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신사고와 포럼 지식공감. 두 단체는 개혁적이고 현실참여적인 부산지역 지식인들의 모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1994년 결성된 포럼 신사고가 구여권의 싱크탱크였다면 2012년 창립된 포럼 지식공감은 현 여권의 싱크탱크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 박형준 전 국회사무총장, 서병수 전 부산시장 등이 포럼 신사고 출신이다.
부산현안에 대한 진보적 대안을 모색해온 포럼 지식공감은 창립 이후 진보진영의 정권교체 성공과 2016년 4·13년 총선, 2018년 6·4지방선거 승리에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연스럽게 포럼 지식공감의 향후 행보에 시민의 관심이 모아진다.
지난 1일 포럼 지식공감 운영위원장인 차동욱 동의대 교수를 연구실과 캠퍼스 커피숍에서 만나 얘기를 나눴다.
-요즘 부산지역 진보적 지식인들의 모임인 ‘포럼 지식공감’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운영위원장으로서 그간 활동을 자평하신다면?
“9월 중순 운영위원장에 선출되어 아직은 자평할 만한 활동을 못했습니다. 이제 계획하는 단계입니다.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십시오.”
-포럼 지식공감은 2012년 창립 이후 진보진영의 정권 교체와 2016년 4·13년 총선, 2018년 6·4지방선거 승리를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들 3대 선거에서 포럼 지식공감의 역할을 간단히 설명해주십시오.
“선거과정에서 포럼 지식공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공약개발이었습니다. 포럼의 주요 구성원이 대학 교수이다 보니, 각자 자신의 전문 분야와 관련된 공약 개발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 부산지역 진보진영의 활동가들과 함께 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공유하고 분석, 대안을 모색하고 이슈화·공약화하는 데 힘썼습니다. 나아가 현장 활동가들을 양성하는 노력도 함께 기울였습니다.”
-최근 새로운 지방정부 출범 이후 포럼 지식공감 핵심 멤버들이 부산시 산하 기관장에 임명되는 등 논공행상에 깊숙이 개입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습니다. 운영위원장으로서 이에 대한 생각은?
“일단 ‘논공행상’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것에 대해서는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마치 전쟁에서 승리하여 전리품들을 챙긴다는 의미로 들립니다만,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 주민들에 의해 선출된 단체장들이 어떤 식으로 정부를 구성하고 자신의 공약들을 어떻게 이행해 갈 것인가에 대해 일반적인 오해가 있어서 그런 표현이 쓰인다고 봅니다.”
-관례적인 표현이라고 이해해주시지요.
“대통령제의 원조이자, 연방제 국가로 출발해 지구상 어느 국가보다도 지방분권이 잘 되어 있는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와 주(州)정부 혹은 지방정부의 중요한 부서장과 산하 기관장은 해당 선거 당선자의 선거캠프의 멤버로 구성됩니다. 이러한 제도를 ‘엽관제’라고 부르죠. ‘엽관제’가 매관매직(賣官賣職)으로 연결될 가능성 때문에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정부의 중요한 부서장이나 산하 기관장이 해당 선거 당선자의 선거캠프의 멤버로 구성되는 것은 제도의 본질입니다. 당연한 것이죠. 왜냐하면, 선출된 대통령이나 단체장은 자신이 내세운 공약을 이행할 의무가 있고, 그 공약들을 가장 잘 이해하고 이행할 의지와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바로 선거캠프의 구성원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통령 또는 단체장이 코드인사를 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제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무조건적인 시비걸기라고 봅니다. 제도의 본질을 외면하고 말입니다. 대통령이나 단체장이 임명한 부서장이나 기관장이 해당 부서나 기관의 장으로서 갖추어야 할 전문성 등의 자격이 전혀 없을 때에는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대통령이나 단체장과 가까운 관계라거나 선거캠프 혹은 싱크탱크 등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인사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것은 그야말로 전문성이 없는 비판이라고 봅니다.”
“포럼 지식공감 2018년 6·4 지방선거 과정에서 포럼 지식공감은 자체적으로 분야별 팀을 구성하여 공약을 개발했고, 오거돈 후보 캠프에서 이를 상당 부분 채택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공약들을 가장 잘 이해하고 이행할 능력이 있는 인물들을 추천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공약을 개발한 측에서 공약 이행 적임자를 추천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그런데 대상자들이 대학 교수들이다 보니 ‘교수들이 기관장까지 욕심내느냐’ 는 등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 아닌가 싶은데요?
“포럼 지식공감의 핵심 멤버 중 몇 분이 부산시 산하 기관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포럼 지식공감이라는 모임이 선거에서 승리하면 한 자리 하려는 '폴리페서'(polifessor,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수를 일컫는 조어. 학문 외에 정치적 명예를 쫒는 교수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들의 집단인가’ 하고 오해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현재 기관장으로 임명되신 분들은 대학에서 15년 이상 재직하고 정교수 직위에 있는 분들입니다. 대학을 휴직하고 기관장을 맡으면 상당한 수준의 연봉 삭감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첫째, 특히 지방자치단체 산하 기관장의 연봉은 일반인의 생각보다 높지 않으며, 둘째, 그 연봉보다 많은 대학 교수의 연봉도 생각처럼 높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해 현재 상무 이상의 직위에 있는 대학 동기들의 연봉이 제 연봉의 3~4배입니다. 이번에 기관장으로 임명된 포럼 지식공감 회원분들은 경제적으로 상당한 손해를 감수하며 봉사하겠다는 의지로 그 직을 맡은 것입니다. 굳이 ‘논공행상’이라는 시각에 맞춰 말씀드리자면, 현재 부산시 산하 기관장 직은 ‘상(賞)’으로 보기 힘들다는 것이죠.”
-출범 당시 권력을 감시하고 진보적 대안을 도출하는 포럼 지식공감이 정권이 바뀌면서 나침반을 잃은 듯하다는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지향점을 정립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운영위원장으로서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복안이 있으면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지식인이 현실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이 지식인의 의무라는 점에서는 대다수의 국민이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식인이 자신의 견해를 밝힐 때, 지식인은 무조건 비판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독재 내지는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사회의 언로가 노골적으로 또는 교묘하게 막혀 있을 때, 지식인들의 임무는 언로를 연다는 의미에서, 즉 권력에 대한 공개적인 이견(異見) 제시가 가능한 장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비판이 지식인의 주된 의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세계관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도록 만들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책들이 실현되도록 만드는 것은 지식인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봅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세력이 집권하게 되었다면, 그 세력이 추진하는 정책들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타당하고 당연한 것입니다.”
“포럼 지식공감은 2012년 문재인으로 대표되는 정치세력의 집권을 위해 달려왔고, 문재인 정부 그리고 오거돈 지방정부의 성공을 위해 매진할 것입니다. 물론 잘못되는 부분이 있다면 과감히 비판하고 잘못을 바로 잡도록 노력하겠지만, 어떤 정부가 들어서던 간에 지식인 집단은 무조건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서는 동의하기가 힘든 면이 있습니다.”
-향후 포럼 지식공감의 운영 방침과 향후 주요 행사 계획을 소개해주십시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의 이슈들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노력을 계속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방분권에 대한 진지한 철학이 제대로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12월 초순 포럼 지식공감이 중심이 되어 전국 각지의 지방분권을 위한 지식인 포럼들을 초대하여 균형발전과 혁신도시에 관한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재 부산의 여러 시민단체와 함께 시민대학 강좌를 운영하고 있고, 부산의 기초자치단체에서 주민들께 제공하는 주민특강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20여 년만의 지방정권 교체가 한 번의 행운으로 끝나지 않고, 부산 지역에 진보적인 세계관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부산 시민 분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재까지 포럼 지식공감은 50대 이상으로 접어든 386 세대에 의해 주도되어 온 면이 있으나 앞으로 30·40대 주도의 포럼 지식공감으로 거듭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지방정부인 오거돈 부산시장 체제가 들어선지 5개월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은 변화를 체감하지 못할뿐더러 기대감도 별로 크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아직 인사 구성이 제대로 짜이지 않은 탓이 아닌가 합니다. 당초 캠프 구성이 좀 복잡했는데 아직 화학적인 결합이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민과의 소통 차원에서 언론 프렌들리(언론 친화적) 자세도 중요합니다. 20여 년만의 지방정권 교체인 만큼 사명감을 갖고 긍정적인 변화와 개혁을 추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시민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한 만큼 시민의 기대를 이끌어내는 데 더 노력하기를 주문하고 싶습니다.”
-좀 이른 감은 있으나, 2020년 부산지역 총선을 전망해보신다면?
“어느 때보다 치열한 선거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 간의 맞대결이 될 것이고, 현재 한국 : 민주가 12 : 6인데, 21대 총선 결과는 민주당이 최소 절반 이상은 차지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전체 판세는 중앙정치, 다시 말하면 문재인 정부와 전체 민주당의 평가에 좌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총선은 부산시장과 구청장 등 지방자치단체장의 역할과 평가와는 별개일 것입니다.”
-정치학 박사 논문이 ‘민주화 과정에서 헌법재판소의 역할’이고 헌법재판소와 국회와의 관계를 분석한 논문도 쓰신 걸로 압니다. 2004년 이후 두 번의 대통령 탄핵심판 등 굵직한 사건을 통해 헌법재판소가 우리 정치와 역사의 전면에 나서기도 했는데,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헌법재판소가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과 국회를 무력화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일부의 시각에 대해 정치학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헌법재판소는 국회의 안티테제인가’ 논문에서 밝혔듯이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입법부와 동행하는 편입니다. 물론 권위주의 시대에 제정된 법률에 대해서는 위헌판결을 많이 내렸지만, 민주화 이후 제정된 법률에 위헌심판을 내린 것은 거의 없습니다. 대통령 탄핵 같은 초대형 사건에 대해서는, 헌재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중립적일 수 있습니다. 정파가 아니라 민의에 부합한 심판을 할 수 있는 것이죠.”
-최근 정치권은 지나친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의 본질인 대화와 타협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왜 이렇게 되었고, 이를 타개할 방법은 없을까요?
“현재 미국 정치권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의회 표결에서 크로스보팅도 없어지고, 중도 노선의 정치인도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진영논리 문제는 근본적으로 따지면 유권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유권자의 성향을 조사해보면, 비선거철에는 중도파가 많습니다. 하지만 선거 기간이 되면 중도파는 급격히 줄고 대신 양극단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늡니다. 선명성을 요구하는 유권자로 바뀌는 것입니다. 유권자의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도 당연히 선명성을 추구하고 따라서 양극단의 세력만 살아남게 됩니다. 실제로 보수진영 중 비교적 합리적인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던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전 경기지사가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자로서 현실정치 참여에 대한 소신은 무엇인가요?
“정치학 전공자로서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정치학 전공 교수들은 ‘폴리페서’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현실정치를 외면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역할, 그러니까 연구와 강의에 충실하면서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에 구조적인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개혁의 선봉에 서야 하는 사람이 교수들입니다. 학문을 한 교수들의 역할이죠.”
-차기 총선에 출마할 건가요?
“한 때는 출마를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았지만, 지금은 고민 중에 있습니다. 총선 출마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때는 저 나름대로의 사명감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좋은 정치인을 육성하는 것이 제 사명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많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교수님의 과거 정치적 행보 중 실수나 후회되는 것 혹은 오해받고 있는 사례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이런 저런 정치집단들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경솔하지 않았나 싶기는 하지만, 그 당시는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위의 다른 분들과 같이 한 정치행보였기 때문에, 지금 그 당시의 저의 판단과 행동을 실수라고 한다면, 그 당시 같이 했던 분들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어서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서울 출신으로 10년간 부산에 살면서 느낀 부산 혹은 부산시민에 대한 인상은 어떻습니까?
“부산은 어머니의 고향이자(마산 출생이시지만, 부산에서 자라셨습니다), 현재도 처가 식구들이 계셔서 제게는 제2의 고향입니다. 지금은 부산에서의 생활이 더 익숙해져 있습니다. 다만, 처의 직장이 서울이고 아이들도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저만 부산에 와 있고, 격주로 서울에 다녀오고 있기는 하지만, 아이들 다 크고 처가 퇴직하면 부산에서 같이 살자고 설득하고 있습니다.”
-인생관은 무엇인가요?
남을 즐겁게 해주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남이 즐거울 때 저도 즐겁습니다.
▷차동욱 교수는
▶1967년 서울생 ▶서울대 정치학사 ▶서울대 법학석사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 로스쿨 졸업 ▶미국 남가주대학 정치학 박사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연구교수 ▶서울대 사회과학원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 ▶인하대 민주주의와 헌정체제사업단 연구교수 ▶부산진구청장 인수위원장 ▶현 동의대 행정학과 교수 ▶포럼 지식공감 운영위원장
<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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