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천 바다 한가온대 중침 세침 빠지거다
여남은 사공 놈이 끝 무딘 상앗대를 끝끝이 둘러메어 일시에 소리치고
귀 꿰어 내단 말이 이셔이다
님아 님아 온 놈이 온 말을 하여도 님이 짐작하소서 -무명씨-
넓디넓은 바다 한가운데에 작디작은 바늘이 빠졌다. 그 바늘을 여남은 명의 사공이 끝이 뭉툭한 장대를 바닷물 속에 집어넣고는 ‘영차 영차’해서 바늘귀에 꿰어 건져냈다고들 한다. 님이여, 제발 뭇 잡놈이 온갖 말을 하더라도 님이 알아서 잘 판단하소서.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8월 29일) 내용을 검색해서 읽을 때에, 자연스럽게 ‘대천 바다 한가온대 …’ 하고 위의 사설시조가 읊조려졌다. 왜일까? ‘기자회견’과 ‘대천 바다 한가온대 …’의 연상 작용을 내 자신도 쉬 납득할 수 없었다.
어떤 현상 뒤에 숨어있는 진실을 파악하는 데에는 논리적 추론보다 직관이 더 위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상을 떨자면, 직관은 거추장스런 논리적 추론이란 에움길을 버리고, 본질로 단도직입(單刀直入)한다. 선승(禪僧)의 ‘화두 타파’는 알음알이(논리적 추론)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말길이 끊어진(言語道斷) 곳에서 성취된다. 논리적 추론은 직관을 알기 쉽게 풀이하는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논평까지 읽으며 기자회견 전모를 파악할 때쯤에 그 연상 작용의 정체가 확연해졌다. 그 정체는 바로 ‘터무니없음’이었다. 윤 대통령의 현실인식이 바다에 빠진 바늘을 장대로 바늘귀에 꿰어 건져냈다는 흰소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비현실적인 문학적 과장은 ‘문학적 진실’을 선명히 드러내는 선한 영향력을 가지지만, 정책결정권자의 그릇된 현실인식은 사회구성원의 삶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The BUCK STOPS here”. 기자회견 직전 대통령 집무실에서 41분간 국정브리핑을 할 때 책상에 놓인 명패이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취임 2주년 기자회견 때도 집무실 책상에 이 패를 놓고 장시간 첫머리 발언을 했다.
바이든이 선물한 이 명패는 트루먼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 책상에 놓아두었던 것을 복제한 것이다. 트루먼 대통령은 왜 이런 명패를 만들어 자신의 책상 위에 두었을까?
“대통령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결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크고 작은, 수십 건의 결정을 매일 내립니다. 정부를 돌던 서류는 결국 이 책상에 올라옵니다. 그러면 서류가 갈 곳은 더는 없습니다. 누가 대통령이든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대통령은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할 수 없습니다. 다른 누구도 대통령을 대신해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게 대통령의 일입니다.”
1953년 1월 15일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퇴임하면서 미국 국민에게 전한 고별 연설 중 일부이다. “이 책상에 집중된 권력, 결정에 따르는 책임과 어려움에 있어 지구상에서 이런 자리는 없다”는 고뇌를 퇴임사에 담은 것이다.
귤화위지(橘化爲枳), 곧,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윤 대통령 책상의 명패는 이 고사성어의 최신판이다. ‘The BUCK STOPS here’의 심층 의미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권력/책임’이다.
트루먼 대통령은 ‘책임’에 고뇌했다. 윤 대통령은 ‘권력’에만 관심, 그 권력행사로 책임을 덮으려 한다. 고민은 없다.
현 의료대란에 대해서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비상진료체계가 원활하다”거나 “의료 현장에 한번 가보라”는 둥 의료 현장은 괜찮다는 ‘달나라 대통령’ 같은 말만 되풀이 했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구명 로비 의혹에 대해서는, “언론에서나 많은 국민들이 수사 결과에 특별히 이의를 달기 어려웠다고 본다”고 말했다. 도대체 윤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은 어떤 국민들인가?
배우자 김건희의 명품백 사건의 ‘출장 조사’도 무혐의 처분도 문제될 게 없다고 밝혔다. 수사심의위원회 회부에 대해서는 가족 관련 일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그렇다면 가족관련 특검법은 왜 거부하나.
도대체가 책임의식이나 국정 난맥을 타개하기 위한 어떤 고민의 흔적도 없다. 되레 자화자찬이다. “건전 재정 기조를 굳건히 지킨 결과, 국가 재정도 더욱 튼튼해 졌다”, “우리 경제가 확실하게 살아나고 있다”. 무슨 근거로?
가구당 실질소득은 올 상반기에 줄어들었다(통계청 ‘가계동향’). 소득 상위 20% 가구의 명목 근로소득은 올 2분기에 8.3% 증가했다. 반면에 하위 20% 가구는 7.5% 감소했다. 소득 양극화의 골만 더 깊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부자 감세’를 지속했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4%로 하향 조정하고, 내년에는 2.1%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는 근거가 도대체 무엇인가? 정말이지 ‘달나라 대통령’의 현실인식이라고밖에 할 수 없지 않은가!
‘한 번 속으면 속인 놈이 나쁜 놈이고,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이고, 세 번 속으면 그때는 공범이 된다’고 했던가!
<작가/본지 편집위원>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