사고는 혁명적 과학자, 방법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코페르니쿠스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있어서는 혁명적이었으나 이를 체계화하는 방법에서는 보수적이었습니다. 그는 일생 동안 천체의 운동 궤도는 원이며 한결같지 않으면 안 된다(회전 속도가 일정해야 한다)는 고대 그리스적 관념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과학혁명의 중간적 존재였으며, 근대 과학자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를 더 닮았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근대 과학에 필수적인 실험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태양 중심 지동설은 복잡한 프톨레마이오스 체계 대신 새롭고 단순한 방식을 제공한 사상, 또는 ‘사고 실험’인 셈입니다.
만약 근대 과학자가 우주의 작동방식에 대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면 가장 먼저 실험이나 관측을 통해 그 아이디어를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는 과학 방법론의 발전 과정에서 핵심적인 이 단계의 필요성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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