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임현정이 산사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과 ‘피아노 협주곡 4번’ 등을 연주해 청중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겼다.
20일 오후 4시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대한불교 조계종 녹색사찰 백련사(주지 원경) 대웅전에서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4회 천그루축제 환경콘서트가 열렸다. 천그루축제는 기후위기에 맞서 탄소중립을 위한 나무심기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이날 환경콘서트는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지구를 위한 아름다운 콘서트’이자 울산불교환경연대 후원을 위한 기부콘서트이기도 했다.
한국인 최초로 역사상 최초 데뷔앨범 빌보드 클래식 종합 차트 1위를 차지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임현정이 불교환경연대 홍보대사로 백련사와 인연이 있어 이뤄진 이날 공연은 2021년 이래 세 번째 산중 콘서트이다.
울산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이자 백련사 전 주지인 천도 스님은 사회 겸 환영인사를 했다.
“며칠전부터 비소식이 있어 발을 동동 굴렸는데 마음을 달리 먹고 당초 야외공연을 아예 대웅전 실내 공연으로 바꿨습니다. 야외공연이었으면 1천 명 이상 모실 것을 수백명으로 줄었지만 덕분에 조명이나 무대 음향비는 아끼게 됐습니다. 기후위기시대 맑은 하늘에 우박 쏟아지는 일이 예사이고, 아랍에미레이트에선 폭우로 낙타와 비행기가 둥둥 떠다니기도 하는데 이 정도 봄비에 음악회를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러한 데 탄소중립과 에너지저감 활동을 실천하고 자연과 어우러진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합니까. 오늘 여기, 자연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멋진 환경콘서트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날 환경콘서트의 여는 무대는 백련사 신도로 구성된 향기소리합창단이 ‘부처님을 따르면’ ‘바람의 빛깔’ 두 곡을 선보였다. 백련사 주지 원경 스님은 인사말씀에서 “환경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해오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러한 활동이 우리 개인을 넘어 모든 사람, 모든 생명에게 널리 퍼지길 바랍니다”라며 두 손을 모았다. 천창수 울산교육청 교육감은 축하말씀에서 “환경은 곧 생명이지요.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제는 깨어있는 의식으로 이러한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환경콘서트에 함께 할 수 있어 기쁘고, 준비하신 여러분에게 감사와 축하를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환경콘서트에는 부산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인 대원각사 주지 안도 스님, 전국비구니회 부회장 혜욱 스님, 석남사 주지 천조 스님 등 각지에서 스님 30여 명이 함께 했고, 전국에서 모인 신도는 물론 일본에서 온 팬을 비롯해 환경과 음악을 사랑하는 일반시민들이 많았다. 에코밴드 요술당나귀 싱어인 라마(최진규)가 사회를 겸하면서 자작곡 ‘소를 찾아보자’ ‘아미타 랩소디’를 불렀다. “소를 찾아 떠나보자/ 나의 소는 어딨을까?~”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물결이 일어나네/ 나의 마음 강물따라 흘러만 가네~”
이어 힐링멘토 마가 스님(자비명상 이사장·한국명상진흥원 원장·미고사 주지)이 잠시 자비명상을 소개했다. “꽃이 피어있을 때 아름답지요. 생활 속에서 찡그리는 지 웃는 지 스스로를 보는 게 명상입니다. 내 마음을 바라보면서 미운 사람 떡 하나 더 주는 심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명상이요. 나쁜 마음을 좋은 마음으로, 나쁜 행동을 좋은 행동으로, 나쁜 말을 좋은 말로 바꾸는 것이 곧 수행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삶, 연꽃같이 진흙탕에서 꽃을 피우는 삶, 생활 속에서 그러한 행복한 꽃을 피우고자 노력합시다.”
천도 스님이 피아니스트 임현정을 소개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아니스트 임현정입니다. 노옥희 전 울산교육감 49재 때 영하 14도의 날씨에도 헌정곡을 준비해 10분의 공연을 위해 서울에서 한달음에 내려와 주었습니다.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은 많지만 임현정이야말로 진짜 의리 있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피아니스트입니다. 혼신을 다해 피아노를 치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임현정을 소개합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주십시오~”
드디어 임현정이 등장했다. 긴 생머리에 수수한 베이지색 드레스를 입은 임현정은 수줍은 모습으로 입장했다. 피아노 주변에 마련된 게시판에는 미리 청중들에게 포스트잇을 나눠줘 받은 신청곡 쪽지가 빼곡 붙어있었다. 대웅전 주변에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피아니스트 임현정은 EMI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발매하면서 뉴욕타임스, BBC뮤직, 텔레그래프 등을 통해 전 세계에서 숨 막히는 연주로 호평을 받으며 음악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천재피아니스트이다. 세 살 때 음악을 시작해 열두 살에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프랑스 콤피엔느음악원에 입학, 5개월만에 1등 졸업을 하고, 루앙국립음악원에서 열다섯 나이로 최연소 및 조기졸업을 하였다. 그 후 파리고등국립음악원에 최연소 입학해 3년만에 최연소 조기졸업을 하였다. 2016년에는 알방 미셀에서 음악과 영성에 관한 에세이 ‘침묵의 소리(Le Son du Silence)’를 출간해 전 세계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고 북콘퍼런스, 북콘서트, 강의 등을 활발히 해오고 있다. 2020년 국내 민간 최대 규모 오케스트라인 ‘인터스텔라 오케스트라’를 창단했고, 지난해엔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인터스텔라 페스티벌’ 공연을 성황리에 마무리하며 지휘자, 음악감독, 공연기획자로서의 존재감 또한 각인시켰다. 자세한 것은 임현정 공식사이트(https://www.hjlim.com)에 들어가면 알 수 있다.
이날 임현정은 “바깥에 비도 오니 첫곡으로는 비가 오는 분위기에 맞는 쇼팽의 프렐루드로 시작해보겠습니다”라며 운을 뗐다. 쇼팽의 프렐루드는 ‘빗방울전주곡’으로 비올 때 들으면 좋은 클래식으로 알려진 곡이다. 임현정은 기도하는 표정으로 약간의 침묵을 가진 뒤 연주를 시작했다. 산사를 울린 피아노 선율은 봄비와 어울려 청중들의 가슴을 적셨다. 큰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이어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변주 18번 독주편곡을 연주했다. 이곡은 파가니니 랩소디 중 가장 유명한 변주로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로 잘 알려진 곡이다. 이어서 국악의 자진모리를 피아노 편곡으로 선보였다. 자주 몰아가는 장단을 말하는 자진모리의 ‘덩 덩 덩 따쿵따’ 하는 북·장구 소리가 피아노에서 빠르게 울려나왔다. 절로 신명이 났다.
이어 신청곡 콘서트로 바뀌었다. 임현정은 청중과 대화하며 포스트잇에 적힌 곡 한곡 한곡을 보면서 선곡을 했다. 신청곡 중 첫 번째 곡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부드럽고 섬세한 연주가 대웅전을 감싸고 돌았다. 다음 곡은 영화 시네마천국의 주제곡. 청중들에게 익숙한 곡이다. 다들 고개를 흔들며 즐기는 모습이었다. 다음 신청곡은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 가장 어려운 곡 중 한 곡이라는 라 캄파넬라는 ‘작은 종’이란 뜻이라고 하는데 고음부분이 종치는 느낌이 들며, 피아니스트의 기량을 잘 보여주는 곡으로 유명하다.
다음에는 ‘바람의 기도’라는 곡이 신청곡으로 나왔다. 이날 사회를 본 라마 최진규의 자작곡인데 임현정에게는 낯선 곡. 임현정은 라마에게 노래를 불러주면 기억을 해서 연주를 하겠다고 했다. “가을바람 불어오면 코스모스 춤추듯이 붉은 산에 푸른 노래 들려오면 난 기도했지~”. 즉석에서 임현정이 라마의 노래에 맞춰 피아노 반주를 해주었다. 다들 놀라워했다.
다음 신청곡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 부산불교환경연대 대표인 안도 스님이 신청한 곡으로 백련사를 일궈온, ‘운명을 개척해온’ 스님들에게 바치는 곡이라고 했다.
“빰빰빰 빠~”. 첫 멜로디만 들어도 익숙한 ‘운명’이 청중들의 ‘영혼’을 강하게 때렸다.
다음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예전에 MBC ‘베토벤 바이러스’와 같은 드라마나 광고의 메인테마곡으로 잘 알려져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곡이다. 이어서 나온 신청곡이 아리랑 판타지. ‘아리랑 주제에 의한 변주곡’으로 임현정 자작곡이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짓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밀양아리랑의 흥이 그대로 드러났다. 어깨가 덩실했다. 후반에는 우리나라 대표 아리랑 소절이 나왔을 땐 임현정이 청중들에게 ‘아리랑’을 부르라고 흥을 돋워 객석에서 소리 내어 함께 불렀다.
다음 곡은 가브리엘의 오보에. 이곡은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의 곡으로, 영화 ‘미션’의 사운드트랙이다. 그 뒤 여기에 가사를 붙인 ‘넬라판타지아’로도 잘 알려진 곡이다. 다음 신청곡은 백만송이 장미였다. 라트비아 가요를 러시아어로 번안한 곡으로 우리나라에선 가수 심수봉의 노래로 널리 알려진 곡. 임현정은 청중들에게 앞 소절을 함께 불러보라고 한 뒤 그 곡을 잔잔하게 연주했다. 청중석에서는 백만송이 장미를 입술로 따라 부르기도 했다.
열곡 너머 연주가 계속 됐다. 다음 신청곡은 터키행진곡.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1번 3악장의 별명이다. 임현정은 이곡이 유난히 어려운 곡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콘서트의 마지막 곡은 베토벤의 월광소나타였다. 임현정은 그 중 1악장이 좋겠다고 말했다. 천도 스님에게 이곡을 연주하기 전에 환경과 생명에 대한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야 이 곡의 분위기가 살 것 같다면서. 천도 스님은 이렇게 기도했다. “두 손을 가만히 모으는 것만으로도 기도라고 하지요(이문재 시인의 ‘오래된 기도’ 일부). 내가 근심과 걱정과 괴로움에서 벗어나 편안하고 안락하기를 기원합니다. 제가 원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이 근심 걱정 괴로움이 없어지기를 원합니다. 나와 차별 없는 모든 생명들의 평화를 기도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이날 공연은 무료공연이었다. 참석자들 일부는 울산불교환경연대에 후원금을 내거나 회원 가입을 하기도 했다. 피아니스트 임현정은 연주회를 앞두고는 하루 스무 시간 피아노 연습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봄날, 비 내리는 산사에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영혼을 울리는 클래식 향연은 빗소리와 어우러져 봄의 향기를 소리로 내뿜으며 생명평화를 전하고 있었다.
<본지 객원기자 /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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