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전쟁이 나면, 두 번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 통일부 장관 김연철의 칼럼 제목이다(한겨레신문/2024.10.30.). 섬뜩하다. 한반도에서 두 번째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전쟁이 난다면 공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쟁을 막았던 억지 구조에 변화가 발생했다고 김 전 장관은 주장한다. 세 가지 이유 중 특히 이 한 가지가 유독 우려스럽다.
전통 우파와 뉴라이트의 차이이다. 1968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술을 많이 마셨고, 술자리에서 온갖 지시를 내렸다. 장군들은 술에 취한 대통령의 보복 공격 명령을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려 위기를 넘기곤 했다. 그때는 술에 취한 대통령을 말리는 관료가 존재했다.
뉴라이트와 전통 우파는 다르다. 뉴라이트는 전향의 열등감 때문에 대부분 극단적인 역사관을 갖고 있다. 전쟁 세대인 전통 우파는 명분이라도 애국심을 내세웠지만, 뉴라이트는 대부분 사익을 추구한다. 뉴라이트는 과도하게 정파적이고, 공동체 윤리가 없다. 치명적인 약점은 무능이다.
국제 관계와 미국의 외교 정책을 다루는, 미국 외교협회가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의 2024년 11월/12월 치의 ‘표지 이야기’가 전쟁의 세계(World of War)이다. 이에 대한 여러 에세이 중 하나가 MIT 정치학부 조교수 에릭 린-그린버그의 <전쟁은 돌발 사고가 아니다>(Wars are not accidents)이다.
전쟁 위기에서 지도자 혹은 최고 정책 결정권자가 위기를 관리하면 충분히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한데 김 전 장관이 주장했듯, 무능한 대통령과 무능한 참모로 구성된 이 정부가 과연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의식과 불안함과 우려를 갖고 에릭 린-그린버그의 에세이를 정독했다. 번역하여 공유하고자 한다.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전쟁은 돌발 사고가 아니다
악화되는 상황에 직면하여 리스크 관리하기
7월에 테헤란에서 하마스의 최고 지도자를 이스라엘이 암살한 일, 여름 동안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에 침공해 들어간 일, 그리고 최근 남중국해에서 점점 더 적극적인 중국의 항공 및 해상 방해는 오랫동안 끓어오르던 갈등이 더 광범위한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이러한 도발로 인해, 분석가들은 군사적 돌발 사고와 전략적 오해의 위험이 커진 것을 우려하고 있다. 분석가들은 이런 종류의 사건이 정책 입안자들이 통제력을 잃고 싸울 의도가 없는 전쟁에 휘말릴 때까지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 8월 미국 국무장관 안토니 블링컨이 말했듯이, 중동에서의 공격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고,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위험한 결과의 리스크를 높인다.”
도발적 사건으로 인해 위기가 더욱 격화될 수는 있지만, 실제도 의도치 않게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역사를 살펴보면, 정책 입안자들의 승인 없이 충돌이 발생한 사례는 거의 없으며, 특히 위험이 높은 상황에서 지도자들은 전투를 피하기 위해 자제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소련군이 미국 정찰기를 격추한 후,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은 보복을 보류하고, 전쟁 직전에서 물러났다. 갈등이 격화할 위험에 직면하게 되면, 경쟁자들은 종종 위기를 완화할 탈출구를 찾는다. 이런 벼랑 끝 전술에는 신중한 계획이 필요하다. 국가는 적대국이 중요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임계점을 넘지 않으면서도, 적대국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만큼만 압력을 가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더라도, 적색선을 넘는다고 해서 분쟁이 불가피해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1월 이란 지원 드론 공격으로 미국 병사 3명이 사망해도 미국과 이란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4월에 이란이 이스라엘에 대한 대량 드론과 미사일 공격도 두 나라 사이에 전면적인 충돌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양쪽은 지도자들은 체면을 잃는다거나 약함을 드러내지 않고 위기의 순간에 자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지도자들은 어떻게, 언제, 어디서 라이벌에게 압력을 가하면서 보복이 격화되는 것을 피할지,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또한 지도자들은 적대자들과 직·간접적인 의사소통 수단을 구축하여, 오해의 소지를 줄이는 반면, 양측 모두가 자신들의 강압 행위에서 성공했다고 주장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압박과 자제의 작용과 반작용을 이해하면, 지도자들은 임박한 전쟁에서 물러날 수 있다.
비밀 역사
의도치 않는 분쟁 악화에 대한 두려움은 국제관계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정치학자들은 군사 동원 계획으로 인해 유럽 국가들이 “몽유병자처럼” 1차 세계대전에 돌입했는지에 대해 수십 년 동안 논쟁을 벌여왔다.
냉전 때, 정책 입안자들은 무기의 오작동, 조기 경보 시스템의 잘못된 경보, 그리고 군 장교의 무단 행동이 핵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부 학자들은 군사 시스템의 기술적 실패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전쟁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했다.
다른 학자들은 군사적 행동으로 인해, 정치 지도자들이 위기에서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되면 국가는 분쟁에 빠져든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학자들은 지도자들이 라이벌의 제한된 행위를 실존적 위협으로 잘못 인식할 때, 강력한 군사적 공격으로 반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학자들은 의도치 않은 전쟁으로 가는 다양한 경로를 설명하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이론의 뼈대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곧, 정책 입안자들은 전쟁 확대에 대한 통제권이 제한적이라는 가정이다. 이 연구자들에 따르면, 국가는 우연이나 군대의 연쇄 반응으로 인해 자신들이 싸우기를 선택하지 않은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그러나 이는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냉전이 가장 고조된 시기에도 미국과 소련은 우발적인 충돌에 빠지지 않았다. 대신에, 지도자들은 항상 출구를 찾아냈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소련 방공망은 모스크바의 승인 없이 쿠바 상공에서 미국 정찰기를 격추했고, 미국은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보복 공습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고려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와 합동참모본부는 공습으로 핵탄두의 교환이 시작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보복을 자제했다. 1983년 또 다른 예외적으로 긴박했던 상황에서 소련은 나토의 군사훈련을 서방의 선제 핵 공격을 위한 준비로 잘못 판단하여 군대를 동원했다. 그러나 미군 고위 지휘관들은 다시 대응을 유보했다.
이 각각의 사례에서 보면, 정책 입안자들은 긴장 고조의 재앙적 의미를 인식하고, 결국 전쟁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계속>
<작가, 본지 편집위원>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