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언어가 극단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방식

조송원 승인 2024.09.11 10:58 의견 0

유럽 전역에서 극단주의가 큰 지지를 받으면서, 온건하고 효과적인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당이 16~17%, 반이민(反移民) 성향의 ‘사라 와겐크네흐트 연합’당이 8%, 또 다른 급진적인 반자본주의 정당이 3%의 지지를 받고 있다. 독일인의 약 1/3이 극단적인 정당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마린 르펜의 극우 ‘국민연합’과 그 동맹이 의회 의석은 25%를 차지했고, 급진좌파 ‘불복종 프랑스’당이 13%를 차지했다. 이탈리아에서는 극우 정당인 ‘이탈리아의 형제’와 ‘동맹’이 2022년 선거에서 두 정당의 합한 득표율은 35%이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극우 ‘자유’당이 27%의 지지를 받고 있다. 헝가리는 반유대주의적이고 동성애 혐오적인 음모론을 믿는 극우 민족주의자가 통치하고 있다.

극단주의자에 대한 지지가 증가하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연쇄효과까지 낳아 반체제 정당에 대한 지지를 더욱 부추긴다. 유럽과는 결이 다르지만, 대한민국에서도 윤 정부 들어서 독립운동 역사를 부정하거나 헌법질서를 스스럼없이 농단하는 극단주의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토니 맥앨리어는 『증오에 대한 치료법-폭력적 극단주의에서 급진적 연민으로의 전 백인우월주의자의 여정』의 저자이다. 우리가 생각 없이 무심코 내뱉는 말(lazy language)이 극단자주의자들을 고무시킨다는, 경험에 바탕한 통찰을 펼친다. <코리아 헤럴드>에 실린 그의 칼럼(“How language enables the extremes"/2024.8.28.)을 읽고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고 생각해, 번역하여 공유하고자 한다.

토니 맥앨리어

언어가 극단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방식

내가 캐나다 예비군에 침투한 백인우월주의자였을 때, 영국 부대에 묻혀 북아일랜드에서 두 차례 임무를 수행했던 한 장교는, 아일랜드공화국 군대에서 방아쇠를 당기고 폭탄을 설치하는 현역 군인은 단지 75명에 불과하다고 내게 말했다.

그러나 그 전투원들 뒤에는 안전가옥과 탄약 보관 창고를 제공하는 3,500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곧, 그 전투원들을 뒷받침한 것은 그들의 노력을 지지하는 훨씬 더 광범위한 커뮤니티(공동체)였던 것이다.

결국 수십 년간의 종파적 폭력은 각 진영의 소수집단에 의해 저질러졌지만, 극단주의자들이 학살을 자행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였다.

최근 영국의 폭동은 세 명의 어린 소녀가 칼에 찔려 사망한 사건 이후 반이민(anti-immigration) 시위대가 선동한 것으로, 이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폭력의 폭발은 그 폭발이 확대될 수 있도록 대중이 지지할 때 들불처럼 번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극단주의 의제에 이끌렸던 시절, 우리 운동은 미국 중산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늘려야 할 필요성과 기회를 인식했다. 극단주의 사상을 정상적인 사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도록, 우리는 이전에는 급진적으로 여겨졌던 입장을 대중이 지지할 수 있도록 충분히 대중의 입맛에 맞게 만들려고 시도했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대중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다행히 우리는 실패했다. 하지만 교훈은 남아 있다. 중심부에서의 편협함과 비인간화의 언어는 외곽 가장자리에서의 급진적 극단주의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의 여파로, 나는 분쟁의 모든 당사자 측 사람들과의 대화에 참여했다. 종종 나는 합리적인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말하는 놀라운 발언에 충격을 받았다. 이럴 때 나는 동료들에게 그들의 발언을 반복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그들의 발언을 주의 깊게 들었다. 그들의 발언은 엄청난 일반화, 비인간적인 수사법, 극단적인 폭력 행위에 대한 지지였다.

급진화와 탈급진화(deradicalization) 과정을 직접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정이 얼마나 빨리 바뀔 수 있는지, 극단주의 사상이 얼마나 빨리 정상적인 사상으로 되는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빨리 영향을 받아 증오를 정당화하는지에 대해 여전히 충격을 받고 있다.

현재 양극화된 정치 환경에서 나는 이러한 과정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양측이 이분법적 렌즈를 통해 서로가 자신의 입장이 도덕적 우월성을 갖고 있다고 가정한다. 정도는 다르지만 우리 모두는 실존적이고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당파적 위기에 대한 이야기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극단주의에 대한 지지는 노골적인 무장 호소일 필요는 없으며, 보통 훨씬 더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유명인과 뮤지션이 정치적 상대의 잘린 머리 보여주며 총격범이 다음에는 목표물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농담을 할 때, 그들은 급진적 요소에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우리가 여러 부류가 있는 전체 인구를, ‘타자’를 낙인찍고 비인간화하는 용어인 ‘범죄자’, ‘강간범’, ‘이상한’, 또는 ‘극단주의자’와 같은 이름으로 폄훼해 버리면, 우리는 정치 규범을 벗어난 개념을 암묵적으로 묵인하게 된다. 이러한 개념은 급진적 수단에 대한 수용의 창을 넓히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회에서 가장 극단주의적인 구성원들, 곧 배제하고 증오하고 고통을 주려는 자들은 우리의 말을 이용해 파괴적인 목적을 달성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거의 보편적으로 전 세계에 걸친 폭력적인 갈등은 다른 집단을 비난하는 모욕으로 시작된다. 과장된 수사(rhetoric), 배제, 미시적 공격의 점진적인 비인간화 과정을 통해 각 집단은 “적”을 자신들의 가치체계, 종교, 삶의 방식, 특권, 문화 등에 대한 실존적 위협으로 규정한다.

고정관념, 일반화, 욕설을 기본으로 하는 ‘게으른 언어’(lazy language)는 외곽 가장자리에서 불을 지피기에 충분한 연료를 공급할 뿐이다.

사회구성원 중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가치와 인간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했듯이, “괴물과 싸울 때, 당신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우리는 극단주의의 주장에 우리 목소리를 보태주어 그 주장에 명분을 실어주는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 특히 분열을 일으키는 사안에 대해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규범이 재조정된다.

이것은 우리가 자신에게서 더 나은 것을 요구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어려운 시기에 자신을 위로하거나 호의를 얻기 위해 부주의, 두려움, 치우친 판단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일이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말을 선택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안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미국 전역을 널리 여행하며 영화 “혐오의 치료법 - 아우슈비츠를 증언하다”를 상영하고, 고등학생들이 타자화, 비인간화, 양극화(당시와 현재)의 과정을 탐구할 수 있도록 돕는 커리큘럼을 시행했다.

우리는 가장 민주당 텃밭인 주(state) 가운데서도 가장 민주당 텃밭인 군(county), 그 군 중에서도 가장 민주당 텃밭 읍면(town)인 버몬트 주 배틀보로에서 시작하여, 가장 공화당 텃밭인 주 가운데서도 가장 공화당 텃밭인 군, 그중에서도 가장 공화당 텃밭 읍면인 아이다호 주 리그비까지 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 두 장소는 세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학생 참여자들의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모두 자녀들에 대한 비슷한 걱정을 표출한다.

그들은 자녀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갈망하며, 자녀들이 유망한 미래에 접근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에 대한 생각은 다르지만, 공통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대 그들”이라는 사고방식을 채택하게 되면, 우리는 공유된 목표를 향한 진전이 일어날 수 있는 이 공간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 패턴을 깨뜨릴 때가, 우리 모두가 기회를 잡는 때이다.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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