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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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6 17:43 | 최종 수정 2024.03.2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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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대사’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이종섭 주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사의 심정은 지금 어떠할까? 2년 전 윤석열 대통령에게 국방부 장관으로 지명 받았을 때의 그 감격, 지금은 기억이나 날까?
사람은 보통 남들이 평가하는 그릇의 크기보다 자신의 그릇을 더 크게 평가한다. 하여 잘나면 잘난 대로 못나면 못난 대로 누구나 인정욕구에 시달린다. 김대중 정부 시절 천용택 이후 24년 만에 예비역 육군 중장으로 국방부 장관으로 출세(?)했다. 아마 이종섭은 ‘자기를 알아주는 주군’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정녕 충정(衷情)을 가졌을 것이다.
‘인정받음’은 삶의 큰 보람이다. 애옥살이 선비가 그래도 버티고 살 수 있는 것은 몇몇에게나마 ‘지우(知遇) 입음’이란 가느다란 동아줄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알아주는’ 사람의 정체이다.
암군(暗君)은 맹종하는 간신을 필요로 하고, 명군(明君)은 거스르는 말을 하는 충신을 알아준다. 선비 혹은 전문가나 지식인은 누구나 간신이 될 수도, 충신이 될 수도 있다. 쓰일 수 있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어쩜 간신과 충신의 차이는 종이 한 장 두께만도 못할지도 모른다. ‘발탁’이란 인정을 쉬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이 몇 있겠는가. 출세욕은 일단 제쳐두고, 대체로 인정욕구에 매달리는 지식인들은 발탁 받음으로 인정욕구 해소에만 관심할 뿐, 알아주는 사람의 정체에 대한 고려는 소홀히 한다.
자공이 여쭈어 보았다. “한 고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사람은 어떠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 좋지 못하다.”
“한 고을 사람이 모두 미워하는 인물은 어떠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좋지 못하다. 한 고을 중의 선인이 좋아하고, 악인이 미워하는 것만 못하다.” -논어/자로편-
이종섭 대사는 평소 진솔하고 합리적인 성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채아무개 상병 사망 사건에서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의혹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되었다. 작년 7월 31일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이종섭은 대통령실 누구에게 휴대폰 전화를 받았다.
문제의 통화 후, 전날 해병대 수사 결과를 결재했던 이 장관의 태도는 확 달라졌다. 그러므로 대통령실의 통화당사자가 누구이며, 어떤 내용인지를 이 대사가 밝히면, 채아무개 상병 사건의 진실을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당시 이 장관에게 전화를 한 대통령실의 인물이 누구인지는 대충 짐작하고 있다. 전화 한 통화로 장관의 결정을 하룻밤 새에 뒤집도록 할 수 있는 권력자는 단 한 사람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로 ‘그분’이 ‘격노’해서 벌어진 사달이라는 심증이다.
이종섭 대사도 대한민국이 국민의 세금을 들여 키워낸 소중한 인재 중의 한 명이다. 그런 인재인 만큼 지금은 자신의 임명권자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도주대사’란 오명은 결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안위를 위한 또 다른 ‘입틀막’이란 것도 간파하고 있을 것이다.
‘인정’이 곧 공범의 늧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그분’이든 ‘도주대사’든 인과응보의 철리에서 비껴나지 못함을 몸으로 배울 것이다. ‘그분’이야 전혀 개전의 정이 없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도주대사’는 어둠을 기꺼이 감수함으로써 빛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인정욕구에 스러지는 한 인재의 뒷모습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진실의 문’을 열어젖히는 결단으로 그나마 ‘진솔하고 합리적인 성품’임이 거짓 아니길 소망한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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