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배상금 1389억+지연이자 80억과 카드웰의 법칙

조송원 승인 2024.08.07 11:10 의견 0

우리 정부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에 배상금 1389억 원에 더하여 지연이자 약 80억 원까지 물어주게 됐다. 지연이자는 순전히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탓이다.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6월 엘리엇에 1389억 원(법률비용 포함)을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그 이유는 ‘2015년 박근혜 정권이 이재용 삼성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물산 합병에 부당하게 개입해 손해를 봤다’는 엘리엇의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 판정 후 한 달 뒤(2023년 7월 18일),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 대표는 기자 회견을 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이 형사(국정농단)사건을 수사해서 잘못을 바로잡는 데 실질적으로 관여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선명하고 당당하게 이 사안은 대한민국 정부가 소수 주주 중의 한 명에 불과한 엘리엇에게 돈을 물어줄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소송을 하고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취소소송을 제기하는 입장에서 ‘우리는 지면 구상권 할 겁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저는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단히 애국적이고 법리에 밝은 법률가처럼 보이는 발언이다. 아마 이 기자회견으로 국민의 박수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당시 한 법무부 장관은 소송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에 대해 ‘뭘 잘 모른다’는 식으로 무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번 ‘엘리엇 배상 판정’ 취소 소송에서의 패소는 한 전 법무부 장관이 그렇게 모욕한 송기호 국제통상변호사의 예측과 정확히 일치한다.

송 통상전문변호사의 주장대로 소송을 진행할 것이 아니라, 엘리엇에 배상금을 지급한 뒤, 박근혜 정권 인사들과 이재용 회장 등에게 구상권을 청구해야 했다. 이를 회피하려고 소송을 냈고, 소송비와 지연이자만 키웠을 뿐이다.

정치적 이익을 위한 소송이었다면, 한 대표는 정치모리배일 뿐이고, 법리를 몰랐다면 무능한 법률가이다. 자기 돈을 물어내야 한다면 이렇게 했을까. 국민의 혈세를 꼬라박고도 ‘국민을 위해, 국민이 어쩌구저쩌구 …’, 국민을 개·돼지 수준으로 보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말장난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검찰 구성원도 우리 사회의 소중한 고급 인력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국정은 ‘국수 잘하는 솜씨가 수제비 못하랴’는 정도의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수사를 해봐서 안다고?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가 머리를 싸매도 쉬 좋은 결과를 얻어내기 어려운 과업이 국정이다. 한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대통령실과 정부 내각은 물론, 국무총리 비서실, 금융감독원, 국가정보원, 국민권익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등 중요 기관 곳곳에 검사 출신들이 포진하고 있다. 검사 출신들이 갖는 지적 한계의 문제뿐 아니라 더 중요한 건, 우리 사회가 애써 몇 십 년에 걸쳐 길러온 해당 분야 전문가와 인재들을 내쳤다는 사실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조직이 어떻게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겠는가.

『성장의 문화 : 현대 경제의 지적 기원』(조엘 모키르/에코리브르/2018)에서 경제사학자 조엘 모키르는 국가가 과학기술에 대한 집단지식을 축적하고, 이를 생산적으로 활용할 때 성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혁신적 지식은 저절로 생겨나지도,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다. ‘카드웰의 법칙’ 때문이다.

카드웰의 법칙이란, 기술사학자 도널드 카드웰의 통찰로, 한때 과학기술 문명을 선도했던 혁신 국가들이 경제가 성장하고 나면, 그 창의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끝내 멈춰서고 뒤처져 추종자로 전락하는 경향을 말한다.

그 이유는 기득권 세력이 견고하게 확립된 지식에 도전하는 ‘이단자’를 탄압하고, 중대한 발전을,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기술을 정체시키기 때문이다.

카드웰의 법칙이 작용하는 이유는 과학기술 발전이 정치와 문화에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기득권 세력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압력단체가 되어, 자신들 지대 추구(rent seeking)에 유리하도록 정치시스템을 조정하고 사회제도를 조작하여, 사회 모든 분야에 진입장벽을 높이 세운다. 하여 공공의 이익을 자신들의 사적 이익으로 돌려 끼리끼리만 해먹으려 획책한다.

모키르에 따르면, 다원주의 문화와 아이디어 경쟁이 결합한 사회만이 카드웰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식과 정보를 자유롭게 확산하고 공유함으로써 기존 지식이 새로운 지식의 도전을 받으면 언제든 수정·보완될 수 있는 문화와, 정치가 부자나 권력자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해 작동하는 사회일 때에만 성장은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독재’는 현재의 부정의(不正義)를 넘어, 미래 성장의 씨앗까지 말려 죽여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한 파당이 실권을 쥐고 국정을 농단할 때, 어느 여름 귀양지에서 술잔을 앞에 놓고 울분 토하던 다산 선생의 심정, 추체험(追體驗)한다.

‘여름날 술잔을 앞에 놓고’(夏日對酒)/다산 정약용

(…)

당당한 수십 가문이
대대로 국록을 먹어왔는데
그 중에서 패가 서로 갈리어
엎치락뒤치락 서로 죽이며
약자의 살점 강자가 씹어 먹고는
대여섯 집 남아 거드름 피우며
그들만이 정승, 판서가 되고
그들만이 감사, 원님이 되네
승지 벼슬도 그들이 하고
사헌부, 사간원도 그들 몫이네
모든 벼슬은 그들의 차지이고
재판도 오로지 그들만 맡네

하사골 백성 아들 하나 낳아
빼어난 기품이 난곡 같고
팔구세로 자라서는
의기가 가을철 대나무 같아
아비 앞에 꿇어앉자 묻기를
이 자식 지금 구경(九經)을 다 읽고
경술(經術)이 누구보다 으뜸이오니
홍문관에 들어갈 수 있겠지요
아비 말이 너는 지체가 낮아
임금을 곁에서 돕게 하지 않는단다
이 자식 지금 큰 활을 당기고
무예가 극곤과 같으니
그러면 오영(五營)의 장수나 되어
말 앞에다 대장기를 세워보렵니다
아비 말이 너는 지체가 낮아
장군 수레도 타게 하지 않는단다

(…)

자식놈 그제야 노발대발하면서
책이고 활이고 던져버리고
쌍륙놀이와 골패놀이
마작놀이 공차기놀이로
허랑방탕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시골구석에 파묻혀 늙어버리지

부호 집안은 자식 하나 낳아
헌걸차기 천리마 같고
그 아이 팔구세 되어
예쁘장한 옷을 입고 다니면
사람들 말이 너는 걱정 없다
너희 집은 하늘이 복을 내린 집이고
네 벼슬도 하늘이 정해놓아
청관 요직 원대로 되리니
무단히 헛고생해가면서
글공부 일과삼아 할 것 없고
때 되면 좋은 벼슬은 저절로 오리니
편지 장이 쓸 줄 알면 족하다

그 아이 깡충깡충 좋아라 하고
책상자는 거들떠보지 않고
마작이며 골패라든지
장기 바둑 쌍륙에 빠져
희롱해롱 인재 못 되고 말지
절차 따라 금마 옥당 오른다 해도
먹줄 한 번 못 맞아본 나무가
어찌 큰 집 재목 될 것인가
두 집 자식 다 자포자기로
세상천지에 어진 자(능력자)라곤 없어
곰곰 생각하면 속만 타기에
또 술잔이나 들어 마신다네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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