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타와 영양은 일종의 공진화 관계이다. 치타는 영양을 사냥하기 위하여 빠른 다리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치타의 심장이 빠른 다리에 상응하는 기능을 갖지 않았다면, 치타는 벌써 멸종되었을 것이다. 다리만 그렇게 진화했다고 가정할 경우, 영양을 잡기 위해 빠른 속도를 계속 유지하다가 심장 과부하로 죽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영양도 마찬가지이다. 치타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빨리 달려야 하고, 따라서 다리가 길게 진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관절뼈의 상응하는 진화 없이 또는 발바닥 표면 등의 물리적 상태의 적절하고도 상응하는 진화를 거치지 않은 채 그저 가늘고 길기만 한 다리를 가졌다면 이런 영양도 마찬가지로 오래 전에 이미 멸종되었을 것이다.
개미는 에너지 소모율과 이동속도 측면에서 환경에 적응·진화한 경우이다. 개미의 6개의 다리는 빠른 이동과 자신보다 무거운 먹잇감을 수송하는 데 유리하다. 만약 개미 길이가 2배로 커진다면 산술적으로 몸의 부피는 길이의 세제곱인 8배가 된다. 체중도 부피만큼 비례하여 늘어난다고 볼 수 있으므로 8배로 늘어난다. 이 경우 개미는 길이와 폭이 겨우 2배로 늘어난 다리로 8배 늘어난 체중을 지탱해야 한다. 만약 개미의 길이가 3배가 되면 체중은 27배로 되기 때문에 이동은커녕 그 자리에 폭삭 주저앉게 될 것이다.
시조새는 파충류에서 조류로 진화한 전형적인 경우이다. 시조새는 큰 공룡에서 작은 공룡으로, 그리고 깃털 형질이 나타난 소형 공룡 프로타르카이옵테릭스를 거쳐 진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2.5톤의 코뿔소가 결코 하늘을 날도록 진화할 수는 없다. 새는 뼈와 내장의 무게를 줄이고 체형이 작아져 하늘을 날게 되었다. 그러므로 물리적 조건을 무시한 2.5톤의 ‘코뿔새’라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코끼리 6마리를 합친 것보다 컸던 대형 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나 카마라사우루스가 하늘을 나는 새로 진화할 수 없었던 것은 자연의 보편적인 제한 조건 때문이다.*
검찰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선 자연의 보편법칙에도 어긋난 괴물 검찰이 코뿔새마냥 하늘을 휘젓고 날아다니며 생태계를 마구 파괴하고 있다. 임명직인 검찰총장이 인사권자인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맞선다. 미운 사람은 적으로 몰아 ‘먼지털기식 수사’나 ‘별건 수사’ 등으로 파멸시키고, ‘자기 편’은 기소는커녕 수사도 하지 않는다.
‘검찰에 찍히면 죽는다’, ‘내가 죄를 짓지 않았어도 소용없다’, ‘재판까지 가기 전에 언론 단계에서 모두 끝난다’, ‘개혁적인 발언을 많이 하면 안 된다’ 이런 메시지가 사람들의 의식 속에 각인 되어 가는 게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생각에는 나름 근거가 있다.
검찰조직은 가까이서 볼수록 더 무섭다. 우리나라엔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범죄 의혹이 제기된 고위 공직자들이 즐비하다. 웬만한 의혹에 대해서는 고소고발장이 접수돼 있다. 그러나 검찰조직은 모든 사건을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이른바 ‘선별수사’다.
사건 배당에서부터 차별을 한다. 직접수사부서에 배당된 사건은 신속한 수사가, 형사부에 배당된 사건은 지연된 수사가 예정돼 있다. 직접수사부서 검사에겐 사건 배당을 줄인다. 수뇌부가 승인한 사건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형사부 검사에겐 송치사건을 쏟아 붓는다. 인력 운용도 차별을 한다. ‘내부 파견’이라는 수단으로 장기판의 말처럼 검사들을 움직인다. 수뇌부가 승인한 사건에는 수사 인력을 몰아준다. 과도하고 무리한 수사도 인력이 풍성하니 가능한 일이다. 인력을 뺏긴 부서에선 곡소리가 난다. 최근의 과로사와 자살 사고는 모두 형사부에서 발생했다. 선별수사는 ‘차별수사’인 셈이다.
차별수사는 공정하지 않다. 차별수사 덕분에 어떤 국회의원은 임기가 끝나도록 수사를 받지 않다가 의혹이 잊힐 수도 있고, 어떤 공직자는 임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철저한 수사를 받을 수 있다. 수사가 일단 시작되고 나면 법원의 통제도 별 쓸모가 없다. 압수수색영장 발부율은 몇 년째 99%다. 판사들 사이에서도 통과의례라는 말이 나온다. 이러니 판사들 스스로도 두려운 것이다.**
‘부산지검 고소장 위조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신청한 부산지방검찰청 압수 수색 영장을 검찰이 거듭 기각했다. 지난 4월 임은정 울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가 민원인이 낸 고소장을 위조하고도 아무런 징계 없이 사표를 받은 사건과 관련해 김수남 당시 검찰총장 등 4명을 직무유기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9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부산지검 압수 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경찰은 보강수사 끝에 지난 22일 두 번째 압수 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23일 ‘명백하게 범죄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다시 영장을 반려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직 부장검사가 죄가 된다고 판단해 고발한 사건인데, 검찰이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법관의 영장청구권은 다른 나라 헌법에서도 찾아 볼 수 있지만,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명시한 헌법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일제시대 일본은 본토에서 시행하던 ‘영장제도’를 조선에서는 적용하지 않았다. 독립운동을 효과적으로 탄압하고 식민지 지배를 효율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인신구속 등을 수사기관이 맘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해방 후 미군정은 법관의 영장 없이 인신을 구속할 수 있는 식민지 형사법 체계를 반인권적이라 판단해 법관에 의한 영장주의를 처음 도입했다. 그러나 영장청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아 해석이 분분했다. 그래서 미군정은 보충 규정을 통해 경찰의 영장청구는 검사를 경유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한국 법의 독특한 ‘검사경유 원칙’이 최초로 표명된 것이다.
하지만 1948년 제헌 헌법은 영장의 청구권자를 따로 두지 않았지만, 형사소송법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 모두 영장청구권이 있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5·16 군사쿠데타 후 1961년 형사소송법을 개정하면서 구속영장 및 압수수색영장 규정에서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빠지고 대신 “사법경찰관은 검사에 청구하여”가 들어갔다.
영장청구권의 주체를 검사로 명시한 현행 헌법 규정의 입법사를 살펴보면 그 뿌리는 역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인신구속의 권한을 수사기관에 부여했던 식민지 형사사법 체제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검사는 외국의 여느 검사보다 몇 배나 우수한가? 전 세계 검사 권한의 몇 배를 가지고 있다. 수사도 하고(수사권), 경찰의 수사를 지휘도 하고(수사지휘권), 기소는 검사만 할 수 있고(기소독점주의), 기소할지 안 할지는 검사 마음대로이고(기소편의주의), 검찰조서는 경찰조서보다 우월적 효력을 인정받는 등, 꼽을 손가락이 부족할 지경이다.
그 막강한 검찰 권한으로 무엇을 했을까? 유신독재에 복무했고, 이후 1987년 이전에는 군부에 충성했다. 권력이 기업으로 넘어간 1987년 이후에는 재벌에 충성했다. 충성을 요구하지 않는 민주정권이 들어서자 검찰은 스스로 권력이 되고, 자신들이 정치를 좌지우지하려 한다. 개미가 3배로 커져 27배의 권력을 가진 형국이다.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폭망’할 운명이다. 자연의 법칙이 그렇다.
코뿔새의 비행은 한 철이다. 생물의 진화는 내부압력과 외부압력에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사멸할 뿐이다. 인간사회에는 제도라는 게 있다. 우선은 공수처로 검찰 폭주를 견제해야겠지만, 결국에는 수사권을 경찰에 돌려주어야 한다. 검찰은 기소권 하나나 제대로 감당하면 된다. 그게 민주사회의 국민뿐 아니라 검찰 자체에도 이로운 일이다. 코뿔새가 횡행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최종덕, 『생물철학』(생각의힘, 2014), 200~209쪽. **이탄희(전 판사), 「양승태와 김명수, 조국과 윤석열의 시대」, 『한겨레신문』, 2019년 10월 21일. ***정환봉 임재우, 「‘제식구’ 압수수색 영장은 또 반려」, 『한겨레신문』, 2019년 10월 25일. ****정은주, 「헌법상 검사의 영장청구권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한겨레신문』, 2019년 10월 12일.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