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가?

조송원 승인 2024.10.18 11:35 의견 0

모든 현실에는 그 ‘현실 됨’의 원인이나 이유가 있다. 사람은 사회 속의 존재이다. 국가나 사회를 넘어선 개인적 성장은 대부분의 경우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의 한 시민이 팔레스타인이나 러시아나 중국이나 심하게는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지금 누리는 자유와 생활수준 그리고 개인적 성취가 가능할까?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은 국가의 흥망을 ‘정부의 질(quality)’에서 찾는다. 곧 ‘포용적 제도’를 가지느냐, ‘착취적 제도’를 가지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어떤 정부와 제도를 가지느냐는 정치의 영역이다. 이는 경제문제도 정치에 달렸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위태위태한 정치, 망가진 정부의 대한민국 현실을 직시하면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통찰이 가슴에 깊이 와 닿는다.

<이코노미스트>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연구 업적에 대한 알짬을 간략하게 짚었다(‘An economics Nobel for work on why nations succeed and fail’/Oct 14th 2024). 이에 번역하여 공유하고자 한다.

국가가 성공하고 실패하는 이유에 대한 연구로 경제학 노벨상 수상

대런 아세모글루, 사이먼 존슨, 제임스 로빈슨이 가장 중요한 질문을 다루었다.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할까? 어린애 같은 호기심으로 가득 찬 이 질문은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하다. 한 사람의 생활수준은 대부분의 경우 재능이나 대단한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경제성장 모델은 생산, 노동, 자본, 그리고 최근에는 기술이나 아이디어의 축적에 초점을 맞췄다. 노동자 한 명당 자본 재고(capital stock)가 클수록, 그리고 그 자본 재고를 더 생산적으로 사용할수록, 그 나라는 더 부유해질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간극이 남는다. 왜 어떤 나라는 다른 나라들보다 이런 요소를 더 많이 축적할 수 있었을까?

올해의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스베리게스 릭스방크 경제학상(일반적으로 경제학 분야의 노벨상이라고 불림) 수상자들은 그것은 정부의 질(quality)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2001년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의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 시카고대학교의 제임스 로빈슨 이 세 사람은 경제학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 중 하나인 “비교 발전의 식민지 기원 : 경험적 조사”를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그들은 제도에 대한 도식(schema)을 개발하여, “포용적”(번영을 공유하려고 시도하는 제도)과 “착취적”(소수 집단이 나머지 인구로부터 빼앗는 제도)으로 구분했다. 포용적 제도는 인적 자본과 물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장려한다. 착취적 제도는 이를 억제한다.

경제학자들은 자유주의가 발전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이 자유주의를 촉진한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구 변수 접근법”을 사용했다. 이 접근법은 정착민 사이의 사망률 차이를 이용하여, 어떤 유럽 식민지가 포용적 제도를 발전시키고 어떤 식민지가 착취적 제도를 발전시켰는지를 확인했다.

열대 질병에 대한 유럽인의 적응력 부족 등으로 인해 정착민 사망률이 높은 식민지에서는, 식민지 강국들이 토착민 노동력을 착취했다. 이는 지역 주민을 노예로 삼았던 남미의 엔코미엔다 시스템이나 벨기에령 콩고의 고무 농장의 형태일 수 있다. 한편, 영어권 국가인 미국, 호주, 캐나다에서는 사망률이 낮았으므로, 식민지 강국은 사유재산과 자유시장을 통해, 생산한 부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유럽 정착민을 끌어들였다.

따라서 식민지들 사이에 “운명의 역전”이 있었다. 도시화의 정도를 기준으로 했을 때 1500년에 가장 부유했던 곳이 현대에 와서는 가장 가난한 곳이 되었다. 이 결과는 북미와 오스트랄라시아(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및 그 부근 여러 섬) 식민지의 “새로운 유럽”을 제외하고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아세모글루, 존슨, 로빈슨은 한때 부유했던 식민지는 착취 방법을 발전시켜 더 큰 부를 축적한 반면, 인구가 많은 식민지에서는 광산과 농장에서 강제로 일할 수 있는 노동력을 제공하였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후의 논문에서는 남북한의 “준실험”으로 연구를 확대했는데, 여기서는 반도의 절반은 부유하고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고, 다른 절반은 권위주의적이고 빈곤한 국가가 된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후에도 토착 엘리트들은 착취적 제도를 인수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는 왜 가난한가?”라는 논문의 일부로, 아세모글루와 로빈슨은 가나의 코코아 붐을 조사했다. 영국 통치하에서 식민지 개척자들(colonists·인도의 영국인 등-역자)은 사유재산의 출현을 촉진하기보다는 오히려 현지 “족장”에게 통치권을 위임했다.

영국이 건설한 철도와 같은 인프라(사회기반시설)는 국내(가나) 성장이 아닌 모국(영국)의 인식된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었다. 영국 총독들은 철도의 수익을 강화하기 위해 코코아 농부들이 도로를 건설해 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 가나 농부들은 가격을 낮게 유지하는, 영국이 통제하는 코코아 마케팅 위원회를 통해 제품을 판매해야 했다. 가나 독립 후에도 마케팅 위원회는 토착 엘리트의 부의 착취를 위한 시스템으로 계속 사용되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영향력을 의심하는 경제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특히 아세모글루는 기술성장과 노동경제학, 그리고 발전에 대한 연구로 오랫동안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로 여겨져 왔다. 지난 30년 동안 도구 변수와 같은 준실험적 기법을 활용한 제도의 역사적 지속성에 대한 연구는 대단히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경험적 경제학적 작업에서 종종 일어나는 것처럼 수상자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일리노이대학교 데이비드 알부이는 정착민 사망률 추정치가 부정확하며, 저자의 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인용되었음을 시사한다. 하버드대학교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정착민 사망률이 제도를 통하지 않고도 성장에 영향을 미칠 있는 방법이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유럽인들은 제도와 함께 교육도 가져왔다.

역사학자들 역시 착취적 제도와 포용적 제도의 깔끔한 구분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국은 군사 독재 정권 하에서 발전했다. 아세모글루와 로빈슨이 영국 융성의 시작이라고 확인한 1688년 명예혁명을 통해, 의회는 왕을 제약하는 것뿐 아니라 농민의 재산을 몰수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의 발전은 백인 남성의 개인적 권리와 민주주의, 이것과 함께 노예제도와 이후 흑인 동료들의 권리 박탈과 결합되어 있다. 권위주의 중국이 중산층 수준으로의 부상은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방법론에 대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수상자들의 연구는 역사적 특수성의 중요성을 부인할 수 없이 입증했으며, 이는 발전경제학을 추상적인 성장 모델에서 벗어나게 했다. 이들의 연구는 서유럽의 역사적으로 특이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화가 불가피하고 결정론적으로 진행된다고 가정하는 이론과의 단절을 나타낸다.

아세모글루, 존슨, 로빈슨 씨는 비록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 지에 대한 완전한 설명은 제공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후대 경제학자들은 완전한 설명을 할 수 있는 확고한 토대를 가진 셈이다.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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