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 부동산’은 누구의 것인가? 대법원전원합의체는 타인 이름으로 소유권 등기를 한 차명 부동산도 실소유자가 나중에 되찾을 수 있다고 판결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등 대법관 9명(다수의견)은 투명한 부동산거래를 위한 명의신탁 금지 필요성보다 실제 소유자의 재산권을 더 중요한 가치로 판단한 것이다.
반면 김선수 대법관 등 4명은 “판례로 유효성이 인정되기 시작한 부동산 명의신탁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부끄러운 법적 유산으로 이를 근절하기 위한 사법적 결단이 필요하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은 “부동산 명의신탁을 반사회적 행위로 보고 부동산실명제법이 제정됐는데도 대법원이 계속해서 명의신탁자의 권리행사를 받아들여 명의신탁이 횡행하고 있다”며 다수의견을 비판했다.*
차명 부동산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국민정서법’은 토를 달 수도 있다. 재산권보다는 거래의 투명성을 저해하는 반사회적 행위에 방점을 찍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갑론을박이 이어질 것이나 이 문제는 일단 일단락 지어졌다.
갑론을박 중인 시무時務가 있다. 바로 시대적 요구인 검찰개혁이다. 촛불시민의 최우선 개혁과제이다. 구체적으로는 신속처리대상 안건에 올라온 검경수사권 조정이다. 그러나 녹록치 않은 숙제이다. 차명 부동산처럼 법원이 판단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권 강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세지고 있다. 그 중 단연 압권은 경찰에게 ‘1차적 수사종결권’을 주면, 과거 국정원의 댓글조작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최근 버닝썬 사건 등이 모두 묻혔을 것이고, 경찰국가·경찰공화국·경찰사법으로 갈 수 있으며, 그 폐해는 시민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때맞춰 정보경찰의 폐해가 검찰발로 잇따라 터져 나오고 두 명의 전직 경찰청장에 등 네 명의 전·현직 고위직 경찰관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기도 했다.
검찰은? ‘다중 권력’의 해악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검찰의 노무현 전 대통령, 정연주 전 케이비에스(KBS) 사장, 피디(PD) 수첩, 김학의 사건 수사에서 남김없이 드러났다. 양쪽의 실상을 캐고 보면, 검찰과 경찰의 수사는 조금 낫고 못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엇비슷해서 견줘볼 필요도 없을 만큼 형편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마디로 도긴개긴이다. 시민들의 인식도 다르지 않다. 둘 다 나쁘거나 둘 다 믿지 못하겠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지난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검찰을 신뢰한다는 응답이 2.0%, 경찰을 신뢰한다는 것은 2.7%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수사권 조정 문제는 어떻게 풀면 좋을까? 이렇게 사안이 복잡하고 이해가 충돌하면 원칙으로 돌아가면 된다. 바로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는 권력을 분산시키며 상호 견제를 통해 균형을 잡자는 거다. 효율성으로만 친다면, 자기가 잡아다 자기가 재판하는 ‘사또재판’이 최고다. 지금 검찰은 사또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의 검찰은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수사권,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독점 영장청구권, 독점 기소권, 기소 재량권, 형 집행권 등 법률에 정해진 권한만도 막강한 데다, 범죄예방·정보수집 등 법률로 정해지지 않은 활동까지 벌이고 있다. 권한은 막강하지만 검찰에 대한 견제 장치는 없다.****
이런 검찰이 어떻게 탄생했을까? 검찰의 역사는 군부독재 시기와 그 이후의 시기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일관되게 진행되어왔다. 그것은 수사와 재판의 지배자로서의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 목표는 수사지휘권을 통해 경찰을 지배하고 수사결과를 통해 재판을 지배하는 것으로서 일제 강점기의 검찰 중심 형사사법 모델이다. 검찰은 군부독재 시절에 일제 강점기의 검찰사법을 확보하는 걸 목표로 했고 이를 달성했다. 물론 정치권력의 지원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기는 하지만 검찰 스스로도 형사절차의 지배자가 되려고 했다. 곧 검찰의 바람직한 모습이 과거에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세계에 유례없는 막강한 권한을 한손에 틀어진 검찰은 공익의 대변자 역할에 충실했을까? ‘권력의 충견’ 노릇에 열중했을 뿐이다. 박정희·전두환의 시대에 검찰은 권력기관 서열 3위에 불과했다. 중앙정보부(혹은 국가안전기획부)와 경찰에 눌려 지내던 검찰이 집권세력의 총아로 등장한 계기가 범죄와의 전쟁이다. 정권은 ‘검찰의 맛’을 알았고, 검찰은 ‘권력의 묘미’를 깨달았다.
그 뒤로 누대에 걸쳐 정권은 ‘인사권’을 지렛대로 검찰을 맘껏 부리고 써먹었다. 그 첫째 수단이 검찰총장 인사다. 정권은 인사를 통해 검찰을 한 줄에 꿴 듯 장악했다. 좋은 머리에 출세욕 강한 검사들은 알아서 머리를 조아렸다. 검찰이 중립성을 잃었다고 평가받는 사건들엔 어김없이 인사 혜택을 받았거나, 보상을 갈구하는 검사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검찰의 막강한 법적 권한은 국민들을 위한 게 아니라 오로지 권력자를 위해서이다. 수사와 기소 권한을 검찰에 몰아놓으면 권력자가 형사 절차를 통해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할 때 효율적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봤듯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검찰을 통해 정치적 반대자들을 한방에 재판까지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면 권력자는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수사기관과 기소기관에 모두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더 번거롭고 어렵다. 그래서 수사와 기소 권한은 분리해야 한다.*******
검찰의 권한은 선거와 같은 ‘민주주의 원리’에서 나오지 않았다. 사법시험과 행정권이라는 ‘관료제의 원리’에서 나왔다. 국민의 합의에서 나온 정당한 권한이 아니다. 권력자의 편의에서 나온 모순이 누적된 방편적인 권한일 뿐이다. 검찰의 다중의 권력은 떼어내어 각자 제자리로 돌려주는 작업이 검찰개혁이다.
그 개혁의 첫걸음이 검경수사권 조정이다. 자치경찰이나 정보경찰 개혁도 필요하다. 그러나 핵심은 검찰의 독점적 권한을 조금이라도 덜어내자는 데 있다. 검찰에게 집중된 권한을 일부라도 경찰에 넘기고 상호 협력관계에서 견제와 균형을 잡아보자는 것이다.
‘경찰공화국’은 기우일 뿐이다.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없더라도 경찰이 수사한 결과는 모두 검찰에 송치한다. 그러므로 검찰이 경찰 수사를 통제하는 것은 예전과 달라지지 않는다. 수사지휘권 대신 보완수사 요구권과 시정조치권을 새롭게 얻기에 별반 달라질 것도 없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지명됐다. 청와대는 인사 배경으로 그의 ‘강직함’과 ‘국민적 신망’을 꼽으며, ‘검찰개혁’과 ‘조직쇄신’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직을 사랑할 뿐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를 상징하는 어록에 신경이 쓰인다. 자신이 몸담은 조직을 사랑하는 것이야 차라리 상찬 받을 일이지만, 애집愛執이 대사를 그르칠 수도 있는 법이다.
검찰이 어떤 조직인가? ‘조직에 해가 되면 수장도 찍어내는 조직 논리’로 철저히 무장한, 막강한 조직이기주의 집단이 아닌가. 윤석열 지검장은 국정농단·사법농단 수사를 지휘하며 신뢰를 쌓아온 ‘국민검사’이다. 부디 시대의 요구인 검찰개혁도 강단 있게 완수하여 ‘국민총장’으로 더욱 존경받기를 고대한다.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 근본적인 답은 간명하다.
*최우리, 「‘명의신탁자 재산권’ 다시 손들어준 대법」, 『한겨레신문』, 2019년 6월 21일.**윤동호(국민대 법과대학 교수), 「경찰국가, 경찰공화국은 없다」, 『한겨레신문』, 2019년 6월 6일.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 「‘민주주의’ 검경 수사권 조정의 핵심」, 『경향신문』, 2019년 5월 17일. ****김희수 외, 『검찰공화국, 대한민국』(삼인, 2011), 134~135쪽. *****문재인·김인회,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오월의봄, 2011), 55쪽. ******강희철(법조팀 선임기자), 「총장 인선 똑같은데 ‘검찰 중립’ 가능할까」, 『한겨레신문』, 2019년 6월 15일. *******김규원(전국 에디터), 「검찰의 직접 수사를 금지해야 하는 이유」, 『한겨레신문』, 2019년 6월 20일.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