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나 한 잔 들고 가게(끽다거·喫茶去)
어느 날 아침, 조주 선사는 두 손님을 맞이하였다. 그 중 한 사람에게 선사가 물었다. “예전에 여기 와본 적이 있는가?” 손님이 대답했다. “예, 있습니다.” 그러자 선사가 말했다. “그럼 차나 한 잔 들고 가게.”
선사는 다른 사람에게도 물었다. “자네도 예전에 여기 와본 일이 있는가?”
“아닙니다. 저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러자 선사는 그에게도 말했다.
“그럼 차나 한 잔 들고 가게.”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주지승이 의아해서 물어보았다. “예전에 와본 적이 있다는 사람에게도 차 한 잔을 권하시더니, 처음 왔다는 사람에게도 역시 차 한 잔을 권하시니 무슨 뜻이십니까?” 그러자 선사가 그를 불렀다. “여보게 주지!” “예.” 주지가 대답하자, 선사가 말했다. “자네도 차나 한 잔 들고 가게.”¹⁾
세계 축구팬들은 4년마다 흥분한다. 지금 ‘2018 러시아 월드컵’도 축구팬들의 열기로 지구촌을 달구고 있다. 이들에 못지않게 이 대회에 관심을 갖고 참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제학자를 비롯한 일단의 연구자들이다. 이들의 목적은 이 경기가 고용주와 경제에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게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올해 월드컵으로 희생되는 생산 시간을 계산하기 위하여, 근무 시간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로 가정하고, 또한 각 나라 노동자들의 50%가 월드컵 경기를 보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고 가정한다. 이 가정 하에서 러시아 월드컵 첫 두 주일 동안 세계의 GDP가 총 145억 달러 손실을 볼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아마 직관과는 반대로, 축구 경기를 봄으로써 실제로는 노동 생산성을 높일 수도 있다.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경기 시작 전 1시간과 경기 후 3시간까지 경기를 보는 축구팬들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다른 연구는 사람들의 행복이 증진되면 노동 생산성도 10~12% 향상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경기장에서 좋은 날은 사무실에서도 좋은 날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함정이 있다. 자기 팀이 지는 경기를 볼 때의 부정적 효과가 자기 팀이 이기는 경기를 볼 때의 행복 증진 효과의 2배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월드컵에 대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위의 특징들을 기준선으로 사용하여, 각 경기의 예상된 결과(영국 도박업체의 확률을 기준으로 함)가 노동자들의 생산성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를 계산했다. 프랑스-페루전戰을 보자. 이 경기는 목요일(지난 21일) 오후 2시(프랑스 시간)로 잡혀 있다. 이는 프랑스 노동자들이 경기 1시간 전과 경기 후 1시간이 근무시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가 이 경기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으므로, 연구자들은 그날 노동 생산성이 4.4% 높아질 것이라고 계산한다. 이는 GNP의 3억5천4백만 달러 증가이다. 그러나 이 증가분은 경기 2시간 동안의 손실분 20억 달러를 보충하는 데 훨씬 못 미친다. 만약 프랑스가 진다면, 생산성에 미치는 타격은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브라질의 경우도 우려스럽다. 세르비아와 코스타리카와의 두 경기는 아주 비싸게 치일 것 같다. 두 경기가 근무일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브라질은 강력한 우승 후보국이지만, 이 두 경기의 승리로 증가된 생산성은 노동시간 손실을 벌충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반면, 예상치 못한 패배라도 하게 되면, 거의 재앙 수준일 것이다. 브라질이 코스타리카에 진다면, 생산성은 14.4% 감소할 것이다. 이 두 경기가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할 것 같으므로, 어떤 조처를 취해야 할까?
브라질 정부는 한 가지 방법을 고안해 냈다. 자국 팀의 경기가 있는 날은 공무원들에게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월드컵 예선전 동안에 대부분의 정부 기관들은 직원들에게 오후에 경기가 있을 때는 조기 퇴근 할 수 있도록 하고, 아침에 경기가 있을 때는 늦게 출근하도록 한다. 적어도 월드컵이 미치는 경제 현실을 인정한 접근방법이다.
축구에 열광적인 브라질 외의 나라에서는 이 같은 조처를 취할 것 같지 않다. 그러므로 월드컵에 어떻게 대처할까,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고용주의 몫이다. 스포츠가 행복과 생산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안다고 할 때, 고용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세 가지 전략이 있다.
하나는 이 모든 사실을 그냥 무시하고 직원들이 평상시처럼 행동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협상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경기를 볼 수 있도록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게 해 준다. 그 대가로 어떤 방식으로든 손실 시간을 벌충하도록 한다. 이 두 가지 전략은 월드컵이 근무일에 끼치는 방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방법들은 ‘잃어버린 기회’일 수도 있다.
세 번째 전략은 덴마크의 축구 전설 요한 크루이프에게서 단서를 얻은 것이다. 크루이프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이다”라고 말했다. 이 정신에 따라, 왜 사무실에 TV를 켜놓고 직원들을 불러 함께 보자고 하지 않는가? 사실, 효과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대처방법을 참여를 증진시키고, 공동체 정신을 함양하며, 장기적인 호의를 쌓을 기회로 생각하라.
세 번째 전략의 이익은 노동시간 손실보다 정량화하기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축구, 나아가 모든 스포츠의 가장 큰 만족감도 만져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월드컵의 진정한 비용과 손실도 돈으로서 측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²⁾
27일 밤 11시에 시작한 러시아 월드컵 예선 3차전에서 우리나라가 독일을 2-0으로 이겼다. 비록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세계 1위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잡은 것이다. 어쩌다가 친구 몇이 점심 밥자리에 모였다. A가 독일전의 짜릿한 골과 환호에 대해 떠들썩하게 설명했다. 밤잠 안 잔 덕을 톡톡히 보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자 ‘앞날 자서 뒷날 일어나기’를 철칙으로 삼는 B가 한심하다는 듯 비아냥거렸다.
“축구에서 얻는 쾌락이 제때 자지 못해 생활리듬을 깨뜨릴 만큼 중요하냐? 그 기쁨은 찰나적이다. 자식, 봐라. 못 자서 아직까지 비실대고 있으면서!” 이 말에 A가 되받아쳤다. “너는 인생의 기쁨 중 하나를 모르고 사는 셈이다. 이 꽁생원아!” 이렇게 A와 B가 제법 오랫동안 티격태격했다. 그러자 한참이나 멀뚱히 지켜만 보던 C가 둘 다 못 봐 주겠다는 듯 일갈했다. “축구든 생활리듬이든 그게 무슨 대수냐? 그냥 생겨먹은 대로 사는 거지.”
조주 선사라면 어떻게 판정할까? A에게도 B에게도, 그리고 C에게도 ‘차나 한 잔 들고 가게’ 하리라. 자신의 ‘멋’대로, ‘뜻’대로 살아가는 일상, 그 평상심平常心이 도道이려니.
※1)홍여운 엮음, 『강을 건넜으면 나룻배는 버리게나』(고려문화사, 1996), 20쪽. 2)모드 라방키Maude Lavanchy(IMD 경영대학원 연구원)/윌렘 스밋Willem Smit(아시아경영대학원 부교수), 「How expensive is the World Cup?」, 『The Korea Herald』, 2018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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