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관 오디세이-상대성이론을 완성하게 된 과학 방법론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에 사용한 자신의 과학 방법론을 상세하게 설명한 귀중한 글이 남아 있습니다. 런던타임스의 요청에 따라 쓴 ‘상대성이론을 완성하게 된 과학 방법론’(런던 타임스 1919년 11월 28일 자)이 바로 그것입니다.1)
물리이론을 구조 측면에서 분석하면, 구성이론(constructive theory)과 원리이론(principle theory)으로 대별할 수 있다고 아인슈타인은 설명했습니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구성이론은 단순한 가설로부터 출발하여 구성 과정을 거쳐 형성된 이론입니다. 구성이론은 일종의 종합적인 방법인데, 그 장점은 완결성, 적응성, 명확성에 있습니다.
반면에 원리이론은 보편적인 경험적 사실인 원리에 토대를 두고 형성된 이론입니다. 이는 분석적인 방법으로써 그 장점은 논리적 완전성과 토대의 안정성입니다.
상대성이론은 원리이론에 속합니다. 그것의 본성을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것의 기초가 되는 원리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체의 운동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그 물체의 운동의 기준이 될 두 번째 물체가 필요하다는 것은 고대 그리스 때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특수상대성이론 창안 과정 ... 시간과 공간의 법칙 수정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 창안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갈릴레이와 뉴턴의 역학 법칙들은 좌표계의 도움으로 공식화될 수 있습니다. 갈릴레이와 뉴턴의 역학들이 받아들여지는 좌표계를 관성계라고 부릅니다. 이 역학에 따르면 한 관성계의 운동 상태는 자연에 의해 유일하게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다음과 같은 정의가 유효할 것입니다. ‘한 관성계에 대해 등속 운동하는 좌표계는 그 역시 관성계이다.’ ‘특수상대성의 원리’는 모든 자연적 사건을 포함하기 위해 이 정의를 일반화한 것입니다.
특수상대성이론의 두 번째 공준은 진공 속에서의 광속불변의 원리입니다. 이 원리는 진공 속의 빛이 항상 일정한 전파속도를 갖는다(관찰자나 광원의 운동 상태와는 관계없다)고 주장합니다. 물리학자가 이 원리에 부여하는 확신은 맥스웰과 로렌츠의 전기역학이 이룩한 성공에서 비롯됩니다.
앞에서 언급된 원리는 둘 다 경험에 의해 강력하게 지지를 받지만 논리적으로 양립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습니다. 특수상대성이론은 마침내 운동학, 즉 시간과 공간의 법칙에 관한 이론의 수정(물리학의 관점에서)에 의해 그것들을 논리적으로 화해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 창안 과정 ... 현상에 바탕한 직관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의 창안은 다음과 같은 물음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자연은 우리의 좌표계 및 그것의 운동 상태와 어떤 관계를 가질까요?
물리법칙이 관성계와 비관성계(비등속운동)를 구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인슈타인은 자연을 묘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우리가 임의로 도입한 좌표계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운동 상태에 아무런 제한을 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법칙들은 전적으로 이러한 선택에 독립적이어야 합니다(상대성의 일반원리).
이러한 상대성의 일반원리는 오랫동안 알려져 온 경험적 사실인 물체의 관성과 무게가 같은 상수(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의 동등성)라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 관성계에 대하여 등속회전하는 좌표계를 상상해 보겠습니다. 뉴턴의 가르침에 따라 이 좌표계에 나타나는 원심력은 관성의 효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원심력은 정확하게 중력처럼 물체의 질량에 비례합니다. 이 경우 그 좌표계를 정지한 것으로 간주하고 원심력을 중력으로 간주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간단한 고찰을 통해 일반상대성이론이 중력의 법칙을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을 통찰했고, 그 생각을 따라가자 그 예상이 옳았음이 입증되었습니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생애 최고 영감'이었다고 회상한 등가원리(equivalence principle)를 말하는 것입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의 주된 매력은 논리적 완전성에 있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으로부터 이끌어낸 결론 중 단 하나라도 틀렸다는 것이 입증되면 이 이론은 폐기되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경험적 요소에서 추론될 수 없는 물리적 직관을 강조했다고 해서 순수 사고만으로 과학이론을 창안할 수 있다는 주장은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은 친구 미셸 베소에게 "신뢰할 만한 가치 있는 이론은 일반적인 경험사실의 바탕 위에 세워져야 한다"면서 상대성이론에 대해 '순이론적인 사색이 경험주의보다 우수하다는 게 입증됐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뉴턴역학은 관성의 법칙 위에 세워졌고, 특수상대성이론은 광속불변성을 토대 위에, 일반상대성이론은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이 등가라는 데 기초해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상대성이론 이후 - 수학적 연역
아인슈타인은 1920년대 이후 통일장이론에 몰두했습니다. 이것은 중력과 전자기력을 통합하고, 양자론까지도 수용하는 거대한 꿈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아인슈타인이 동원한 방법은 수학이었습니다. 그는 일반상대성이론의 중력장 방정식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수학의 힘에 매료되었습니다.
‘중력이 곧 기하’라는 통찰로부터 새로운 기하학(리만기하학)을 사용해 중력장 방정식을 유도해내었으며, 이로부터 자신의 가설이 옳았음을 확인했을 때 그는 놀라움과 희열에 빠져들었습니다. 이로부터 아인슈타인은 수학적 방법과 순수한 사유에 의한 연역적 방법으로 물리적 실재를 탐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아인슈타인이 1933년 6월 10일 옥스퍼드 대학에서 행한 허버트 스펜서 기념 강연은 그의 후기 과학 방법론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제까지 우리의 경험은 자연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수학적 개념의 실재화라는 우리의 믿음을 정당화시켜 줍니다. 저는 우리가 순수하게 수학적인 방법을 통해 물리 개념과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자연 현상을 이해하는 데 열쇠를 제공해 줍니다. 경험은 적절한 수학적 개념을 암시할지 모르지만 수학적 개념은 확실히 경험으로부터 연역될 수 없습니다. 물론 경험은 계속하여 물리학에서 수학적 구성의 유용성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입니다. 그러나 그 독특한 창조적 원리는 수학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저는 고대인들이 그랬듯이 순수한 사고가 실재를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을 믿습니다. 이 확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저는 수학적 개념을 사용하려고 합니다."2)
아인슈타인은 “경험(실험사실)이 수학적 구성의 유용성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이라고 하면서도 “고대인들의 ‘순수한 수학적 사고를 통해 실재를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수학을 물리적 진리를 찾는 확실한 이정표로 삼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 창안 이후 실험적 사실에 충실한 과학 방법론을 외면했으며, 창조적인 물리적 직관도 예전처럼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듯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또 고전역학적인 결정론과 실재론을 철석같이 믿은 나머지 양자론이 제시하는 엄연한 실험 결과와 관측 사실을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 성공 이후에는 모든 역량을 오직 통일장이론에 쏟았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구체적인 물리적 이미지를 생각하지 않고 방정식(수학)에만 몰두한 때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통일장이론 완성에 실패했다고 해서 그의 위대한 과학적 업적과 삶이 훼손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인슈타인의 후기 ‘순수한 수학적 사고를 통한 물리학적 진리 탐구’ 실패 사례는 지나치게 수학적 아름다움을 좇는 현대 물리학계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듯합니다.
#1)아인슈타인의 나의 세계관, 홍수원·구자현 옮김, 중심, 2003. 273~280p
2)같은 책, 325~333p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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