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고향인 대구시 달성군 논공읍 노이리 갈실마을과 그 인근에 사시는 함안 조씨 동계공파 갈실종친회 일가 아홉 분이 지난 11일(토요일) 필자의 집인 지리산 화개골 목압서사에 오시어 1박2일 단합대회(?)를 하고 12일(일요일) 가셨다.
조일현(趙日顯·73) 종친회장님을 비롯해 총무인 조호곤(65) 부부와 조병욱(69) 조카님 부부, 조민규(61) 동생 부부, 조경호(57) 동생 부부가 참석했다. 갈실의 일가들은 모두 사람들이 순하며 예(禮)를 알고 정이 많기로 근방에 알려져 있다.
회장님은 논농사와 멜론 농사를 짓고 계시고, 총무는 삼성화재 논공공단 지점장을 하고 있다. 병욱 조카님 부부는 두 분 다 교사 출신이고, 아흔셋의 아버님을 봉양하고 있다. 총무와 병욱 조카님은 ROTC 선후배이다. 병욱 조카님이 선배이지만, 항렬은 낮아 총무를 “아재”라고 부르며 깍듯하게 예를 갖춘다. 민규 동생은 포클레인 작업과 석물(石物) 일을 하고 있으며, 여든여섯의 어머님을 봉양하고 있다. 경호 동생은 토목공사 일을 하고 있다. 종친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시는 조근식(72) 형님과 조성래(64) 동생은 개인적 일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낮12시까지 목압서사에 모여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각자 타고 온 차를 목압서사에 세워두고 회장님 차와 경호 동생 차 두 대로 움직였다. 화개면 소재지에 있는 버들횟집에 10명 예약을 해둔 상태여서 식당으로 이동했다. 섬진강에서 나오는 참게로 끓인 참게탕을 별미로 먹었다.
점심 식사 후 식당 맞은 편에 필자의 남동생 병훈(62)이 운영하는 쉼표하나 카페로 가 차를 한 잔씩 마셨다. 그런 다음 다리 건너 화개장터로 가 장터 구경을 한 후 화개장터 큰 표지석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장터 인근에서 식료품 등을 산 후 목압서사로 가 냉장고에 넣어놓고 쌍계사로 갔다. 쌍계사에는 대부분 왔다고 했다. 절이 온통 보수공사 중이어서 어수선했다. 고운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887년 비문을 짓고 세운 진감선사탑비(眞鑑禪師塔碑)는 아직 보수가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최치원의 사산비명(四山碑銘)의 하나로 유명한 이 비는 몇 달 전부터 보수공사를 한다고 원래 있던 자리에 없었다. 쌍계사 금당(金堂)에도 올라가 추사 김정희가 이곳에서 수행하며 차를 만들어 마시던 만허 스님에게 써준 현판 글씨도 봤다.
쌍계사에서 나와 정금차밭 위 정자에 가기로 했다. 신촌마을을 지나 도심마을로 들어가 산새소리펜션 앞을 거쳐 정자로 갔다. 정자에 올라가니 일가분들은 “전망이 너무 좋다”, “날씨가 무더운데 아래 계곡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시원하다”, “여기로 오길 정말 잘했다”라고 한마디씩 했다. 정자에서 바람을 쐬면서 화개동천(花開洞川)과 화개면 소재지를 관망하다가 아래로 내려와 차밭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정자에서 대비마을로 내려와 형제봉 활공장으로 향했다. 부춘마을로 해서 올라갔다. 부춘마을회관을 지난 활공장 표지판을 보면서 올라갔다. 해발 1,000m 고지여서 20분 넘게 올라갔다. 차 두 대에 각각 5명씩 나눠 탔다. 회장님이 운전하시는 차는 경유 지프차여서 큰 어려움은 없었는데, 경호 동생이 모는 그랜저는 가스차여서 힘이 좀 딸려 활공장까지 오르는데 애를 먹었다.
활공장 주차장에 도착하니 구름이 날리고 있어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조망대인 데크에 가도 사방을 볼 수 없었다. 시야가 좋으면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지리산 전체를 조망할 수도 있고, 아래로는 모래사장이 아름다운 섬진강을 볼 수도 있지만 이날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병욱 조카님은 “춥다. 추워”라고 했다. 사진을 잘 찍는 병욱 조카님의 아내인 주경숙(65) 질부님은 작품 사진들을 만들어 냈다. 추워서 다들 주차장으로 오는데 뒤를 돌아다보니 사람 목소리는 들리는데 구름에 가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다들 “다음에 날씨 좋을 때 다시 와야겠다”고 말했다. 고향에서 목압서사까지는 거의 3시간 거리여서 오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형제봉에서 내려와 바로 목압서사로 향했다. 도착하자 여자분들은 연빙재(淵氷齋)에서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남자분들은 마당에서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구웠다. 저녁을 먹으면서 총무와 민규 동생은 반주를 한잔씩 했다. 술 먹는 사람도 없었다. 총무가 올해부터 2년 임기의 갈실마을 이장을 맡아 마을을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하는 중이었다. 그에 따른 여러 이야기를 했다. 총무는 “마을에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이장을 맡아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마을에 있는 빈집 등을 사들여 길을 내는 사업을 달성군청에 신청을 해놓았는데 될지 어떨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슬하에 2녀 1남의 막내인 현철(29)이 논공농협 경제사업부에 근무하고 있다. 총무는 “현철이가 같은 농협의 1년 후배 아가씨와 사귀는 중”이라며, “얼마 전에 그 아가씨가 인사를 하러 왔다”고 했다. “아마 내년에 결혼할 것 같다”고 했다.
밥을 다 먹은 후 총무가 “잠시 회의를 좀 합시다”라고 했다. 갈실 문중의 재산을 법인화하는 회칙 관련 내용이었다. 몇 달 전에 총무가 초안을 만들어 필자와 병욱 조카님 등이 돌려보고 1차 수정을 했었다. 이날은 최종적으로 내용을 확정하는 것이었다. 각자 회칙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약간의 수정을 거쳐 확정해 법무사를 통해 법인화 작업을 하기로 했다. 총무가 “현일이가 바빠 이런 일은 못하겠제?”라고 물었다. 필자는 “일전에 이야기를 했더니 그런 일은 변호사가 하기보다는 법무사를 통해 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하더라”고 답했다. 그리하여 법인화 일은 법무사를 통해 하는 걸로 정리되었다.
회의가 끝나자 필자가 며칠 전 발간한 『조해훈 시인의 차(茶) 이야기- 차산 가는 길』(도서출판 푸른별)을 한 집에 한 권씩 사인해 드렸다. 그런 다음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인 11일 오전 5시쯤 남자들은 일어나 마당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자들도 좀 있다 일어나 아침 식사 준비를 했다. 특히 병욱 조카님 부부가 워낙 음식 준비를 많이 해와 아침 식사로 차려낸 음식이 20첩 반상은 족히 되었다. 추어탕까지 준비해 와 먹었다. 회장님과 병욱 조카님은 최근에 공사가 마무리된 목압교(木鴨橋) 아래 계곡물에서 씻었다고 했다.
다들 아침 식사를 맛있게 한 후 민규 동생 부부는 일이 있어 먼저 출발했다. 필자를 포함한 나머지 8명은 악양면에 있는 최참판댁으로 갔다. 이곳은 손님이 오시면 필자가 안내차 수시로 방문하는 곳이다.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에 나오는 내용을 토대로 만든 한옥이다. 매표소에서 걸어서 올라가는데 너무 더우니 다들 힘들어하셨다. 차가운 식혜를 하나씩 사 들고 먹으면서 몇 번이나 그늘에서 쉬었다. 걸어서 최참판댁을 구경하는데 더워 쉬는 시간이 많아 시간이 제법 걸렸다.
최참판댁에서 목압서사로 왔다. 남은 음식들이 많아 점심을 목압서사에서 먹었다. 점심 후 목압교 아래 계곡에서 물놀이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산새소리펜션의 최한익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펜션 아래 계곡에 평상 두 개를 놔두었으니 이곳으로 와 물놀이를 하라”고 했다. 식사 후 도심촌 계곡으로 가 물놀이를 했다. 병욱 조카님과 경호 동생은 물속에 몸을 담갔지만 회장님과 총무, 그리고 필자는 다리만 걷어 발만 물에 담갔다. 계곡 정비를 잘 해 놓아 폭포수처럼 물이 쏟아지는 곳에서 머리까지 물을 덮어쓰던 두 사람은 “물이 많이 찹다”고 했다.
물에서 나와 산새소리펜션에 잠시 들렀다가 회장님 차에 총무가 동승해 두 분은 먼저 출발했다. 나머지는 경호 동생 차를 타고 목압서사로 와 짐을 챙겨 각자 떠났다. 다들 떠나고 나니 섭섭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이렇게 모두가 바쁜 가운데서도 함안 조씨 갈실 종친회 일가들은 목압서사에 와 1박 2일을 함께 보낸 것이다. 오는 9월 1일 고향 문중 묘소 벌초 때 다시 만나기로 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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