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태양 중심설의 시작은 코페르니쿠스 아닌 케플러"

"진정한 태양 중심설의 시작은 코페르니쿠스 아닌 케플러"

조송현 승인 2017.02.28 00:00 | 최종 수정 2018.08.19 23:21 의견 0

 

케플러가 여섯 살 때인 1577년 11월 12일 프라하 상공에 나타난 대혜성을 묘사한 판화 그림. Jiri Daschitzky 작품. 출처: 위키피디아
케플러가 여섯 살 때인 1577년 11월 12일 프라하 상공에 나타난 대혜성을 묘사한 판화 그림. Jiri Daschitzky 작품. 출처: 위키피디아

케플러의 천문학 혁명 ... 궤도의 기하학적에서 천체의 동역학으로 

케플러의 천문학은 단순히 태양을 중심에 놓고, 원 궤도를 타원 궤도로 바꾸는 것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의 개혁의 본질적인 점은 행성운동을 일으키는 원인으로서, 태양이 행성에 미치는 힘이라는 물리적 개념을 도입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천문학을 궤도의 기하학에서 천체의 동역학으로, 천공의 지리학에서 천계의 물리학으로 변환시켰습니다.

케플러는 첫 저서 『우주의 신비』에서부터 천문학 개혁의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우주의 신비』에서 케플러는 행성들의 태양 간 거리와 공전주기 사이의 비율에 관한 확실한 근거를 모색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처음엔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으로부터 유래된 기하학적 질서와 조화에서 그 근거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티코 브라헤와의 만남 이후 이 문제를 동역학적인 고찰로 전환했습니다. 케플러는 드디어 행성을 움직이게 하는 동역학적인 원인, 즉 힘을 탐구했던 것입니다.

케플러는 1600년에 펴낸 『티코의 옹호 Apologia pro Tychonecontra Ursum』에서 정성적인 설명뿐인 자연학을 수학적, 물리학적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오직 궤도의 기하학을 다루는 ‘천문학’과 사물의 본성과 사물의 원인을 논하는 ‘물리학’을 구별하지 말고, 천문학을 물리학의 일부로 삼아 천체동역학, 천계의 물리학을 실행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케플러가 행성운동에 대한 제1, 2법칙을 처음 발표한 것은 1609년의 『새로운 천문학』인데 그 부제가 ‘티코 브라헤 경의 관측과 화성 운동을 고찰한 결과 얻어진 인과율 또는 천계의 물리학에 의거한 천문학’이었습니다. 그는 서문에서 천문학 이론의 개혁을 위해 “나는 천계의 물리학으로 옮겨 운동의 자연적 원인을 추구하게 되었다.”고 밝힙니다.

케플러는 또 훨씬 나중에 쓴 필생의 대작 『코페르니쿠스 천문학 개요』 제1권 첫머리의 「천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천문학은 지상의 우리가 하늘이나 별을 바라볼 때 생기는 현상의 원인을 제시하는 과학이다. 그것은 사물이나 자연현상의 원인을 추구하므로 물리학의 일부이다.”라면서 “흔히 천문학에는 물리학(자연학)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천문학은 물리학과 가장 관계가 깊고 물리학은 천문학자에게 불가결한 것이다.”고 했습니다.

케플러 "지구와 달이 서로 끌어당긴다" ... 뉴턴 만류인력의 개념 먼저 떠올려

케플러는 이미 1596년 『우주의 신비』가 나온 시기에 태양의 운동령(운동력)이 거리와 함께 감소한다고 추측함으로써 꽤 초기 단계부터 만유인력에 근접한 개념을 떠올린 것 같습니다. 『새로운 천문학』의 서문에서는 ‘지구와 달, 나아가서는 두 개의 돌이 중력으로 서로 끌어당긴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지적합니다. ‘만유인력’으로서의 중력이라는 뉴턴의 성취를 확실하게 예견한 대목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케플러 사후에 출판된 과학소설 『달의 꿈 Dream of Moon』의 끝 부분에는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나는 ‘중력(무게)’을 자기력과 유사한 상호적인 인력으로 정의한다. 근접한 물체 사이의 인력은 멀리 떨어져 있는 물체들 사이에서보다 훨씬 크다.” 길버트(William Gilbert, 1544~1603)의 자기철학의 영향을 받았던 케플러가 중력의 개념을 자력에서 힌트를 얻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근대 역학과 근대 천문학은 케플러가 천체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중력)을 자력과 나란히 놓고 비교함으로써 시작됩니다. 케플러는 개개의 행성 궤도나 위치를 결정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태양계 전체를 하나의 조화적인 체계, 즉 단일한 동역학적인 시스템으로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즉 태양계 전체를 단일한 힘의 관계식으로 표현하고자 했다는 뜻입니다.

케플러는 조물주가 우주에 혼(정신)을 부여해 스스로 운동하게 했다는 플라톤의 생각을 믿지 않았습니다. 자연의 운동은 우주의 정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떤 힘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케플러는 생각했습니다. 케플러는 원의 주술에서 벗어나 힘 개념에 근거한 물리학으로서의 천문학을 구상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케플러, 길버트의 자기철학에서 행성 운동의 물리적인 힘의 근거 착상

케플러는 우주의 중심은 운동의 물리적인 중심이며, 따라서 거기에는 빛과 힘의 원천이 되는 물리적 실체, 즉 모태인 태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태양 중심설(태양 중심 지동설)은 코페르니쿠스가 아닌 케플러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야 합니다. 케플러에서 비로소 천계의 물리학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코페르니쿠스가 태양계의 중심을 태양이 아닌 지구 공전 궤도의 중심에 두었던 데 반해, 케플러는 태양 그 자체에 두었다는 점에서도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힘의 원천이자 물리적인 중심으로서 태양’을 생각했던 케플러는 ‘태양 중심’을 관측을 통해 ‘사후적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라 ‘선험적으로’ 요청했던 것입니다. 그는 ‘지구 공전 궤도의 중심, 즉 단순히 기하학적인 한 점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코페르니쿠스의 가설은 물리적으로도, 형이상학적으로도 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 개요』 제4권에서 “나는 내 천문학 전체를, 세계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의 가설과 티코 브라헤의 관측 그리고 영국인 윌리엄 길버트의 자기철학을 토대로 삼았다.”고 술회했습니다. 케플러는 길버트의 자기철학에서 행성 운동 이론의 물리학적 근거를 발견했다는 말입니다. 즉 멀리 떨어진 천체들 사이에 작용하는 물리적인 힘(원격작용)이라는 개념을 케플러는 지구를 자석으로 본 길버트의 이론에서 착상했던 것입니다.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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