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미망(迷妄)과 선견지명

조송원 승인 2024.09.05 16:55 의견 0

송욱이 취하여 자다가, 아침에 해가 뜬 후에야 잠에서 깨어났다. 잠자리에 누워서 들으니, 솔개가 울고 까치가 지저귀고, 마차 달리는 소리가 시끄럽고, 울타리 밑에서는 절구 소리가 들리고, 부엌에서는 그릇 씻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과 어른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와 비복들의 욕지거리 기침 소리도 들렸다. 문밖의 일들은 모두 다 분별할 수 있는데, 오직 자기 목소리는 없었다. 정신이 흐릿해져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집안사람들은 다들 있는데, 왜 나만 없을까?”

저고리는 옷걸이에 걸려 있고, 바지는 횃대에 걸려 있고, 삿갓은 벽에 걸려 있고, 허리띠는 횃대 머리에 걸려 있었다. 책들은 책상 위에 있고, 거문고와 비파는 벽에 기대어 있다. 거미줄은 들보에 얽혀 있고, 파리는 들창에 붙어 있다. 방 안의 물건들은 모두 그대로 있는데, 나만 보이지 않는다.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침상을 보니, 베개는 남쪽에 놓여 있고, 이부자리는 속이 들여다보였다. 이는 필시 송욱이 발광하여 벌거벗은 채로 뛰쳐나간 것 같다. 몹시 슬프고 가련한 생각이 들었으나, 또한 욕이 나오고 우습기도 했다.

드디어 옷이나 입혀주려고 그를 찾아 나섰다. 의관을 품에 안고 거리를 두루 헤맸으나, 송욱이란 놈은 보이지 않았다. -연암집/권7/종북소선/염재기-

검찰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뇌물수수’ 피의자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어떤 뇌물인가? 참 생뚱맞다. 문 전 대통령 부부는 딸 부부의 생계비를 일부 부담해왔는데, 사위 서아무개 씨의 취업으로 더 이상 생활비를 지원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서 씨가 받은 월급은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에게 준 뇌물이 된다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 부부가 서 씨 부부에게 언제부터 언제까지, 얼마나 생계비를 지원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딸 부부 생계비 지원이 사위 취업으로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해서, 사위가 받은 월급이 장인이 받은 뇌물이라니, 도대체가 이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일인가?

뇌물죄는 ‘직무관련성’과 ‘대가성’만 입증하면 된다. 제3자 뇌물죄는 여기에다 ‘부정한 청탁’까지 추가로 입증해야 한다. 따라서 검찰이 사위 취업 과정에서 문 전 대통령의 ‘청탁’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3자 뇌물’이 아닌 ‘직접 뇌물’죄를 적용했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곧, 사위와 장인은 하나의 경제공동체다. 그러므로 사위가 받은 월급도 결국 장인이 받는 돈이다. 하여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직접 뇌물을 받은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사위와 장인 관계보다는 부부가 더 경제공동체이므로, 부인이 300만 원짜리 명품백을 받았다면 그 남편은 직접 뇌물을 받은 게 아닌가? 수사는 해봤나?

검찰은 ‘검찰발’ 수사 정보를 언론에 흘리는, 예의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 검찰의 수사기록을 직접 본 것처럼 계좌추적 내역과 관련자 진술, 돈의 액수, 그 이유 등을 조선일보가 상세해 보도했다.

피의사실 공표는 엄연히 범죄행위이다. 문제는 검찰이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검찰 자신이 자신들을 기소할 턱이 있나. 기소하지 않으니 실제 처벌 받을 우려가 없다. 하여 피의사실 공표를 편의대로 남용하는 것이다.

검찰이 2018년의 일을 왜 지금 수면 위로 띄워 올리는 것일까? 이젠 학습효과로 누구나 짐작할 것이다. 윤석열 정권이 위기 국면에 처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지율을 계속 하락하는데, 추석이 다가온다. 뭔가 관심을 돌릴 ‘거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나중에 법원 판결이 어떻게 나든 말든, 일단 지금 수사·기소 국면에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면 그만인 것이다.

연암의 우화 속 주인공 송욱처럼, 검찰은 아직도 ‘자기’를 찾지 못하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다. 왜 국민들이 기소·수사 분리를 넘어 아예 검찰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지,를 아직도 모른다. 하기야 사람은 죽기 전에는 저승을 모르는 법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 하나 더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수사·기소하는 검찰은 과연 윤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것일까? 차라리 윤 대통령을 나락으로 처박을 선례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과거의 어떤 정권도 이런 짓을 못했습니다. 겁이 나서. 근데 여기는 겁이 없어요. 보통은 겁나서 못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대통령 임기 5년이 뭐가 대단하다고. 너무 겁이 없어요, 하는 거 보면…”

윤 대선후보가 2021년 12월 29일 ‘새시대준비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선견지명, 정말 탁월하지 않은가!

대선 기간에도 윤 후보는 ‘본부장’(본인, 부인, 장모) 리스크에 시달렸다. 그 리스크가 해소된 것은 하나도 없다. 되레 리스크의 몸집만 불렸다.

얼마지 않아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올 것이다. 내려옴은 종점이 아니라 시발점이다. 그 의혹의 수와 중대성을 감안할 때, 아마 그 수사와 재판은 평생 지속될 것이다.

“여러분이 만약 기소를 당해 법정에서 상당히 법률적으로 숙련된 검사를 만나서 몇 년 동안 재판을 받고, 결국 대법원에 가서 무죄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의 인생이 절단난다.

판사가 마지막에 무죄를 선고해서 여러분이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다. 여러분은 법을 모르고 살아왔는데 형사법에 엄청나게 숙련된 검사와 법정에서 마주쳐야 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재앙이다. 검찰의 기소라는 게 굉장히 무서운 것이다.”

윤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021년 11월 25일 ‘국민의힘 서울캠퍼스 개강총회’ 행사에서 대학생들과 대화하며 한 말이다.

이 또한 탁월한 현실인식이지 않은가!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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