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보어-아인슈타인 논쟁 …<라운드 3> EPR 논증 ⑤양자 얽힘의 해석

세기의 보어-아인슈타인 논쟁 …<라운드 3> EPR 논증 ⑤양자 얽힘의 해석

조송현 승인 2017.10.30 00:00 | 최종 수정 2018.05.20 00:00 의견 0

201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데이비드 와인랜드(오른쪽) 미표준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과 서지 아로슈 콜레쥬 드 프랑스 교수. 이들의 업적은 양자중첩 현상을 이용한 것인데, 양자얽힘 연구의 노벨상 수상도 멀지 않았다는 예상을 낳는다. 출처 : 노벨위원회

양자 얽힘은 특수상대성이론에 위배되나?

양자 얽힘은 믿기 힘들 만큼 경이로우면서도 충격적인 현상임에 틀림없습니다. 어떻게 한 입자에 대한 관측 행위가 공간을 초월하여 즉각적으로 다른 입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이건 특수상대성이론의 대전제(정보전달은 빛의 속도를 넘을 수 없다)를 위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약 쌍입자 S₁과 S₂ 사이에 ‘어떤 신호(signal)가 즉각 전달되는 것이라면’ 특수상대성이론과 상충되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두 광자 사이에 존재하는 ‘즉각적인 상호연관성’이 밝혀진다면 특수상대성이론은 당장 붕괴하게 됩니다. 특수상대성이론이 오류라면 현대 물리학의 토대가 붕괴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물리학계는 엄청난 혼란을 겪게 되겠지요.

이 같은 ‘특수상대성이론 위배’라는 엄청난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물리학자들은 양자 얽힘을 ‘초광속 정보전달’보다는 두 쌍입자 사이의 ‘원초적인 연결고리’ 쪽으로 해석합니다. 아스페의 실험에서 사용된 두 광자는 애초 한 원자에서 분리되었기 때문에 결코 남남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두 광자 사이의 거리가 아무리 멀어져도 이들은 어디까지나 물리계의 한 부분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개의 광자가 하나의 실체를 이루고 있어서 하나의 광자를 관측했다는 것은 물리계의 한 부분을 관측한 것이고 그 결과가 같은 물리계 내의 다른 부분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양자 얽힘의 ‘특수상대성이론 위배’ 문제를 해결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한 입자 관측이 이의 쌍입자에게 ‘영향은 미치되 정보는 전달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고 한 명제는 정보를 실어 나르는 에너지(물질)에 한정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빛보다 빠르게 움직이더라도 정보를 옮기지 않는다면 특수상대성이론에 위배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특수상대성이론에 위배되는 듯한 현상이 발견될 때마다 물리학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해석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광자를 측정하는 행위가 다른 광자에 즉각적인 영향을 준다 해도 이들 사이에 교환되는 정보는 없으며, 따라서 특수상대성이론이 공표한 속도의 한계는 여전히 그 효력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두 광자의 스핀은 서로 연관되어 있지만 이들 사이에는 아무런 정보도 교환되지 않으므로 전통적인 인과율을 위배하지 않는 것입니다.

특수상대성이론의 ‘동시성의 상대성’ 개념으로 타협

유령 같은 양자 얽힘 현상에 대해 일부 물리학자들은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한 시간의 성질, 특히 ‘동시성’의 개념을 통해 타협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두 개의 사건이 한 관측자의 관점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해도 다른 곳의 다른 관측자가 볼 때는 동시가 아닙니다.

이 결과를 확률파동에 적용하면, 한 관측자가 볼 때 확률파동이 우주 전역에 걸쳐 동시에 붕괴했다 해도 그에 대하여 움직이고 있는 다른 관측자의 눈에는 각 지점마다 시간차를 두고 붕괴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움직이는 두 개의 전자를 관측할 때에도 어떤 관측자는 ‘왼쪽으로 움직이는 전자가 먼저 관측되었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운동 상태가 다른 관측자는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전자가 먼저 관측되었다’고 주장하는 상황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수상대성이론은 두 사람의 주장은 모두 허용하고 있습니다. 즉, 확률파동의 붕괴가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라 해도, 어떤 입자가 다른 한 입자에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결정할 만한 객관적인 기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확률파동의 붕괴가 어떤 특별한 관점(확률파동의 붕괴가 전 우주에 걸쳐 동시에 일어난 것으로 보이는 관점, 또는 두 개의 전자가 동시에 관측된 것으로 보이는 관점)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관점에 특별한 속성을 부여하는 것은 ‘모든 관점은 평등하다.’는 특수상대성이론의 대원칙에 정면 위배됩니다. 이 난처한 상황을 피해 가기 위해 여러 가지 미봉책이 제시되었지만 아직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찾지 못했습니다.

코펜하겐 해석의 설명은

그렇다면 양자역학의 표준해석인 코펜하겐 해석은 아스페의 실험결과인 양자 얽힘을 어떻게 설명할까요? 전통적인 양자역학에 의하면 우리가 관측을 시도하여 입자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입자의 확률파동은 즉각 변합니다. 관측 전에는 다양한 가능성이 파동의 형태로 공존하고 있다가 일단 측정이 이루어지면 파동함수가 순간적으로 변하면서 모든 가능성이 하나의 값(관측된 값)으로 수렴되는 것입니다.

대다수 물리학자들은 이 현상을 ‘확률파동의 붕괴’라고 부르며, 측정 전에 그 지점에서의 확률파동 값이 클수록 그 지점으로 붕괴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확률파동의 진폭이 큰 지점일수록 그곳에서 입자가 발견된 확률이 크다는 뜻입니다. 표준이론에 의하면 이 붕괴현상은 우주 전역에 걸쳐서 동시에 나타납니다. 입자의 위치가 알려지는 바로 그 순간에 다른 곳에서 입자가 발견될 확률은 0으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아스페의 실험에서 두 광자 S₁, S₂는 임의의 축에 대해 스핀이 같은 스핀(1 또는 -1)을 가질 것입니다. 중첩 원리에 의하면 S₁과 S₂는 모두 스핀 1의 확률파동과 스핀 -1의 확률파동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S₁의 스핀을 관측한 결과 어떤 축에 대하여 1로 측정되면 바로 그 순간에 S₁의 파동함수가 전 우주적으로 동시에 붕괴되면서 -1의 스핀을 가질 확률은 0으로 사라집니다.

이 붕괴현상은 전 우주에 걸쳐 일어나므로 S₂가 있는 곳에서도 S₁의 확률파동은 붕괴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영향을 받아서 S₂의 스핀이 -1인 확률파동도 같이 붕괴되어 0으로 사라집니다. 따라서 S₁과 S₂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S₂는 S₁으로부터 즉각적으로 영향을 받아 S₁과 동일한 스핀을 갖게 됩니다. 양자론의 표준해석은 광자 S₁의 영향이 S₂에게 즉각적으로(빛보다 빠르게) 전달되는 현상을 이런 식으로 설명합니다.

두 입자의 스핀이 반대방향을 갖게 연관되어 있는 경우, S₁의 스핀을 측정했더니 1로 나왔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온 우주에 펼쳐져 있는 S₁의 확률파동이 동시에 붕괴할 것입니다. S₁과 멀리 떨어져 있는 S₂는 이 상황을 즉각 감지하고 원래 태어난 대로 S₁과 반대방향의 스핀을 갖게 됩니다.

이 과정은 양자역학의 수학을 이용하여 매우 정확하게 서술할 수 있습니다. 확률파동이 붕괴되면서 나타나는 원거리 영향은 아스페의 실험에서 S₁과 S₂가 같은 스핀 값을 나타내는 횟수를 변화시킵니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표준해석은 이처럼 실험과 기가 막히게 일치하고 있지만 확률파동의 붕괴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이 나온 지 90년이 되었지만 아직 코펜하겐 해석의 핵심인 확률파동 붕괴의 구체적인 과정을 알아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양자역학이 예견하는 확률이 측정결과와 잘 일치하기 때문에 확률파동이 붕괴된다는 가정을 믿을 뿐입니다. 이 가정은 지금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인위적으로 도입된 개념이기 때문에, 양자역학의 수학이나 실험적인 방법으로 확률파동의 붕괴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앞에서 예를 든 전자상자와 스핀보존 사고실험에서처럼 지구에서 관측된 전자의 영향이 어떻게 빛이 200년 동안 가야하는 안드로메다은하까지 순간적으로 전달되는 것일까요?

그러다보니 최종 판단을 좀 더 유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없지 않습니다. 벨의 정리와 아스페 실험은 EPR의 국소적 실재성 가정을 부정한 것(국소성이나 실재성 둘 중 하나를 부정하거나 둘 다 부정하는 것), 달리 말하면 양자론과 국소적 숨은 변수가 양립할 수 없음을 밝힌 것입니다. 이것은 숨은 변수가 필요 없고, 양자론이 완전하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숨은 변수의 존재 가능성이 살아 있고, 결국 양자론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스페 실험을 비롯한 지금까지 행해진 어떠한 실험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loophole-free)' 완벽한 것은 없었다며 100% 완벽한 실험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결론은 조금 더 유보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신념과 다른 공간의 새로운 특성

하지만 현재로선 양자역학이 현상들을 워낙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양자론의 토대가 허물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물리학계는 보고 있습니다. 아스페 이후 보다 정교하고 확장된 다른 실험에서도 양자얽힘은 재확인되었고, 심지어 실용화 실험에서도 성공한 사례가 보고되었기 때문입니다. 약간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우리는 아스페의 실험이 밝힌 공간의 비국소성과 양자 얽힘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우주는 아인슈타인의 마음 속 우주와는 다르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우주는 ‘이 공간’에서 행한 일은 ‘저 공간’에 영향을 주지 않는 국소적인 우주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론이 아닌 실험데이터에 의해 우주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혁명적으로 바꾸었던 아인슈타인도 양자 얽힘을 ‘유령같은 원격작용’이라며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우주는 그의 신념과 달리 양자 얽힘이라는 공간의 고유한 특성을 갖고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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