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이냐, 혁명이냐?
무릇 만물은 평정을 얻지 못하면 소리를 내게 된다. 초목은 소리가 없지만, 바람이 흔들어 소리를 내고, 물은 소리가 없지만, 바람이 움직여 소리를 낸다. 솟구치는 것은 부딪혔기 때문이고, 세차게 흐르는 것은 막았기 때문이고, 끓어오르는 것은 불로 데웠기 때문이다. 쇠나 돌은 소리가 없지만, 두드리면 소리를 낸다.
사람이 말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 부득이한 일이 있은 뒤에야 말을 하게 된다. 노래를 하는 것은 생각이 있기 때문이고, 우는 것은 회포가 있기 때문이며, 무릇 입에서 나와 소리가 되는 것은 모두 불편한 것이 있기 때문이리라.
大凡物不得其平則鳴 草木之無聲 風撓之鳴 水之無聲 風蕩之鳴 其躍也或激之 其趨也或梗之 其沸也或炙之 金石之無聲 或擊之鳴
人之於言也亦然 有不得已者而後言 其謌也有思 其哭也有懷 凡出乎口而爲聲者 其皆有弗平者乎¹⁾
#1.총비용 31조원, 총편익 6조6천억원. 비용 대비 편익비율(B/C) 0.21.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강행하면서 명분으로 앞세운 홍수피해 예방효과는 0원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감사원 남궁기정 국토해양감사국장은 “대통령의 직무행위는 직무 감찰 대상이 아니고, 대통령의 위법사항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감사에) 협조 안 했다는 이유로 고발조치 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비서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맛에 따라 반복되는 4대강 사업에 대한 정치적 감사는 중지되어야 할 것”이라고 반박 입장문을 냈다.
#2.특수활동비(특활비)의 입법 취지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이에 준하는 활동에만 국한해 사용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영수증 제출도 필요 없는 특활비를 국회가 파행할 때도 ‘용돈’처럼 받아썼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2011년 발트3국 순방에 약 7200만원을 썼다. 영수증 증빙이 필요 없어 용처를 알 수 없다. 교섭단체 대표는 매달 6천만 원을 챙겼고, 상임위원장과 특별위원장은 다달이 600만원을 받았다. 의원들은 매달 50만원을 지급 받았다.
그러나 여야는 사용내역 투명공개 등 제도개선 의사만 밝힐 뿐 국회 특활비 폐지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만이 “국회가 국가정보원이나 경찰처럼 기밀을 요하는 수사 활동을 하는 곳도 아니다”며 국회 특활비 폐지를 핵심으로 한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3.‘경제 검찰’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직업소개소’ 역할까지 했다. 고위 간부 수십 명의 ‘재취업 리스트’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대기업에 취업 알선을 했다. 공무원과 기업의 유착을 차단하려는 공직자윤리법이 있다. ‘퇴직 5년 전’까지 업무 관련성이 있는 기업에 재취업을 할 수 없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 취업제한 규정을 피하려고 정년을 앞둔 간부를 기업 업무에서 미리 빼주는 ‘경력 세탁’까지 해준 정황이 드러났다. 기업 고문 등의 자리를 얻은 퇴직자들은 1억 원 안팎의 연봉에 추가로 법인카드를 받았다. 일부는 ‘책상과 의자’가 아예 없거나 특별한 업무도 없었다고 한다. 공정위는 기업에서 2년 정도 근무한 ‘선배 퇴직자’의 재계약을 ‘승인’하거나, 내부 인사 적체가 심한 해에는 대체할 ‘후배 퇴직자’을 ‘통보’하는 식으로 자리를 대물림한 것으로 알려졌다.
#4.항공재벌들이 요지경이다. 대한항공은 총수 일가의 갑질·밀수·횡령 등을 폭로한 ‘대한항공 직원연대’ 직원들을 색출해 보복성 인사를 단행했다. 제주와 부산 등으로 전보 조치한 것이다. 새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서이다. 아시아나항공도 갑질과 몰염치에서 대한항공과 용호상박龍虎相搏이다. 기내식 대란의 근본 원인은 박삼구 회장의 경영실패에 있다. 자신의 경영 실패로 매각한 금호타이어 재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업체를 무리하게 변경한 것이 기내식 대란의 화근이다. 이 문제점에 대해 박 회장은 “오해”라고 부인했다.
이 와중에 전업주부인 딸을 계열사 상무로 앉혔다. 그리고는 “인생 공부, 경영 공부를 시키려는 것”이라며 “예쁘게 봐 달라”고 했다. 밉다니까 업어 달란다고 의식 상태가 의심스럽다. 반시대적 족벌경영의 축도縮圖다.
#5.2015년 3월 30일,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하는 정부·여당의 행태를 비판하는 집회가 청와대 근처에서 열렸다. 당시 10대였던 김건우(22) 씨도 집회에 참석했다.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을 둘러싸고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다. 경찰에 항의하다 멱살을 잡힌 김 씨는 이 과정에서 경찰을 쓰러뜨려 연행됐다. 검찰은 당시 미성년자인 김 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검찰은 2년6개월이 지난 지난해에 김 씨를 상해·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입대한 김 씨는 휴가를 나와서야 기소된 사실을 알게 됐다. 제대 뒤 법정에 섰다. 서울중앙지법은 무죄를 선고했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는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가 아니면 완전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 등에 비춰볼 때 경찰의 봉쇄행위는 그 자체로 위법하다”며 이에 저항한 김 씨의 행동이 무죄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검찰은 무죄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김 씨를 변호한 서채완 변호사는 “검찰이 특별한 이유 없이 2년이 지나 늑장 기소를 한 것도 문제인데, 항소까지 해 당사자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²⁾
#6.“‘가슴 좀 풀어봐 봐. 가슴 좀 풀어라 ××야’라며 욕설과 함께 탈의를 요구했다.” 서울의대 한 교수의 목격담이다. 2015년 12월 24일 새벽 룸살롱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여성 종업원을 불러 벌인 술자리에서의 장면이다. 가슴을 보고 싶어 한 사람은 누구인가? 강대희(55) 서울대 총장 최종후보자이다. 교수·학생·교직원으로 이뤄진 총장추천위원회(총추위)는 총장 후보자들을 1차적으로 평가해 3명을 추린다. 이후 법인 이사 15명이 세 후보자를 면접하고 문제점을 검토한 뒤 1인1표로 투표해 과반 득표를 한 후보가 최종후보자가 된다. 후보 검증을 맡은 이사회는 성희롱 등 논란을 인지하고도 강 후보자를 최종후보자로 뽑은 것으로 드러났다. 단순히 ‘부실 검증’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다 그 밥에 그 나물이란 뜻이 아니겠는가.
#7.“비구가 아니면 승려가 아닌데 하물며 교단 최고 행정책임자로는 가당치 않다.” 설조 스님이 ‘설정 총무원장 사퇴’를 주장하며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 설조 스님은 “1944년생인 설정 스님이 1961년 통도사에서 비구계를 받았다고 하는데, 통도사에선 20살 이상만 비구계를 줬으니 비구계를 받을 수 없었고, 그 이후에도 비구계를 받은 사실이 없어 ‘비구’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설조 스님은 “단식을 시작한 뒤 총무원에 호법부장 진우 스님이 찾아와 회유와 협박을 했다”고도 밝혔다. ‘단식을 중단하고 법주사로 내려가면 대종사와 원로로 예우할 텐데, 단식을 계속하면 스님의 비리를 호법부에서 조사하게 하라는 얘기들이 나온다’고 했다는 것이다. 조계종적폐청산시민연대는 5일 저녁 7시와 7일 오후 5시 조계사 앞에서 촛불집회를 연다.³⁾
위의 7가지 사례는 모두 촛불혁명으로 햇볕에 드러났을 뿐이다. 보이지 않았다고 존재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만 눈과 귀를 가렸을 뿐이다. 촛불이 그 가리개를 치웠을 뿐, 제거하지는 못했다. 촛불혁명이 미완성인 이유이고, 아직 촛불을 끌 때가 아니라는 증좌이다.
혁명, 그것은 ‘위로부터’ 강제될 수 없다. ‘개혁’이 ‘위로부터’ 주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혁명은 필연적으로 ‘아래로부터’ 강제되는 것이다. 개혁은 사회의 기본 구조를 흔들지 않으며, 오히려 지배적인 사회 범주들의 지속적인 이익을 위해 기존의 구조를 보듬는다. 또한 개혁은 시간적으로 길게 펼쳐진 혁명이 아니며, 개혁과 혁명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그 내용을 통해 구별된다.
개혁이냐 아니면 혁명이냐? 여기서 문제는 동일한 결과를 이끄는 더 빠른 길이냐, 더 느린 길이냐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의 창설이냐 아니면 구사회의 피상적인 수정이냐 사이에서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⁴⁾
그러므로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노력에서는 혁명을 현실적인 정치적 대안의 목록에서 배제할 수가 없다. 혁명은 과거와 돌이킬 수 없는 단절을 의미한다. 과거의 적폐세력은 숨을 죽이고 있을 뿐 청산은 요원하다. 얼마지 않아 ‘개량 담론’으로 무장한 촛불혁명 저항 세력들이 활개를 칠지도 모른다. 가슴속에 촛불의 쌍심지를 더욱 돋우고 있어야 할 이유이다.
※1)한퇴지韓退之,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 2)김민경, 「‘검찰의 몽니’」, 『한겨레신문』, 2018년 7월 4일. 3)조현, 「“비구계 받은 적 없는 설정, ‘종단 최고 지도자’ 자격 없지요」, 『한겨레신문』, 2018년 7월 5일. 4)알베르 소불/최갑수 역, 『프랑스혁명사』(교양인, 2018), 7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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