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국민에 대한 언어폭력

조송원 승인 2024.09.08 13:31 의견 0
[픽사베이]

“대통령을 향해 조롱과 야유,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국회에 가서 곤욕을 치르고 오시라고 어떻게 말씀 드릴 수 있겠냐.”, “국회가 이성을 되찾고 정상화하기 전에는 대통령께 국회 가시라는 말씀을 드릴 자신이 없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국회 개원식 불참을 건의한 이유이다. 4일 이 발언을 한 대통령실 강당 직원 조회에서 윤석열 정부가 “대한민국을 정상궤도로 올려놨다”는 자화자찬도 했다.

윤 정부 들어 하도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넘쳐나다 보니, 정 실장의 발언은 군색한 변명으로 치부, 문제 삼는 이가 드물다. 필자는 ‘군색한 변명’쯤으로 귓등으로 흘리기에는 너무 심각한 함의를 지니기에 하나씩 짚어 보기로 한다.

‘대한민국을 정상궤도에 올려놨다’고? ‘눈 떠 보니 선진국’을 ‘자고 나니 후진국’으로 전락시킨 윤석열 정부의 현실인식이다. 국민 대다수는 얼빠진 주장임을 안다. 그러나 식민지 강점기를 정당화하는 무리들을 각급 기관장에 앉힌 정부임을 명심하자. ‘토착왜구’나 ‘밀정’의 입맛에는 착착 붙는 말일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야유,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국회의 개원식에 참석할 수 없다고? ‘조롱과 야유/언어폭력’은 구분하자. 대통령이건 일반시민이건, 자신의 행위에 걸맞은 평가를 받는다.

‘응급실 뺑뺑이’로 애먼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의료현장은 문제없다’라고 말하는 대통령을 조롱과 야유라도 하면서 분통을 삭여야지, 폭동을 일으키란 말인가. 한때 ‘노 통’을 씹어대는 게 ‘국민 스포츠’였다.

17대 국회가 개원할 때 한나라당 의원 20여 명은 노 대통령이 입장할 때 일어서지도 않았다. 일부는 웃고 떠들었다. 이런 노골적인 무시와 조롱을 감내하며 노 대통령은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 섰다. 정 실장도 그때 국회의원이었다.

대통령의 의중을 비서실장이 읽은 것일까, 비서실장의 간언을 대통령이 수용한 결과일까? 업어 치나 메치나 도찐개찐(도긴 개긴)으로 둘 다가 협량함, 옹졸함을 방증할 뿐이다. 하기야 부처(夫妻)가 민중의 놀림가마리가 된 지 오래라, 국회라는 무대에서 공개적인 조롱과 야유를 감당하기에는 그릇에 물이 넘칠 터이다.

언어폭력도 폭력이다. 범죄 구성 요건일 수도 있다. 대통령의 무능에 대해 국회에서 의원들이 조롱과 야유를 보낼 것임은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범죄행위인 언어폭력까지 예단하는 것은 한참 본질에서 벗어났다. 건장한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추정하는 것과 같은 오류이다.

예사로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이 듣는 사람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폭력임을 잘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진석 실장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조선은 일본군 침략으로 망한 게 아니라, 안에서 썩어 문드러져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

2022년 10월 11일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던 정진석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일본의 평범한 시민도 이런 주장은 안 한다. 일부 극우주의자들의 주장과 판박이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 특히 독립운동가 후손의 가슴을 후비는 비수 같은 말이다. 이런 게 정녕 언어폭력이 아니고 무엇이랴.

“(윤석열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정상궤도에 올려놨다.”는 말도 언어폭력에 버금간다. 동네 막걸리 집에서 들어도 욕지기가 나올 판인데, 대통령 비서실장 입에 이런 말이 나오다니, 정말 막장이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언어폭력은 ‘국회가 이성을 되찾고 정상화되기 전에는…’이다. 국회가 이성을 잃었다는 말은 국민이 제정신이 아니고 미쳤다는 말과 진배없다. 국회는 민의의 전당이고,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자, 대변자이니까 말이다.

지금 국회가 모처럼 제 역할을 한다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찬사를 보내고 있다. 정상이다. 이런 정상을 비정상이라 판단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비정상적인 것이다. 공사(公私)를 막론하고 개인적 이익을 최우선시하고, 그 사리(私利)를 보호해줄 당파적 논리에 매몰되어 있는 비정상적인 사람이다. 혼군(昏君)과 간신은 아삼륙인 법이다.

정 실장의 언어폭력은 단지 국회와 국민을 폄훼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어느 사회에건 ‘극단주의자들’이 존재한다. 극단주의자들의 준동은 사회구성원 내 갈등을 고조시키고, 치르지 않아도 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케 한다.

문제는 정 실장의 언어는 폭력성을 넘어 이 극단주의자들의 발호에 마중물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다음 글에서 ‘언어가 어떻게 극단주의를 가능케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조송원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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