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과 담배

복권과 담배

조송원 승인 2018.05.24 00:00 의견 0

티벳 동자승들. 출처 : 유튜브(티벳 자비송 영상음악)

몇 해 전 태국 남부에서의 일이다. 어느 이름난 주지승이 밀림 속 절에 새 법당을 짓고 있었다. 우기雨期의 안거 철이 되자, 그는 법당 짓는 일을 일체 중단하고 인부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며칠 뒤 한 방문객이 반쯤 짓다 만 건물을 보고는 주지승에게 법당이 언제쯤 완성될 것인가를 물었다. 그 주지승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법당은 이 자체로 완성된 것입니다.” 방문객이 이해할 수 없어 다시 물었다. “법당이 완성되었다니, 무슨 뜻이죠? 지붕도 없고, 문도 창문도 달여 있지 않고, 사방에 목재와 시멘트 자루가 널려 있는데, 이 상태로 마무리 지을 생각인가요? 혹시 어떻게 되신 거 아녜요? 법당이 완성되었다니요?”

늙은 주지승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한 것은 모두가 그 자체로 완성된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는 명상을 하러 자신의 거처로 사라졌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생각을 쉬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 세상의 일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¹⁾

내 한 친구는 ‘복권 중독자’이다. 한 해에 물경 1000만 원은 복권 구입에 사용한다. 매주 20만 원 정도를 투자(?)하니 계산이 얼추 1000만 원이 되는 셈이다. 당첨금으로 얼마를 회수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모르면 몰라도 친구 자신은 ‘복권 중독’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즐길 뿐.

그는 일용직 노동자다. 읍내 인력회사로 새벽에 나가 일이 걸려야 하루 일당을 벌 수 있다. 일당 12만 원에서 인력회사에 1만 원 떼어주고 11만 원을 받는다. 대개 한 달에 20일 남짓 일을 한다.

만만찮은 비난을 받는다. 그 돈만 모았어도 논 사고 밭 사고 가정 꾸렸을 것이라는 훈수도 빠뜨리지 않는다. 훈수 맛이 제 맛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하수가 상수 행마에 이런 저런 손가락질은 난센스다. 하물며 인생의 고수와 하수는 어떤 행위 하나로 일도양단一刀兩斷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몇 해 전 그가 깊은 속살을 내게 꺼내 보여준 적이 있다. 부모님 산소에 잔을 올리고 부산으로 차를 몰았단다. 김치까지 안살림을 도맡아준 여동생을 마지막으로 한 번 보고 싶어서였다. 초등학교 학력에 50이 넘도록 결혼도 하지 못했다. 찰가난으로 땅뙈기가 없어 남의 논밭을 빌려서 비닐하우스 고등 소채를 재배했다. 부도가 났다. 오두막집까지 차압을 당한 지경에 이르렀다. 폭음의 몇 날 밤을 보낸 후, 죽는 게 정답이라는 결론을 얻었던 것이다.

자살하는 게 대통령은 아니라도 국회의원 되기만큼 힘든 일이라고 그가 말했다. 그래도 오빠를 걱정해주고 믿어주는 여동생에게 자살이란 말은 차마 꺼낼 수 없었다. 활로를 찾은 게 인력시장이었다. 농촌 인구, 특히 젊은이들이 급감하자 대도시에만 있던 인력시장이 고향 읍내에도 생겼다. 그는 아무 밑천 필요 없이 몸뚱아리 근력 하나만 팔아도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고 했다. 오로지 목줄은 땅 파는 데 걸려 있다는 관념을 부모에게 물려받았다. 고지식한 그는 인력시장을 안 게 인생의 전환점, 곧 세상에 대한 개안開眼이었다고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복권 중독자에게 훈수하는 또 한 친구가 있다. 그는 대학을 나왔고, 결혼할 때 아버지가 집도 사줬다. 대기업에 근무했다. 아들은 공무원이다. 그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5년이나 준비한 끝에 시험에 합격했다.

셋이서 막걸리를 마실 때가 있다. 2만~3만 원 술값이 나온다. 세 번에 두 번은 인력시장에서 번 돈으로 치른다. 복권 중독자가 우겨서 내는 것이다. 나머지 한 번은? 내가 낸다.

친구가 복권에 중독된 때는 인력시장에서 일자리를 확실히 꿰차, 생활이 안정될 때부터인 것으로 짐작한다. 밥 잘 먹고 편한 잠이 보장되는 것만으로 인생은 꾸려지지 않는다. 희망이 필요하다. 삶에 윤기가 절실하다. 친구는 아마 희망과 삶의 윤기로 자신의 능력 범위 내에서 찾은 것이 복권이었다고 추정한다.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부도 날 무렵 담배 값이 궁해 끊었다가 다시는 잇지 않았다고 했다. 술과 술집의 분粉 냄새에 홀리지 않는 그가 대견스럽다. 가까운 데서 삶의 의지가지를 찾은 그가 차라리 부럽다.

나는 ‘담배 중독자’이다. 글을 읽을 때 가장 즐겁고, 글을 쓸 때 가장 고통스럽다. 소설가 박범신의 가정사家庭事를 읽은 적이 있다. 아들이 연예인이 되고 싶다며 아버지에게 도와 달라고 했다. 박범신은 강력히 단칼에 거절했다. 오랫동안 부자父子가 진로문제로 티격태격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결연한 태도로 연예계로 진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버지가 반색했다. 그러나 아들이 대신에 작가가 되겠다고 하자, 박범신은 화들짝 놀라며 제발 작가의 길을 포기해라, 그러면 연예계 진출을 말리지 않겠다고 했단다. 글쓰기의 지독한 고통을 소설가 박범신이 자식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래도 삭신을 제대로 운신할 수 있고, 제정신이 남아있을 때까지는 쓸 것이다. 왜냐고? ‘밥값’ 때문이다. 생활비를 말하는 게 아니다. 글이 돈이 되는 시대가 아니다. 빚쟁이가 되고 싶지 않아서이다. 책을 읽는 즐거움도 저자의 지적 수고에 빚지는 일이다. 밥 한 톨, 옷가지 하나, 모두 남의 노동에 빚진다.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별 갚은 게 없다. 애옥살이가 어떻든 간에 얼마만큼은 잘 먹고 잘 입고 책 읽으며 산다. 너무 염치없는 일 아닌가!

대충 말해 한 사람의 구성체는 질質과 문紋이다. 곧 바탕과 무늬(꾸밈)이다. 내용과 형식이다. 공자는 바탕과 무늬가 잘 어울려야만 비로소 군자라고 했다. 바탕이 무늬를 누르면 야인野人, 곧 촌놈이라고 했다.²⁾ 그래, 나는 기꺼이 촌놈이다. 무늬까지 갖추면 더 바랄 게 없지만, 가진 게 적은 사람이 바탕에만 충실하기도 버겁다.

역량도 기량도 부족해, 글을 쓸 때 생각의 가리사니를 잡을 수 없어 고통스럽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의지간 한 채 있다. 담배 한 개비! 맛은 모른다. 그러나 한 실마리 한 실마리 풀어나가는 데 요긴하다. 폐에 펑크가 나는 일, 다음의 문제일 뿐이다.

글을 읽다가 무릎을 칠 정도로 ‘아하 체험(Aha experience)’을 하는 경우가 있다. 걷다가 얽힌 생각이 풀리며 섬광 같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있다. 즐겁다. 인가 받고 싶다. 나누고 싶다. 주위를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외롭다. 담배 한 개비 느긋이 피운다. 유일한 낙이다. 담배 중독자에게 담배는, 유일한 삶의 윤기이다.

복권 중독자가 복권을 사지 않고, 담배 중독자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면, 그건 아마 ‘삶의 윤기’를 더 나은 데서 마련한 증좌일 것이다.

※1)아잔 브라흐마/류시화 옮김,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이레, 2008), 33~34쪽. 2)『논어』 「옹야편」.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