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155) 지리산 천왕봉~장터목~세석평전~벽소령 구간 완주

조해훈 승인 2024.10.13 10:38 | 최종 수정 2024.10.13 10:54 의견 0
천왕봉에 오르기 위해서는 법계사 입구에서 왼쪽으로 가야한다. [사진= 조해훈]

노고단~벽소령 이어 천왕봉~벽소령 종주
중산리 출발, 법계사~천왕봉 코스가 가장 힘들어
장터목대피소 1박, 세석 거쳐 벽소령서 의신마을

지난 9일 오전 7시 5분 하동버스터미널에서 진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렸다. 이 터미널에서 다시 오전 8시 40분에 산청 중산리로 가는 버스를 타고 중산리에 내리니 오전 9시 45분이었다. 중산리에서 두류동 탐방지원센터까지 20여 분 걸어갔다. 여기서 순두류(경남환경교육원)까지 5분가량 버스(요금 2,000원)를 타고 갔다. 오전 10시 버스가 출발했으나 이 버스가 내려와 10시 30분에 등산객들을 태우고 올라갔다. 10시 버스를 타지 못한 등산객들이 사무소에 요청해 임시로 운행한 것이다.

순두류에서 천왕봉까지는 4.8km이다. 오전 10시 40분에 ‘생태탐방로’라고 적힌 문에 들어서면서 산행을 시작했다. 순두류에서 산행을 시작하다 보니 예전보다 천왕봉 올라가는 시간이 단축됐다. 로타리대피소(1,335m)까지 2.7km로, 계속 오르막이어서 쉽지 않다. 중간에 아리랑고개에서 쉬었다. 거제도에서 단체로 온 등산객들에 섞여 올라갔다. 쉬엄쉬엄 로타리대피소에 도착하니 낮 12시 22분이었다. 로타리대피소는 공사 중이어서 이용할 수 없었다. 여기서 조금 위에 있는 법계사(法界寺) 입구에 도착하니 낮 12시 29분이었다.

천왕봉에 오른 등산객들. [사진= 조해훈]

법계사에 들어가지 않고 절 입구에서 왼쪽으로 해 천왕봉으로 올라갔다. 지금까지 올라온 길도 힘들었는데, 법계사부터 천왕봉까지는 길이 더 가파르고 힘이 든다. 대부분 경사가 심한 돌길이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운동화를 신고 등산하는 아주머니들이 있는데 발목을 접질릴 수 있으니 가능하면 발목까지 오는 등산화를 신는 게 좋다. “아이고, 죽겠네. 케이블카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주머니들은 불평불만이 많으시다. 젊은이들도 “헉! 헉!” 댄다. 그만큼 힘들다. 필자는 당뇨가 심하나 체력 보충을 위해 단 걸 계속 먹으며 올라갔디. 단풍이 조금씩 들고 있었다.

대학 1학년 때 백무동에서 천왕봉에 올라왔다가 중산리로 내려가면서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 뛰다 보니 며칠 뒤 오른쪽 발 엄지발가락이 빠진 경험이 있다.

지난 9일 산청군 중산리에서 출발해 천왕봉 정상에 오른 필자. [사진= 목압서사 제공]

쉬면서 올라 마침내 천왕봉에 다다랐다. 오후 2시 45분이었다. 4시간 걸렸다. 법계사에서부터 천왕봉까지 내리는 비의 양은 많지 않지만 빗방울이 굵었다. 천왕봉 표지석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어떤 아저씨가 “사진 한 장 부탁드립니다”라고 해 찍어 드렸다. 그러니 “한 장 찍어 드릴게요”라고 해 필자도 다행히 사진을 한 장 찍을 수 있었다. 운무에 가려 천왕봉 아래는 잘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동안 천왕봉은 대략 30번은 오른 것 같다.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46년간 말이다. 30대 후반부터 10년 정도는 거의 해마다 새해 일출 사진을 찍느라 전날 중산리에서 올라와 천왕봉에서 추위에 덜덜 떨며 밤을 지새웠다.

천왕봉에서 장터목대피소로 가는 길에 운무 속에 서 있는 고사목들. [사진= 조해훈]

여하튼 천왕봉에서 물 한 잔 마시고 장터목대피소로 출발했다. 천왕봉에서 장터목대피소까지는 1.7km로, 암반이 많지만 내려가는 코스라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또한 전망이 좋은 데다 볼거리가 많다. 특히 고사목이 곳곳에 서있다. 죽은 나무들이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천왕봉에서 500m 내려오면 통천문(通天門)이 있다. 큰 암석과 어디서 굴러온 바위인지 둥그스름한 큰 바위가 암석에 기대 서 있어 그 밑으로 등산객들이 통과한다. 장터목에서 올라오면 그 구멍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그래서 통천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알 수 없다. 제석봉으로 내려오면 고사목이 더 많이 보인다. 혼자 걷다 보니 운무 속에 서 있는 고사목이 마치 사람이 서 있는 듯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오후 4시 9분에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했다. 비가 제법 내려 통천문에서부터 배낭에 레인커버(rain cover)를 씌우고 대피소까지 갔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세석대피소로 가는 중에 피어있는 구절초. [사진= 조해훈]

장터목이란 명칭은 산청군 시천면 사람들과 함양군 마천면 사람들이 물물교환과 물건을 사고팔던 곳에서 유래되었다고 표지판에 적혀 있다. 장터목대피소는 1970년 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지리산 산장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무소에 신분증을 보여주고 “예약했습니다”라고 하니, 1호실 20번 잠자리를 정해주었다.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비가 조금씩 내려서인지 사위가 약간 어둑했다. 대피소 마당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저녁으로 빵과 치즈를 먹었다. 남곡 여기성 선생님이 일이 있어 동행하지 않고 필자 혼자 오다 보니 빵만 들고 왔다. 계속 빵만 먹어 속이 더부룩했다. 그래도 먹을거리가 빵밖에 없었다. 빵을 먹은 후 테이블에 앉아 주변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날씨가 맑지 않아 풍경 감상은 그다지 할 수 없었다. 대피소에 도착한 등산객들이 라면을 끓여 먹는 냄새가 “먹고 싶다”는 욕망을 일게 했다.

지난 10일 아침 장터목대피소 모습. [사진= 조해훈]

날씨가 조금 춥게 느껴져 숙소로 들어왔다. 대피소 건물 입구에 ‘담요 대여 폐지’라는 글씨가 크게 붙어 있었다. 예전에 장터목대피소에서 잘 때는 담요를 빌려 덮고 잤다. 그냥 딱딱한 나무판 바닥의 좁은 공간에 한 사람씩 누워 자야만 했다. 군대 시절 내무반의 잠자리보다 규모가 작고 불편했다. 침낭을 가져온 사람은 침낭을 덮고 누워있었고, 침낭이 없는 사람은 바닥에 옷을 입은 채 그냥 누워 있었다. 필자는 침낭이 커 대용으로 다이소에서 산 얇은 분홍색 비닐을 가져와 깔았다. 몸은 피곤했지만 잠이 들 시간은 아니어서 잠시 누워 있다가 밖에 나가 서성거리기를 반복했다.

밤이 되자 1, 2층 구조로 된 잠자리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꽉 누웠다. 각자 잠자리는 한 사람이 바로 누우면 꽉 찼다. 몸을 틀면 옆 사람과 부딪혀 꼼짝없이 그대로 누워 자야만 했다. 벌써 사람들이 코를 골기 시작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걱정이 됐다. ‘오늘 밤도 잠 들기는 걸렀구나’라는 생각에서였다. 필자의 잠자리는 1층 중간 정도의 위치였다. 오른쪽과 왼쪽에 누운 사람들이 탱크가 굴러가는 소리를 냈다. ‘저렇게 자면 아침에 개운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5시까지 필자는 잠을 못 자고 숙소 밖으로 10번은 나왔다. 잠자리에 앉아 있다 바깥으로 나와 생수병에 든 물로 치약 없이 칫솔질을 하고 비누를 사용하지 않고 고양이 세수를 한 후 짐을 챙겨 대피소 마당의 테이블에 앉았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오늘은 세석대피소를 거쳐 벽소령대피소까지 가야 했다. 벽소령대피소에서 삼정마을까지 내려가 거기서 의신마을까지 걸어 오후 4시 20분 버스를 탈 예정이다.

오전 6시쯤 되자 사방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아직 일출 전이다.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일출이 시작되려는지 동쪽 하늘이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다. 마주치는 등산객은 한 명도 없었다. 능선 양쪽 다 낭떠러지인데 가는 방향 왼쪽 숲에서 곰들이 싸우는지, 배가 고파 우는 소리인지 계속 크게 들렸다. 겁이 났다. 저기서 뛰어 올라오면 금방 능선으로 올라올 거리였다. 더 앞으로 갈 것인지, 어떨지 선 채로 고민했다. 벽소령대피소에 1박 예약도 하지 않은 상태인데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 가기로 했다. 능선을 벗어나 숲길로 들어서니 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한참 가니 세석대피소에서 오는 등산객 두 사람을 만났다. 날씨가 맑지 않아서인지 결국 아름다운 일출은 보지 못했다.

세석대피소 전경. [사진= 조해훈]

어제보다 단풍이 좀 더 들었다. 오전 7시 9분 연하봉(1,710m)에 이르렀다. 장터목대피소에서 겨우 800m 온 것이다. 돌길이 이어졌다. 1시간 정도 더 걸었다. 어떤 등산객이 쪼그려 앉아 뭘 찍는지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걸 보고 가다 그 사람 뒤에서 그대로 사정없이 철버덕 넘어졌다. 왼쪽으로 넘어져 왼쪽 손목이 아팠다. 사진 찍던 사람도 놀라 필자를 일으켜 주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투구꽃을 찍고 있었다. 약간 절룩거리며 걸었다. ‘왼쪽 손목과 손의 뼈가 괜찮을까?’ 걱정하며 걸었다. 오전 8시 34분에 촛대봉(1,703m)에 도착했다. 여기서 세석대피소까지는 700m이다. 촛대봉에서 10분 더 가 세석평전(細石平田)에 도달했다.

6·25 전쟁 때 빨치산 토벌 전까지는 이곳 세석평전에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세석평전은 땅이 평평하고 물이 많아서 살 만했다. 1862년 일어난 진주민란의 연루자 일부가 추적을 피해 세석평전으로 숨어들어 살았다고 한다. 또 1916년 진주 출신으로 일본 교토(京都)전문대학교를 졸업하고 산을 좋아했던 우천 허만수(宇天 許萬壽) 씨가 33세 되던 1949년께부터 이곳 세석평전에 움막을 짓고 생활했다고 한다. 지금은 습지 상태로 보호되고 있다.

오전 8시 55분 세석대피소에 도착했다. 여기서 청학동까지 10km, 필자가 내려가야 할 의신마을까지 대성골로 내려가면 9.1km, 산청 시천면 거림까지는 6.0km이다. 대피소 마당 테이블에 앉아 빵을 먹고 물을 마시며 잠시 쉬다가 일어서 벽소령으로 출발했다. 세석대피소에서 벽소령대피소까지는 6.3km인데, 그다지 힘든 곳이 많이 없어 걸을만 하다. 세석대피소에서 2.2km 가면 칠선봉에 다다른다. 큰 바위 하나가 피사의 사탑처럼 약간 기울어져 있다. 여기서 더 가면 내리막과 오르막이 있다. 돌이 잘 깔려 있지만 쉬면서 가다 보면 그다지 힘들지는 않다. 이 구간은 전망이 좋다. 오전 11시 44분에 선비샘에 도착했다. 벽소령대피소 1.7km 앞둔 지점이 덕평봉(1,478m)이다.

여기서 35분가량 더 가면 ‘(구)벽소령길’이라는 군사작전 도로를 만난다. 작전도로는 1968년에 착공하여 1971년에 준공하였으며, 당시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신흥마을과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를 잇는 벽소령 종단도로이자 ‘1023 지방도’였다. 하지만 1987년 국립공원공단 설립 후 이 구간은 폐쇄되고 현재는 자연회복 중에 있다고 표지판에 적혀 있다.

벽소령대피소. [사진= 조해훈]

드디어 낮 12시 44분에 벽소령에 도착했다. 이번 산행에 동행하지 못한 남곡 여기성 선생님과 오후 6시에 저녁을 함께 먹기로 해 의신마을에서 오후 4시 20분에 출발하는 하동농어촌버스를 타야만 했다. 대피소에서 의신마을까지 6.8km이다. 그러다 보니 빨리 걸을 수밖에 없었다. 대피소 마당에 앉아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바로 삼정마을로 하산했다. 지난 10월 4~5일에 노고단~연하천~벽소령 구간 산행 때도 벽소령대피소에서 삼정마을로 내려가 의신마을에서 같은 시간 버스를 탔다.

삼정마을까지 뛰다시피 내려갔다. 삼정마을에 도착하니 오후 2시 15분이었다. 여기서 의신마을까지는 산길이 아니라 거의 평지 포장길이다. 의신마을에 들어서니 오후 3시 5분이었다. 버스 타기까지 1시간 여유가 있다. 버스종점 앞에 있는 찻집에서 차를 한 잔 마시며 기다리다 버스를 타고 식당에 가 남곡 선생님을 만나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렇게 하여 두 차례에 걸친 2박 4일간의 지리산 노고단~천왕봉 구간 종주를 하였다. 지리산 종주 중 ‘성중종주(35km)’를 마친 것이다. 지리산 종주 코스로는 이 성중종주 외에 ‘화대종주(44km)’가 있다. ‘화대종주’는 대학생 때부터 신문사 재직 때도 그랬지만 수차례 탔다. ‘화대종주’는 ‘대한민국 3대 종주’에 들어간다. 3대 종주 코스는 지리산 화대종주, 덕유산 육구종주, 설악산 대종주이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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