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의 정치학

노벨평화상의 정치학

조송원 승인 2018.05.15 00:00 의견 0

노벨평화상은 국제정치의 상징이기도 하다. 수상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러시아 대통령, 수상자 후보로 추천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미국 대통령 첫 수상자 시어도어 루스벨트,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왼쪽부터). 출처 : 위키피디아

지난 2일 루크 메서 등 공화당 하원의원 18명은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수상 후보로 추천하는 편지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 발송했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 등을 추천 이유로 들었다. 영국의 도박업체 ‘코럴’(Coral)은 트럼프와 김정은을 배당률 2/1로 올해의 노벨상 수상 예정자로 꼽았다. 이 배당률은 유엔난민기구(UNHCR)나 프란시스 교황보다 앞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정말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찬반양론을 들어보자. 존 페퍼¹⁾는 반대한다. 트럼프가 세계 독재자들과의 긴밀한 우정을 유지하며, 인권을 경멸하고, 무차별적 폭력을 사용하며, 국제기구를 혐오한다는 등등을 근거로 든다. 존 페퍼는 이런 트럼프에게 노벨상을 주면 그의 전반적인 외교정책에 확실한 정당성을 부여하게 될까 우려한다.

반면 정의길²⁾은 찬성한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노벨상을 받았다. 루스벨트의 수상에 세계 여론은 비웃었다. 그는 쿠바와 필리핀을 빼앗은 미국-스페인 전쟁의 열렬한 주창자였고, 필리핀의 민중반란을 잔인하게 진압하는 등 당시까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공격적인 대외팽창 정책을 추진했다. 루스벨트의 수상 공로는 러일전쟁 종결을 중재했다는 것뿐이다.

트럼프는 국내에서는 인종주의적이고 반다자주의 접근으로 비난 받는다. 하지만 대외정책에서는 선악 개념에 기초한 미국의 공격적인 이상주의에 회의를 보인다. 트럼프가 북한과 대타협에 나서려는 배경이자 이유이다. 하여튼 어떤 이유에서든 트럼프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에서의 대결과 분쟁을 공존과 협력으로 바꾸는 출구를 연다면, 루스벨트도 받은 노벨상을 트럼프라고 왜 못 받겠는가.

필자도 찬성한다.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소망사고(wishful thinking) 탓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자들의 이력을 따져보면,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정당성이 뒷받침된다. 레오니드 베르시드스키³⁾의 논의를 따라가 보자.

베르시드스키는 먼저 전제한다. 무자비한 독재자이든 대량 학살자이든 간에, 세상을 좀 더 안전한 곳을 만드는 특별한 행동을 한 사람은, 그 특별한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상찬賞讚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윈스턴 처칠을 예로 들어보자. 처질은 히틀러나 스탈린처럼 20세기 대량 학살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영국 식민지의 반군叛軍에게 초토화 전술을 펼쳤다. 1943년 벵골 기근(the Bengal famine)과 1945년 드레스덴 폭격(the bombing of Dresden)을 획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나 스탈린과는 달리 서구에서 역사적 비난은 모면하고 있다. 나치에 감연히 맞선 게 그의 공적이다. 그러나 처칠의 공과功過를 저울질하면, 공보다는 과가 훨씬 무겁다. 그래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도 무능했다. 러시아와 옛 소련 주변국들에 여러 가지 일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 선택으로 동서독은 통일을 하게 되었다. 이 공로는 고르바초프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한반도의 핵 갈등은 심각하다. 한반도 문제는 21세기에 해결해야 할 미완의 20세기 문제 중 가장 큰 것이다. 그러므로 새 천년에 들어 한반도 평화 협상과 필적한 만한 일은 없다.

“새 역사”와 “평화의 시대”의 출발이라고 김정은은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서구의 경제제재를 풀기 위한 레토릭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북한의 해커들은 세계에 걸친 사이버 공격에 연루되어 있다. 서구의 주요 인프라와 핵심 산업의 데이터를 훔치려 한다. 아버지나 할아버지처럼 김정은은 아직 무자비한 독재자이다. 그가 갑자기 독재자 처신을 그만두고, 예전에 다녔던 스위스 유명 사립학교 학생처럼 행동할 이유는 없다. 그가 권력을 잃고 살아가기는 힘들 것이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작은 로켓맨”이라고 조롱하다가 갑자기 정중한 어조로 바꿨다. 한반도 문제의 복잡성을 이해한 것 같지도 않다. 트럼프는 협상을 하다가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면 태도를 바꿀 수도 있다. 그는 이기기를 좋아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상대가 주지 않으면 돌변하여 화를 낸다.

한반도 평화협상을 할 두 사람 모두 미덥지 못하다. 그러나 협상 타결의 돌파구를 열 가능성이 있다면, 김정은이나 트럼프의 반대자들도 두 사람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된다. 만약에 두 사람이 실행 가능한 평화협상을 타결해 낸다면, 그들은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트럼프나 김정은이 일생 동안 착한 일을 한 유일한 일이 이 평화협상 타결뿐이라 하더라도 상관없다. 이 업적 하나만으로도 지금까지 해 온 비열한 말이나 행동을 벌충하기에 충분하다.

평화는 유리병처럼 쉬이 깨어진다. 평화는 지도자가 궁극적으로 성취해야 할 과업이다. 과거에 무슨 일을 했건, 평화를 성취한 사람이 영웅이다.

필자도 베르시드스키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영웅은 상으로 기릴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안다. 진정한 노벨상 수상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몫이라는 것을.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노벨상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양보하는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았다는 사실, 자긍심을 가질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노벨상은 트럼프에게, 김정은에게. 평화는 한반도로!

※1)존 페퍼(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트럼프에게 노벨평화상을?」, 『한겨레신문』, 2018년 3월 11일. 2)정의길, 「루스벨트가 받은 노벨상, 트럼프가 받을 노벨상」, 『한겨레신문』, 2018년 5월 8일. 3)Leonid Bershidsky(러시아 저널리스트,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Nobel Prize for Trump and Kim is not joke」, 『The Korea Herald』, 2018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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