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이 외면받는 시대입니다. 동네서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종이책이, 동네서점이 필요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종이책의 감촉을 느끼며 독서에 열중하고 또 누군가는 인터넷서점보다는 동네서점에 들러 책을 사봅니다. 여기 '사람이 이 땅에 존재하는 한 책은 필요하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이런 신념 아래 1978년 서점을 시작해 올해로 46년째 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부산 부곡동에서 동네서점 목민서관을 운영하는 김종찬(70) 대표입니다. 지난연말 김 대표를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Q1.언제 목민서관을 설립했습니까?
▶김종찬 목민서관 대표 : 1978년 10월 1일입니다.
Q2. 45년이 되었네요. 어떤 계기로 목민서관을 설립하게 되었습니까?
▶김종찬 목민서관 대표 : 제가 자라면서 갖게 된 생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이 이 땅에 존재하는 한 책은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점을 열게 되었습니다.
Q3. “사람이 이 땅에 존재하는 한 책은 꼭 필요하다.” 이 말은 진실이 담긴 멋진 명제 같습니다. 언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와 서점을 여는 과정을 좀 더 자세하게 알려주십시오.
▶김종찬 목민서관 대표 : 저는 경남 사천시 서포면 비토리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여기는 유명한 ‘별주부전의 고향’이라는 비토섬이 있죠. 4남3여 중 장남인데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않고 아버지와 함께 농사일을 했습니다. 키가 작은 저는 농사일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고민 끝에 중학교를 찾아가 3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저를 사환으로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힘을 써주셨는지 사환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저는 낮에는 농사일 대신 학교 사환으로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 생활을 했습니다. 학교에 다니고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그때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 차에 중학교 과학담당인 하재호 선생님께서 손수 삼천포고등학교 원서를 써주시며 진학을 권유하셨습니다. 그 선생님 덕분에 저는 고등학생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입학선물로 주신 편지가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편지 속의 한 구절은 아직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운명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에게는 운명조차 길을 비킨다.’
삼천포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의무전투경찰 3년을 마친 뒤 홀홀단신 부산에 왔습니다. 처음엔 농장을 할까도 생각해보았습니다. 농장을 할 만한 곳은 부산에 없는 것 같아 곧바로 서점을 열기로 결심을 굳히고 장소 물색에 나섰습니다. 그때 결심을 굳히게 해준 말이 바로 ‘책은 이 땅에 사람이 사는 한 꼭 필요한 것이다.’였습니다. 또 이런 생각도 결심을 굳히게 해주었습니다. ‘내가 잘할 수 있고, 나한테도 좋고 다른 사람한테도 좋고, 이 세상에도 필요한 것, 그게 바로 서점이다.’ 그때 서점이야말로 내 평생을 걸고 할 수 있는 일이다는 확신을 갖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4.처음부터 이곳 목민서관에 터 잡았습니까?
▶김종찬 목민서관 대표 : 아닙니다. 처음엔 반송동에서 시작했습니다. 당시 70년대 후반엔 서점이 엄청 많았습니다. 동네 골목마다 서점이 있었어요. 서점들이 버티고 있는데 마구 비집고 들어갈 수는 없잖습니까. 버스를 타고 부산 전역을 돌아다니며 장소를 물색하던 중 지인의 소개를 받아 반송동에서 두 평짜리 가게를 열게 되었죠. 아는 분한테 250만 원을 빌려 다이(책장) 하나로 시작했습니다. 그땐 반송동에 학생들이 엄청 많았어요. 거기서 1년 하다 부곡동으로 왔고, 거기서 100m쯤 떨어진 이곳 목민서관에 자리잡은 건 30년 전인 1993년입니다.
Q5.서점을 운영하면서 만난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무엇인가요?
▶김종찬 목민서관 대표 : 『신념의 마력』(클로드 브리스톨 지음)입니다. 이 책은 1948년 처음 선보인 ‘성공학의 고전’입니다. 신념을 통해 성공적인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해주는 자기계발서이죠. 많이 팔렸다는 점에서도 인상이 깊지만 무엇보다 저의 가슴을 뜨겁게 달굴 정도로 흡인력이 큰 책입니다. 신념이야말로 좌절한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성공으로 안내한다는, 제목처럼 신념의 마력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Q6.그간 서점을 운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혹은 보람을 느낀 일은 무엇인가요?
▶김종찬 목민서관 대표 : 명절 때나 휴일에 온 가족이 서점에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아이들한테 이렇게 말합니다. “얘들아, 아빠가 이 서점에서 책을 사서 공부했단다.” 이런 풍경을 볼 때면 서점을 운영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인터뷰 중 한 80대 할버지가 들어오셨다. 그 할아버지는 초등학생 손자들이 중학교 때 배울 영어 선행학습을 위한 영어참고서를 주문했다. 그 할아버지는 지난해 이맘때도 이 서점을 찾아 초등학교 참고서를 사갔다고 김종찬 목민서관 대표은 기억했다.
Q7.서점을 운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김종찬 목민서관 대표 : 제가 서점을 반송에 처음 시작했을 때는 간판을 걸지도 못했고, 내놓을 자리도 없었습니다. 장소가 반송도서관 앞 학생백화점이었는데, 점포가 작았았어요. 그때는 처음 하는 일인지라 사실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45년 서점하루 매상이 여성중앙 한 권 값인 3400원인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오늘 할 일을 오늘 하면 결과는 언젠가 온다, 고 믿었기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Q8.45년간 서점을 운영하면서 세태변화를 느낀 게 있다면 소개해주십시오.
▶김종찬 목민서관 대표 : 2000년대 전에는 서점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목민서관이 근방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다 보니 서점을 차리는 것에서부터 운영까지 노하우를 듣고 싶은 거죠. 그런 분들한테 저는 꼭 물어봅니다. 정말, 간절하게 하고 싶은가? 만약 그렇다고 하면 ‘하시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저의 모든 노하우도 알려줬고요.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는 서점 하겠다며 찾아오는 사람을 못 봤습니다.
Q9.목민서관을 45년간 유지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김종찬 목민서관 대표 : 글쎄요? 우선 저는 서점이 좋습니다. 서점이라는 이 공간도 좋도, 제가 서점을 운영한다는 사실도 기분을 좋게 합니다. 그 다음 손님이 찾는 책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구해드리려고 애씁니다. 제 경험으로 손님이 책의 제목을 안다면 그 책은 어딘가에는 반드시 존재합니다. 헌책방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책을 구해드리죠. 그러면 손님도 만족하고 저도 기분이 좋죠. 이것도비결이 될지 모르겠는데, 저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저의 서점을 찾는 사람에게는 절로 반가운 얼굴로 대하게 되고, 친절하게 안내도 해드리고요.
Q10.인생철학은 무엇인가요?
▶김종찬 목민서관 대표 : 굳이 정해놓은 건 없습니다만, 살아가면서 ‘하루하루 일상에 최선을 다하자’를 다짐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기쁨이 뒤따라 오더라고요. 장사라는 것은 이윤을 위한 것이고 매상이 중요한데 저는 거기에 연연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할 일을 미리 정하고 매일 매일 체크 해나가면 목표한 것들이 다 이루어지니까요.
Q11.향후 계획이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김종찬 목민서관 대표 : 현재 이 목민서관의 면적은 100평가량인데요, 건물이 오래 되다 보니 좀 누추한 게 사실입니다. 서점 뒤란에 25평가량의 부지가 있는데 이를 합쳐 목민서관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확장·리모델링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손님이 원하는 책은 더욱 신속하게 찾아드릴 계획입니다. 이것은 부산에서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책을 사는 시민들로부터 꼭 가보고 싶은 서점, 원하는 책은 신속하게 반드시 구해주는 목민서관이라는 평을 듣고 싶습니다. 그런 목민서관을 앞으로 30년 더 운영하겠다는 것이 저의 포부입니다.
Q12.2024년 새해를 맞아 고객과 시민들에게 인사 말씀 해주십시오.
저는 늘 ‘다 여러분 덕분이다’를 마음에 새기고 입에 달고 삽니다. 목민서관이 이렇게 오래 사랑을 받는 것, 제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우리 식구가 살아가는 것, 특히 2남2녀를 교육시키고 3명을 출가까지 시킨 것도 모두 여러분들의 덕분입니다. 저는 2011년 1월 1일 <감사의 글>을 서점 안팎에 붙여두고 새기고 있습니다.
“부곡동 주민여러분, 거래출판사 여러분, 학원 원장님, 선생님 그리고 손님 여러분 고맙습니다. 오늘날 저와 목민서관이 건재한 건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여러분, 새해에는 다 잘 되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은 김종찬 목민서관 내부 기둥에 붙은 <감사의 글> 전문이다.
1978년 10월 1일부터 오늘까지 저희 목민서관이 유지·발전되게 도움을 주신 부곡동 주민, 각 출판거래사, 여러 학원 원장님·선생님 그리고 서점을 찾아주시고 성원해주신 손님께 언제나 고마움을 가지며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나 건물주이신 조정재 어른의 인간적인 관심과 배려 또한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목민서관의 유지·발전은 저의 능력보다 위 여러분의 도움 덕분임을 다시금 느끼며 새깁니다.
이제 동네 안에 있던 일반서점들은 전국적으론 절반 이상이 문을 닫았고 우리 부산은 약 75%가 서점 문을 닫았습니다. 목민서관 역시 무척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것도 없이 책이 좋아 서점을 시작하여 제가 살 집을 마련했고 자식을 키우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애초에 제 것이 없었습니다. 힘든 어려움엔 저의 생활을 줄이고, 욕심을 줄이며 저희 목민서관을 감사하고 보답하는 마음으로 굳건히 운영해 나가겠습니다. 언제나 꽃 피는 봄과 삭풍의 겨울은 있다고 저는 압니다. 삭품의 겨울을 이겨내면 분명 뜨거운 여름도 온다고 믿습니다.
제가 책이 좋아 서점을 시작했고 우리 부곡동에도 있을 만한 서점 하나는 있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하며 지금까지도 여러분께 목민서관을 지켜주셨기에 이제는 제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끝으로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께 외람되나마 작은 부탁 하나를 드립니다. 여러분의 동네 안에 아직도 견디고 있는 이웃서점이 있으면 부족함이 많고 조금은 맘에 들지 않으시더라도 그 동네서점을 찾아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당장은 인터넷서점이 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인터넷서점은 돈의 장난으로 출판문화와 서점계를 망가뜨리고 있고 정부의 관계기관에서도 고민하는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일반서점에서는 결코 큰 이윤(실제 15~25%)을 취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말씀드립니다.
다시 한번 감사와 고마움을 여러분께 드리면서 열심히 굳건히 목민서관을 이끌고 나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1월 1일
목민서관 김종찬 드림.
◇ 김종찬 목민서관 대표 약력
▲1953년 경남 사천 출생
▲삼천포고등학교 졸업
▲의무전투경찰 순경 임용
▲영광서점개업(반송동) 개업(1978)
▲영광서점 2호점(부곡동) 개업(1979)
▲영광서점 2호점 확장이전-->현 목민서관(부곡동, 1993)
▲부산대학교 산업대학원 최고산업전략과정 수료(1997)
▲부산 금정구청장 표창장(1998)
▲부산 금정구 명예사회복지공무원 위촉(2020)
▲현 목민서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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