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제79주년 광복절이다. 올해의 광복절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조국과 민족을 배신한 반역자 무리는 단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징치(懲治)하지 못했다. 가지 몇 개 잘렸을 뿐, 그 무리는 뿌리를 더 깊고 넓게 대한민국에 뻗쳤다.
그리고 그 깊고 넓은 뿌리에서 다시 줄기를 올리고 가지를 펼쳐 무성한 잎을 피우면서도 국민감정을 의식해 숨을 죽였다. 그러나 이제 물을 만난 것일까? 거칠 것 없이 전면에 나서서 열매까지 주렁주렁 맺고 있다.
일제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해온 ‘뉴라이트’ 출신 김형석 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이 독립기념관장에 임명되었다. 일제 강점기를 미화한 박이택 낙성대경제연구소장은 지난 2월에 독립기념관 이사가 되었다. 강제동원과 ‘위안부’의 강제성을 공공연히 부정하는 주장을 펴온 김낙년 동국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30일 한국학중앙연구원장에 취임했다.
지난 3월 취임한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이 과거에 대해 사죄하지 않는다는 기성세대의 인식을 젊은 세대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는 몰역사적인 발언을 했다. 그렇다면 역사를 왜 배우는가? 역사재단의 존립 근거를 부정하는 발언이다.
그간 진보·보수 정부를 막론하고 독립기념관장엔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애국지사의 후손 또는 독립운동사 연구의 권위자를 임명해 왔다. 중국 근세사를 전공하여 독립운동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김형석 교수를 관장에 발탁한 것은 그냥 막장 인사이다. 윤 대통령의 정체성을 웅변해 주는 것일까? 혹은 이종찬 광복회장의 말대로 용산에 일제의 밀정이 있는 것일까?
윤석열 대통령 혹은 윤석열 정부는 친일·친독재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을 중용해 왔다. 그 결과 국가교육위원회, 진실과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의 기관장을 모조리 뉴라이트가 차지했다. 독립기념관장 임명으로 그 막장 인사의 정점을 찍은 것이다. 조국 대표의 말대로 ‘5·18기념관장에 전두환을 임명한 꼴’이니까.
윤석열 대통령이나 윤석열 정부의 인사를 살펴보면 관통하는 하나의 철칙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기관의 설립 취지와 정반대의 가치관을 지닌 자들을 책임자로 보내, 그 기관의 고유 업무를 왜곡하고 무력화시키는 방식이다. 역사 관련 기관뿐 아니라, 국민권익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공수처 등의 기관장 면면을 보면 쉬 납득할 수 있다.
이는 해방 후 역사발전과 사회발전을 식민지 시대 혹은 군사독재 시대로 퇴보시키는 ‘역사에 대한 패륜 행위’이다. 이들 친일·친독재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지향점은 어디일까? 바로 ‘건국절’ 주장에 그 해답이 있다.
건국절 주창자들(대체로 뉴라이트)은 1948년 이전 임시정부는 존재 가치가 없고, 대한민국은 1948년에 건국됐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담긴 함의는 실로 경천동지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없었으니 일제의 식민 지배는 정당화된다. 따라서 독립운동은 단순한 폭력행위가 된다. 하여 친일을 했든 일제에 부역했든 아무런 도의적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반대로 독립투사들은 무장 폭도 반란군이 된다. 그러므로 건국절은 친일부역자들에게는 역사적 부채감과 독립운동가에 대한 도덕적 열등감을 한 방에 해소할 수 있는 ‘면죄부’ 혹은 만병통치약인 셈이다.
손가락으로 사슴을 가리켰는데도 말이라고 대답하는 무리도 있다. 그렇다고 사슴이 말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 시작한다.
‘나라(국가)’와 정부의 개념을 혼동하지 말자. 해방(광복) 이전 일제 강점기에도 나라는 있었다. 나라는 있으되, 주권을 강압적으로 빼앗긴 것일 뿐이다. 대한민국은 존재했고, 3·1운동 뒤 민주공화제를 채택한 민국이 있었다. 한반도라는 ‘영토’가 있었고, 이 영토에는 2천만 명이 넘는 우리 ‘국민’이 존재했다.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일 뿐이다.
친일부역자를 단죄 못한 업보로, 이제 하다 하다 ‘테러리스트 김구’란 책이 15일 광복절에 맞춰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저자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 책 ‘반일 종족주의’를 펴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다! 저들의 입장에서는 김구는 테러리스트요, 테러리스트의 수괴일 것이다. 이뿐 아니라, 미국 독립군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 남아메리카 6개국을 독립시킨 베네수엘라 독립운동가 시몬 볼리바르는 테러리스트의 수괴일 것이고, 프랑스 레지탕스는 테러리스트일 것이다.
어찌 촛불혁명으로 세계 민주주의를 선도하는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이런 저급한 역사인식이 활개 치게 되었을까? 물국필반(物極必反)! 모든 세상사는 그 극에 도달하면 반드시 제 위치로 되돌아간다. 메뚜기도 한 철이다. 하루살이와 내일을 논할 수 없고, 메뚜기와 내년을 논할 수 없다.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회적 병리현상 또한 다 지나가리라’, 가 아니다. 극복의 대상이고 그 극복의 역량을 갖춘 국민이 바로 우리이다. 극에 달한 병리현상으로 한 걸음 후퇴한 우리 사회를 제자리로 돌리고, 다시는 하루살이가 내일 논하고 메뚜기가 내년을 논할 수 없게 하기 위해, 두 걸음 더 전진하기 위해, 이 사회적 병리현상의 연원을, 다음 글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계속>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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