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회담 관련 뉴스를 보도하는 미국 NBC News Today 프로그램. 출처 : NBC 방송 캡처
한 수행승이 찾아와 조주 선사禪師에게 물었다. “스님, 가장 절박한 곳이란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스님께서 꼭 가르쳐 주십시오.”
선禪에 있어서 ‘가장 절박한 곳’이란 해탈을 말함이다. 한시도 미룰 수 없으니, 부지런히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으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수행승은 지금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달라고 청한 것인데, 선사는 말없이 일어나 나가려 하였다. 수행승이 물었다.
“스님, 어딜 그렇게 급히 가십니까?”
“난 지금 소변이 급하다네. 생각해 보게나. 나는 이런 사소한 일도 내 자신이 직접 하는데 말일세.”¹⁾
현재까지 비핵화 방식에는 ‘리비아 모델’과 ‘우크라이나 모델’이 있다. 그러나 이 두 모델은 지금의 한반도·동북아 상황에 잘 들어맞지 않는 방식이다. 이를 넘어선 새로운 ‘한반도 모델’이 필요하다. 단편적으로나마 백악관이 거론하고 있는 ‘트럼프 모델’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리비아 모델은 강자가 약자에게 일방적으로 항복을 강요하는 우격다짐이지 협상이 아니다. ‘선 핵 포기, 후 보상’이 골자다. 발가벗고 무릎 꿇은 상대에게 누가 보상을 하겠는가. 경험칙도 이를 증명한다. 2003년 핵 포기를 선언한 리비아는 주요 핵 물질·시설을 미국으로 옮기는 등 22개월 만에 비핵화를 끝낸다. 그러나 2011년 초 리비아 내전이 발생하자 미국과 유럽연합은 반군 편에서 리비아를 공격한다. 과감하고 신속하게 비핵화를 했던 마아마르 카다피 대통령은 결국 그해 10월 무참하게 살해된다.
물론 미국은 비핵화 검증이 끝난 2006년 5월 리비아와 국교를 정상화하고, 이행과정에서부터 경제 제재를 해제하는 등 ‘과감한 단계적 해법’을 취했다. 그러므로 리비아 모델이 반드시 ‘선 핵 폐기, 후 보상’으로만 규정할 수 없기는 하다. 그렇지만 역사의 교훈을 새기는 후발주자들은, 만약 카다피가 핵무기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면, 강대국이 공격을 감행하지 못 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졸지에 세계 3위 핵보유국이 된 우크라이나 역시 1994년 비핵화에 합의한 뒤 1998년까지 핵무기의 러시아 이전과 핵 시설의 해체를 마쳤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도 2014년 친서방파와 친러시아파가 내전 상태에 들어간다. 러시아계 주민이 다수인 크림반도는 독립선언을 거쳐 러시아에 편입된다.
두 나라 모두 핵 폐기가 평화와 번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 배경에는 핵 폐기를 계기로 한 외세의 자의적인 개입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북한의 ‘핵무력’은 체제보전의 최후의 카드다. 이 마지막 보호 수단을 내놓을 단계이면, 북한도 원하는 것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기존 모델은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다.²⁾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슈퍼 매파’로 불린다. 무식할 정도로 일방적인 리비아 모델을 주장한다. 모든 핵무기를 해체해 미국으로 보낼 때까지 보상은 없다는 취지로 <에이비시>(ABC) 방송에서 말했다. 이에 대해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 조미(북-미) 대화가 진행될 때마다 볼튼과 같은 자들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던 과거사를 망각하고 사이비 우국지사의 말을 따른다면...”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2000년대 6자회담 시절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 부상의 지적은 지극히 온당하다. 북한 비핵화를 의심하는 외국 칼럼의 대부분은 ‘북한은 믿을 수 없다. 과거 비핵 협상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 구체적인 예가 KEDO와 6자회담(six-party talks)의 실패이다.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인 브루스 클링너³⁾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불가침과 비핵화라는 가치 있는 목표를 세운 것은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북한은 이전의 약속을 파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므로 북한이 진정으로 행동양식을 바꿀 때까지 남한과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와 군사적 억지력을 유지해야 한다.
칼럼니스트 겸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주필인 트루디 루빈⁴⁾도 마찬가지 주장을 한다. 6자회담에서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폐기한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말로 하면, 북한의 비핵화 언사는 하등 새로울 게 없다. 내가 인터뷰한 한반도 전문가 어느 누구도 김정은이 핵무기 전부를 포기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과연 북한이 핵 폐기 약속을 자의적·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일까? 사실 확인(fact check)이 필요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결코 북한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미국 쪽의 책임이 더 무겁다.
KEDO 프로세스의 실패는 미국에 의해 붕괴되었다는 사실은 이전의 칼럼⁵⁾에서 이미 밝혔으므로 6자회담 실패 전말을 살펴보고자 한다.
6자회담은 KEDO가 실질적으로 붕괴되고 나서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시기에 개시되었다. 그 동안에 북한은 NPT(Nuclea Nonproliferation Treaty·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했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북미관계의 근본적 개선에 거의 도달한 시점에서 좌절된 KEDO 외교의 실패에서 결정적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시기에 악의 축 하나로 지목된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영국과 미국이 시작한 전쟁에 의해 전복된 것을 북한은 목도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2005년 9월 19일의 6개국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하나의 새로운 키워드(key word)가 포함되었다.
한반도의 비핵화, 미국에 의한 안전 보증, 북미간의 주권 평등과 평화적 공존, 관계정상화 노력 등의 원칙적인 제 항목의 합의는 대체로 KEDO 프로세스의 합의와 공통된다. 새로운 요소라는 것은, 공동성명의 제5항에 기재된 성명의 실행방법에 관한 합의인데, 「약속 대 약속,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이라 불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반도의 비핵화, 전쟁을 도발하지 않는다는 안전의 보증, 관계정상화 등의 목표는, 설령 목표로서 합의되었다고 해도 상호불신이 해소되지 않은 현실에서 한달음에 실현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합의할 수 있는 조치를 서로 협의하여 하나씩 단계적으로 실시하여 목표에 다가간다는 방법론에 합의한 것이다.
실제로 합의 목표에 반하는 행동은 북미 쌍방에서 일으켰다. 미국 정부의 네오콘(neo-conservatives·신보수주의자들) 세력은, 9·19 성명과 충돌하는 형태로 북한의 자금을 동결하기 위한 금융제재를 실행하여, 북한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었다. 마카오 은행 방코델타아시아 사건이다.
북한 측도 다음해에 제1회 지하핵실험을 강행했다. 이처럼 성명의 목표에 반하는 양국의 행위를 지켜보면서도 6개국은 협의를 계속하고, 2007년 2월 초기단계 조치, 동년 10월 제2단계 조치와 「약속 대 약속, 행동 대 행동」 원칙에 의한 중간적 조치에 합의하고, 실행해 갔다. 그 결과 흑연로黑鉛爐를 중심으로 하는 북한 핵시설의 무능력화가 실행되어, 미의회조사국이 약 80%의 무능력화가 달성되었다고 평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6자회담 실패의 원인에 대하여 북한이 일방적으로 속였다는 주장은 방향이 틀렸다. 6자회담의 9·19합의는 목표를 그대로 실행하자는 합의가 아니고, 목표에 합의함과 동시에 목표를 향하여 단계적으로 취할 이행 프로세스에 합의한 점에 의의가 있는 것이다.
6자회담의 중요한 교훈은 「약속 대 약속, 행동 대 행동」 원칙의 유효성을 재확인했다는 점이다. 서로 약속하고 저쪽이 실행한 만큼 이쪽도 실행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행동이 없는데 비핵화만 선행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북한에 있어 비핵화 문제는 자국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과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미국은 상응한 행동도 하지 않고, 성급히 북한의 비핵화만을 한정하여 단계적 조치를 이행하라는 것은 곤란하다.⁶⁾
‘협력적 위협 감소’(CTR·Cooperative Threat Reduction)라는 게 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이후 15년 동안 구소련 지역에서 5만여 명의 핵무기 과학자가 직업을 전환했고, 수많은 대체산업 시설이 들어섰다. 핵시설을 해체하려면, 그곳에서 일했던 군인, 과학자, 노동자, 주민들에게 새로운 삶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미국은 칼을 보습으로 바꾸기 위해 구소련 지역에서만 16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러한 사업을 ‘협력적 위협 감소’라 한다.⁷⁾
북한의 핵문제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협력이다. ‘약속 대 약속,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이 중요하다. 안보위협의 유일한 억지 수단을 아무런 ‘행동’도 없이, ‘후 보상’이란 약속만으로 요구하면, 북한은 비핵화하겠다는, 말뿐인 약속으로 대응하는 게 합리적이다.
역사는 거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록 충동적이고 비지성적이지만 노련한 협상가이다. 많고 적음의 문제는 있겠지만, 얻기 위해서는 주는 법도 알 것이다. KEDO와 6자회담의 실패를 거울삼아, 다가오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과 미국, 양자가 만족해 할 만한 ‘트럼프 모델’이 나오길 기대한다.
※1)홍여운 엮음, 『강을 건넜으면 나룻배는 버리게나』(고려문화사, 1996), 80쪽. 2)김지석, 「비핵화 ‘한반도 모델’ 어떻게 해야 하나」, 『한겨레신문』, 2018년 5월 17일. 3)Bruce Klingner, 「Unlikely peace on Korean Peninsula」, 『The Korea Herald』, 2018년 5월 5-7일. 4)Trudy Rubin, 「Hold Trump's Nobel for now」, 『The Korea Herald』, 2018년 5월 14일. 5)졸고 <북-미 정상회담 성공의 걸림돌과 그 극복 방안 ㊥>, 2018년 5월 1일. 6)우메바야시 히로미치, 「朝鮮半島において國連憲章を具現せょ」, 『世界』, 2018년 4월호. 7)김연철(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협력으로 위협 감소」, 『한겨레신문』, 2018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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