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문)왕의 침전에는 매일 저녁 수많은 뱀들이 모여들었는데, 대궐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놀라고 무서워서 몰아내려 하니 왕이 말했다.
“나는 뱀이 없으면 편히 잠들 수가 없으니 몰아내지 마라.”
그래서 매일 잠잘 때면 뱀이 혀를 내밀어 왕의 가슴을 덮었다.
왕은 즉위한 후 귀가 갑자기 당나귀 귀처럼 자랐다. 왕후와 궁인들은 모두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오직 복두장(幞頭匠·모자를 만드는 기술자) 한 사람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평생토록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다.
어느 날 복두장이 죽을 때가 되자 도림사(道林寺) 대숲 가운데로 들어가, 사람이 없는 곳에서 대나무를 향해 외쳤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그 후 바람이 불면 대나무 숲에서 이런 소리가 났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왕이 그것을 싫어하여 대나무를 모두 베어버리고는 산수유를 심었는데, 바람이 불면 이런 소리가 났다.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 -삼국유사/권 제2/기이 제2/제48대 경문대왕-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는 뽐내길 좋아하는 임금이 나온다. 그는 두 명의 재단사를 고용해 새 옷을 짓도록 했다. 그런데 그 두 명의 재단사는 하필 노련한 사기꾼이었다.
재단사들은 임금에게 옷에다 특이한 색깔과 무늬를 넣을 뿐 아니라, 아주 특별한 기능을 더해서 무능력한 신료(臣僚)나 멍청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임금은 특별한 기능이 있는 옷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그 옷만 입으면 멍청한 사람과 현명한 사람을 바로 알아볼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꾐에 넘어간 임금은 자신뿐 아니라, 온 나라와 백성들을 헤어날 수 없는 허방다리 속으로 빠뜨리고 말았다. 임금 자신뿐 아니라, 신료와 백성들은 무능력하거나 멍청해 보이지 않기 위해, 모두 그 옷이 눈에 보이는 척을 하며 ‘멋지다!’고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임금님의 행차가 엄숙히 진행되는 가운데, 한 어린아이가 놀라서 외치며 그 위선의 덮개를 찢어버렸다.
“와, 임금님이 벌거숭이다!”
임금, 신료와 백성 모두 이 어린아이 한 마디에 얼마나 수치스러웠을까? 모두가 두 사기꾼에 놀아난 꼴이기 때문이다.
시공(時空)을 건너뛰어, 21세기 선진민주주의 대한민국 전체가 두 재단사와 같은 노련한 사기꾼에 의해 놀아나고 있지는 않은가!
‘최재영 수사심의위원회’에서 최재영 목사의 법률 대리를 맡은 류재율 변호사는 약 2시간 20분에 걸쳐, 최 목사의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가 기소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다. 반면, 검찰에서는 김승호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을 포함한 수사팀이 모두 참석해 최 목사의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니, 세상에! 변호사가 죄를 증명하고 검찰이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는,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희한하고 해괴망측 일이 대명천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확실하다. 검찰은 ‘벌거벗은 누군가’에게 무능력하거나 멍청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멋진 옷’을 입고 있다고 극구 강변하고 있을 뿐이다.
듣기 싫어 대나무를 몽땅 베어낸다고 해도 ‘임금 귀는 당나귀 귀’는 산수유 숲이 이어받는다. 최재영 목사와 그 법률 대리인의 주장은, 적어도 자존심 있는 일반 국민에게 이어진다. 그리고 떼창을 한다.
“뇌물수수 혐의로 김건희를 기소하고, 배우자 뇌물수수를 미신고한 윤 대통령을 수사·처벌하라!”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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