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 현상과 맞지 않고 복잡한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 만족하지 못한 코페르니쿠스는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타르코스가 처음 제안한 태양 중심설을 다시 검토해보았습니다. 우주의 중심을 지구에서 태양으로 옮기자 신기하게도 여태까지 복잡하게만 보였던 천체 운동들이 매우 간단해 보였습니다. 그는 태양 위에 올라서서 행성들의 운행을 굽어보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모든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원 궤도를 그리며 운동하는 모습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태양에서 각 행성 간 거리도 쉽게 계산되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가 가진 복잡함은 사라지고 단순함이 드러나 보였습니다. 태양 중심 모형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 손상된 우주의 대칭성도 회복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해주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이즈음 모든 표면적인 위치 변화는 그 사물이나 관찰자의 운동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두 물체가 같은 방향과 속도로 움직일 경우 한 물체에서 다른 물체의 움직임을 인식할 없다는 것입니다. 관찰자와 관찰되는 사물 사이의 상대적인 운동을 뜻합니다. 이는 뒷날 갈릴레이에 의해 '상대성의 원리'(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다름)로 확립됩니다.
운동의 상대성 이해 ... 별들의 일주운동은 지구의 자전 영향
코페르니쿠스는 천구의 회전이나 행성의 운동도 지구에서 볼 때와 지구 바깥, 이를 테면 태양이나 천구에서 볼 때는 서로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관찰자가 움직이는 곳에 있다면 관찰하고자 하는 대상이 움직이지 않아도 움직이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지구의 사람들은 움직이는 지구에서 ‘보이는 현상’이 절대 진리라고 여겨왔던 것입니다. 지구의 자전은 지구 바깥, 즉 우주 전체가 회전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사실이 코페르니쿠스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다가왔던 것입니다.
이 같은 상대운동 개념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나옵니다.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아스〉에 의하면 트로이의 용사 아이네이아스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항구에서 벗어나서 항해했다. 그러자 땅과 도시들이 떠나갔다.”
행성이 때로는 지구에 때로는 가까워졌다가 또 때로는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사실로부터 행성들의 궤도 운동 중심이 지구(중심)가 아니라는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고대 피타고라스학파의 탁월한 수학자 필로라오스는 지구가 여러 행성 중 하나이며 원 궤도를 그리며 돈다고 믿었습니다. 또 그 후 그리스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도 태양 중심설을 제기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우주 체계, 즉 태양 중심 지동설(heliocentrism, 태양중심설, 지동설)은 운동학적으로 태양을 중심에 두고 지구에 세 가지 운동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하루 주기의 자전과 1년 주기의 태양 공전, 그리고 세차운동을 설명하기 위한 지축의 운동이 그것입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이 같은 구상에 살을 붙이기 위해 사용한 논법은 주로 수학적인 것이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기본 전제 두 가지 ... 관측 현상의 설명, 천체는 원 궤도 운동
코페르니쿠스는 과학 이론이란 어떤 몇 개의 가정 혹은 전제에서 끌어낸 사상의 집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정한 가정 혹은 전제는 다음의 두 가지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첫째, 현상을 인정하는 것, 다시 말해서 천체의 관측되는 운동을 설명하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천체의 운동 궤도는 원이며 한결같다'는 피타고라스학파의 전제와 모순이 되어서는 안 된다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이 같은 수학적 논법에 비추어 볼 때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는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충분히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는 관측과 일치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피타고라스학파의 전제에도 부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어떤 천체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그것들이 원의 중심에 대해 같은 각속도를 갖지 않고, 중심 밖의 점인 궤도 중심에 대해서만 같은 각속도를 갖는 원 운동을 한다고 가정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이러한 가정을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의 중대한 결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논점의 핵심은 아니었습니다. 정작 코페르니쿠스가 고대 천문학자들에게 가한 비판의 초점은 천계의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과 불필요하게 우주 체계를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코페르니쿠스는 그들이 중요한 것을 생략하고 있거나 아니면 본질적이 아닌, 불필요한 것을 허용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고대인들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서 정지해 있는 천동설 체계를 만들기 위해 모든 천체에 대해 여러 개의 원 운동과 원 운동의 조합을 부과했다고 해석했습니다. 이것이 프톨레마이오스를 비롯한 고대인들이 우주 체계를 복잡하게 만든 이유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을 중심에 놓고 행성들이 그 주위를 공전한다고 가정함으로써 이 같은 불필요한 행성들의 원 운동을 지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코페르니쿠스 우주 체계에 사용된 천구는 34개로 프톨레마이오스 모델의 80개보다 훨씬 줄었고, 그만큼 간단했습니다.
단순해진 새로운 체계 ... "신의 솜씨는 불필요한 것을 넣지 않는 시계공처럼 정교하다"
코페르니쿠스의 제자인 레티쿠스는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제안(지동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구의 이 한 가지 운동은 많은 외관상의 운동을 만족시킨다. 자연의 창조주인 신에게는 시계 제조 기술자에게서 볼 수 있는 정교한 솜씨가 있다고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시계 제조 기술자는 기계 속에 불필요한 톱니바퀴를 쑤셔 넣는 일은 피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사실 천체의 운동은 ‘원형이면서 한결같은 운동’이어야 한다는 그리스인의 관념에 충실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방법은 피타고라스 이래 그리스 천문학자들에 의해 사용돼 왔던 것으로 사실 새로운 것은 없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그리스의 관념을 사용해 그리스 우주 체계를 뒤엎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체계 때문에 실제로 혼란에 빠진 그리스적 관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천상계는 고귀하고 지구는 불완전하다는 관념입니다.
코페르니쿠스 체계에서 지구는 다른 행성과 마찬가지로 태양 둘레를 돕니다. 그것은 다른 천체처럼 한결같은 원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 관념에 의하면, 이 같은 운동은 완전하고 불멸하는 천상계에만 특별히 존재하는 성질입니다. 지구와 다른 행성들이 꼭 같이 한결같은 원 운동을 하는데 지구만 불완전하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것이죠.
또 코페르니쿠스는 지구와 다른 천체가 모두 중력을 갖는다면서 지구가 다른 천체와 성질이 비슷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중력은 오늘날 밝혀진 성질과는 달리 천체와 천체 사이에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 천체와 같은 물질덩어리의 내부에만 존재하는 것이며, 덩어리에 응집력을 주어 그것들을 구(球)라는 완전한 모양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이 같은 이론은 목적론적인 셈입니다.
'지구는 비천, 천상계는 고귀' 관념에 의문 제기 ... 지구도 천상계의 행성처럼 원 운동하니까
코페르니쿠스에게 이 같은 중력 개념은 행성계의 중심을 지구에서 태양으로 옮기면서 불가피하게 대두되었습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일 때는 무게의 근원이 단 하나인 지구에 있었지만, 우주의 중심이 태양일 때는 행성과 별들이 각자 중력을 가져야만 했던 것입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가설을 설명하기 위해 『논평』이라는 작은 책을 썼는데, 이것은 1530년 무렵부터 그의 친구들 사이에 퍼졌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새로운 중력 가설은 점차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수학자였던 레티쿠스는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중력 가설에 끌린 나머지 2년 동안 코페르니쿠스 밑에서 공부하였고, 1540년에 처음으로 코페르니쿠스 가설의 해설을 인쇄해 발표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 자신도 마침내 1543년에 그의 주저 『천구의 회전에 대하여』에 그 내용을 담아 공표했습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새로운 우주 체계에 대한 구상을 왜 뒤늦게 펴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가 교회의 박해를 우려해 출판을 늦추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교황 클레멘스 7세와 여러 추기경이 참석한 바티칸의 강연에서 교황의 비서인 요한 비드만스타트가 『논평』을 구두로 소개한 적도 있습니다. 참석했던 추기경 중 한 사람인 니콜라스 폰 쇤베르크는 코페르니쿠스에게 편지를 써서 책의 출간을 재촉했는데, 그 편지는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서문에 실렸습니다.
그렇다면 왜 출판을 미루었을까요. 첫째, 그가 매우 바빴다는 점입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의사와 법률가 행정가 등 다방면에 걸쳐 활동했습니다. 천문학은 직업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둘째, 그는 자신의 우주 모형이 오랜 수수께끼를 해결해주지만 새로운 문제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모형이 오랜 수수께끼를 모두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현대 과학자라기보다 고대 그리스인에 가까운 사상가이자 철학자였던 것입니다.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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