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한국의 저출산은 왜 가속도로 하락할까? ③저출산 극복을 위한 사회적 조건

조송원 승인 2024.09.30 09:01 의견 0

인류의 발전은 인재 풀(pool) 확장으로 비약했다. 정치·경제 권력이 군주와 귀족에서 일반 시민으로 이동한 덕분이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민 내의 불평등으로 발전은 지체됐다. 남성과 여성 간의 불평등이다.

여성에게 ‘유리 천장’은 현실이다. 나아가 ‘유리 에스컬레이터’로 여성은 깊은 좌절감을 갖게 된다. 여성이 훨씬 많은 직업인데도 남성이 더 빨리 승진하는 현상이 유리 에스컬레이터이다. 여성은 한 발 한 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데, 남성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유유히 손 흔들며 위층으로 올라가는 이 불평등은 한국사회에 엄연히 실존한다.

남녀평등의 진전으로 남성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항변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차별 시정으로 남성의 기득권 축소를 역차별이라는 강변은 비논리적이다. <편집자 주>

젊은 여성의 가치관 변화

이러한 일련의 사회 변화를 배경으로, 젊은 여성의 가치관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일본의 내각부가 7개국의 젊은이를 조사한 ‘우리나라와 외국 젊은이의 의식에 관한 조사(2018년)’의 분석 결과를 보자. 조사 대상은 일본, 한국,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의 13세부터 29세까지의 젊은이이다.

먼저, 종래의 성별 역할 분업 의식을 묻는 질문인 ‘남자는 바깥에서 일하고, 여자는 가정을 지켜야 한다’에 대해서 회답한 것을 보면, 한국의 젊은 여성은 9할이 넘는 반대 의견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의 돌봄은 어머니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반대하는 의견도 8할이 넘고, 이 모두 남녀평등이 진행된 구미제국보다도 높고, 조사 대상국 가운데서도 가장 강한 반대 의견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으로, 결혼에 대한 태도를 보면, 한국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강한 반대의견을 가진 여성이 2할을 점하고 있다. 이와 같이 결혼에 강한 반대의견이 7개국 중에서 가장 많은 데 반해, ‘결혼해야 한다’고 답한 여성은 5%에도 미치지 못하고, 이것도 7개국 중에서 가장 적다.

희망하는 자녀수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일본을 포함한 6개국에서는 2인을 희망하는 젊은이가 가장 많은 데 비해, 한국에서는 2인과 3인을 선택하는 여성이 7개국 중에서 가장 적고, ‘자녀는 필요 없다’를 선택한 여성이 놀랍게도 4할 가까이 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생에 있어서 우선시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회답을 보자. 다른 나라에서는 ‘가정’을 선택한 비율이 가장 높은 경향이 있는 데 반해, 한국에서는 ‘가정’을 선택하지 않은 여성이 많고, 그 대신에 ‘일’, ‘지역사회’, ‘개인’을 선택한 여성이 많다.

이와 같이 한국에서는 압축적으로 달성한 고학력화를 배경으로, 90년대 생 여성들 사이에서 가치관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7개국 중에서도 가장 강한 남녀평등 의식을 가지고, 결혼과 육아보다는 자신의 생활과 커리어에 중점을 두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일·한의 가족 가치를 면밀히 비교분석한 필자의 연구(2021년)에서도, 한국에서는 가족가치의 여러 측면에서 사회 변화의 속도를 반영하고 있듯이, 세대 간에서도 가치관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특히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결혼보다도 자녀를 갖는 것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근년에서는 결혼은 하지만, 출산을 기피하는 DINKS(Double Income No Kids. 자녀를 갖지 않는 맞벌이 부부) 세대가 급증하고, 2022년 현재, 결혼 5년째 되는 신혼 세대 가운데서 DINKS가 24.7%를 점할 정도로 증가하고 있다.

한편, 일본의 저출산은 한국과는 달리, 가족형성과 기존의 가족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이 증가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현재도 ‘어쨌든 결혼할 생각’이라고 답하는 독신자가 8할을 넘고, 기혼여성은 지금도 평균 2인의 자녀를 낳고 있다.

이것은 오늘에 있어서도 일본 여성의 라이프 코스가, 남편의 부양에 들어감으로써 생활이 안정되도록 제도적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과 같이 일·한의 가족 가치를 비교하여 보면, 가족 형성에 대한 태도가 젊은 여성 사이에서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의 젊은 여성 사이에서 확산된 급격한 가치관의 변화가 남성과는 물론 윗세대의 가치관과도 크게 차이가 나고, 변화가 늦은 다른 세대와 남성과 큰 마찰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가치관의 변화 자체는 어느 나라나 경험하고 있는 것이고, 그 자체가 갈등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의 속도이다. 한국이 맹렬한 속도로 변화를 이루어 왔기 때문에, 세대 간과 젠더 간에서 가치관이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압축적 근대화의 부작용으로서의 저출산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2000년대의 한국에서는 ‘여성의 고학력화’, ‘남성 고용의 불안정화와 여성의 사회 진출’, ‘여성의 법적 지위 향상’이라는 남녀평등으로의 일련의 과정이 동시에 또 급속히 진행되어, 그 반동으로서 특히 2010년 이후 남녀 간의 대립·갈등이 가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확산된 급격한 가치관의 변화는, ‘압축적 고학력화’를 달성한 90년대 생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한국의 저출산은 남녀평등의 진행이 너무나도 급속하고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변화한 젊은 여성의 가치관과 기존의 사회 시스템·가치규범과의 충돌이 크고,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여성의 증가를 가속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과거제도를 채택하여 온 한국에서는, 교육은 사회경제적 지위 상승에 연결되는 중요한 요소이고, 교육이 인생 선택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서 기능하여 온 것은, 누구라도 몸으로 직접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고학력화와 사회진출이 현저하게 진행되는 한편으로, 기존의 남성 중심적 가족문화와, 자녀 교육 책임자로서의 어머니 역할에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까지 ‘며느리’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들에 의해서, ‘나와는 다른 삶’을 희망하면서 딸 세대의 대부분은 교육 투자를 받아, 높은 인적 자본을 몸에 지니고, 어머니 세대와는 다른 선택지를 손에 넣었다.

이와 같은 상황 가운데서, 여전히 자기희생을 강요받는 ‘어머니’가 되는 삶의 방식을 딸 세대는 선택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많은 예산을 저출산 대책에 투자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저출산이 진행되어 온 것은, 이제까지의 정책이 기혼·육아 세대의 일과 가정의 양립 지원에 너무 편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며느리’ ‘어머니’ 역할을 여성에게 억지로 떠맡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변화한 여성이 추구하는 ‘여성의 이상적인 삶’을 받아들여, 공사(公私) 영역에서 젠더 평등, 요컨대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남녀가 평등하게 역할을 분담하여 가는 방향으로 사회구성원 전체가 의식개혁을 하고, 변화하여 가야할 것이다.

일본과 한국은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공통점이 많아 유사한 나라로 보이지만, 그 내용은 참으로 다르다. 사회변화의 속도는 집단 내부의 차이에서 출현한다. 어머니·딸 세대의 교육수준의 차에서 보았듯이, 일본에서는 사회의 변화가 완만하기 때문에 각자가 거치는 라이프 코스에 세대 간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평균치에서의 편차가 적다.

한편, 한국에서는 사회의 변화가 격심하기 때문에, 세대 간의 라이프 코스가 경이적인 속도로 변화하고, 평균치에서의 편차가 대단히 크다. 양국이 대단히 유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분포의 편차를 보지 않고, 사회전체를 ‘평균치’로 비교하기 때문이고, 한국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동적인 사회변화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한국의 가속도적인 저출산은 세대와 젠더 간의 라이프 코스와 가치관의 급속한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를 하나의 집단으로서 파악하는 게 아니라, 세대와 젠더에 착목하여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와 그 방향을 포착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끝>

조송원 작가

<작가 /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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